2부 덮는 손
9화. 접힌 종이와 꺼진 화면
형광등 두 개 중 하나가 죽어 있어서 방은 절반만 밝았다. 살아 있는 쪽이 십 초쯤에 한 번씩 짧게 소리를 냈다. 클렌징 오일을 손등에 덜어 체온으로 데우면서 나는 그 간격을 세고 있었다.
재이는 십 분 전에 위층으로 불려 올라갔다. 하 이사가 부르면 삼십 분은 걸린다고, 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접이식 의자는 거울 앞에 펴둔 채였고 화장대 위에는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자정 측정을 적을 칸만 비어 있었다.
문고리가 돌아갔다. 노크는 없었다.
후드를 목까지 올린 여자가 문틈으로 반쯤만 들어와 섰다. 스물넷쯤으로 보였다. 오른쪽 눈꼬리 아래가 접히는 각도가 그와 같았다. 흉이 아니라 뼈가 그렇게 생긴 것이었다.
“미안,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문고리를 잡은 손의 손톱이 전부 물어뜯겨 있었다. 살까지 물린 자리가 두 군데였고, 그 손이 문고리보다 더 떨렸다.
나는 오일 묻은 손을 티슈에 닦았다.
“앉으세요.”
그녀는 앉지 않았다. 문을 등으로 받친 채 방 안을 한 번 훑었다. 거울, 스탠드, 빈 의자. 그리고 화장대 위에서 눈이 멈췄다.
“오빠 얼굴, 지금 어떤 상태예요? 솔직하게요.”
그 밤에 들은 그녀의 말 중에서 끝까지 맺힌 문장은 그것뿐이었다.
노트는 그녀가 선 자리에서 보면 글자가 거꾸로 놓인 방향이었다. 왼쪽 칸에 0.8이 적혀 있었고 그 앞으로 여드레치 숫자가 오르막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 칸에는 1000이라는 조명 값이 있었다. 나는 자를 집는 척하며 노트를 덮어 접었다. 표지가 붙는 소리가 그 방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괜찮아지고 있어요.”
말하고 나서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다는 걸 알았다.
“괜찮아지고 있다는 게, 그게 아무는 거예요?”
“가려집니다.”
그녀는 그 두 문장이 다른 문장이라는 걸 듣지 못했다. 하루에 0.1밀리씩 여드레째 솟고 있다는 것, 흉 밑에 단단한 판이 잡혀 광대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 웃음 세 번이면 경계선이 1센티 갈라진다는 것은 전부 접힌 종이 안쪽에 있었다.
“손은요.”
나는 오일 뚜껑을 닫다가 멈췄다. 어느 손이라고 묻지 않았다.
“덧대서 감았어요. 주먹만 안 쥐면 됩니다.”
“쥐면요.”
“가장자리가 물러집니다. 안무 때는 왼손만 쓰게 해뒀어요.”
그녀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이더니 세 번째에 멈췄다. 후드 끈을 감았다 풀었다.
“병원은 왜 안 가요.”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오빠가 안 가는 거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위층에서 베이스가 두 번 내려왔다. 이 시간에도 연습실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무대까지는, 그러니까, 아무도.”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문장을 대신 끝내자 그녀의 어깨가 내려갔다. 힘이 풀리는 어깨가 아니었다. 위에서 뭔가를 얹어놓았을 때 내려가는 각도였다. 나는 그 각도를 여섯 해 전 겨울에도 본 적이 있었다.
“저 왔던 거, 오빠한테는.”
“말 안 합니다.”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두 번 다 사과였다. 그녀는 화물 엘리베이터 쪽이 아니라 계단 쪽으로 나갔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위쪽에서 한 번 났고, 발소리는 두 층쯤 올라가서야 끊겼다.
나는 노트를 다시 펴서 0.8 옆의 빈 칸을 봤다. 볼펜을 쥐고 심을 세 번 눌렀다. 숫자 대신 점만 세 개 남았다. 손바닥으로 그 자리를 문질러 종이를 폈다. 눌린 데가 완전히 펴지지는 않았다.
노트를 접어 파우치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첫 새벽에 담아둔 지퍼백이 그 칸에 있었다. 거즈에 배어 있던 자리는 이제 갈색으로 말라 딱딱했다. 노트를 그 옆에 세워 넣고 안쪽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복도에서 발소리 하나가 왔다. 구두는 아니었다.
재이가 들어와 후드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거울을 보면서 말했다.
“누구 왔었어요?”
“청소하시는 분요.”
거울 속에서 그가 나를 봤다. 이 초쯤이었다. 그리고 눈을 내렸다.
“이 시간에요.”
“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오일을 다시 데워서 이마부터 얹었다. 이마와 콧등은 한 번에 밀렸다. 오른뺨 앞에서 손을 멈추고 손가락 두 개를 눕혀 결을 따라 아래에서 위로 갔다. 광대 쪽에서 살이 미세하게 딴딴했다. 낮보다 열이 더 몰려 있었다.
“노트는요.”
손끝을 뗐다.
“파우치에 있습니다.”
“아까 나갈 땐 밖에 있었는데.”
“치웠어요.”
그가 거울에서 눈을 옮겨 화장대 위를 봤다. 빈 자리에 스탠드 그림자만 걸쳐 있었다. 나는 오일을 한 번 더 덜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에서 손가락을 눌렀다 뗐다 하며 남은 톤을 밀어냈다.
분장 스펀지를 지퍼백에 담고 입구를 손톱으로 눌러 잠갔다.
그때 화장대 위에 올려둔 그의 폰이 밝아졌다. 진동이 유리 판을 타고 브러시 통까지 갔다. 그가 왼손으로 폰을 들어 화면을 봤고, 나는 거울로 그 화면을 봤다. 뜬 이름은 주아였다.
그는 받지 않고 폰을 엎어놓았다. 화면 불이 꺼지고 방이 다시 절반만 밝아졌다. 내 손은 아직 그의 광대 위에 있었다. 두 번째 진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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