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덮는 손
8화. 거울과 붕대 사이의 센티미터
“오늘은 얼마예요.”
거울 앞 접이식 의자에 앉은 그가 물었다. 형광등은 여전히 오른쪽 두 개만 들어와서, 나는 어두운 쪽에 서서 파우치를 열었다. 자를 꺼내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15도 돌려놓고 있었다. 첫 새벽에는 내가 손으로 밀어 돌려야 했다.
“아직 안 재봤어요.”
“재고 말해줘요.”
살이 올라온 자리에 자 끝을 가볍게 얹고, 밀리지 않게 검지로 눌러 읽었다. 어제보다 0.1. 합쳐서 0.8밀리. 길이는 4.2센티, 여드레 내내 같은 숫자였다.
“영 점 팔이요. 길이는 그대로.”
“영 점 팔.” 그가 그 숫자를 한 번 되뇌었다. “그럼 무대 날엔.”
“이 속도면 이 점 이. 그건 조명 없이도 각도가 보이는 높이예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피부점 메우개 화장품을 손등에 덜어 체온으로 풀었다. 두 층까지는 이제 눈을 감고도 얹는다. 문제는 세 번째 층이다. 두께가 늘어난 만큼 덮을 것도 늘어나는데, 얹는 양이 늘면 마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마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가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나는 화장 붓 끝을 세워 흉의 위쪽 경계부터 채웠다. 그의 피부 온도가 어제보다 높았다.
“무대가 없으면 사람들이 다른 걸 봐요.” 그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거요.”
“동생이 요즘 밖에 안 나가요. 나가면… 아니, 그건 됐고.”
무릎에 덮인 담요가 조금 움직였다. 오른손은 그 아래 있었다. 나는 화장 붓을 바꿔 쥐고 광대 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제일 깊다. 세 번째 층을 얹는 동안 그는 두 번 더 말을 시작했고 두 번 다 끝내지 않았다. 나는 문장의 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지 않으려고 숫자를 셌다. 두드리는 횟수, 마르는 초.
“열두 시 넘어서 카메라 연습 무대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때 웃음은 세 번까지만.”
“세 번.”
“네 번째에 갈라져요. 어제 갈라진 자리 그대로.”
붕대 갈 시간이 되기 전에 그가 먼저 물었다.
“이 일 끝나면 뭐가 남아요, 문세연 씨한테는.”
나는 화장용 스펀지를 접시 위에 내려놓고 장갑 낀 손을 무릎에 얹었다. 계약서의 비어 있던 칸이 먼저 떠올랐다.
“제작진 이름 목록 한 줄이요.”
말해놓고 나니 입안이 말랐다. 3년 동안 소리 내본 적 없는 문장이었다.
“엔딩에 스태프 이름 올라가잖아요. 의상 다음에 메이크업, 그 아래 한 줄. 거기 이름 두 개나 세 개 있죠. 저는 아직 한 번도 없어요.”
“한 번도.”
“제가 얼굴 잡은 무대가 몇 개인데, 그 무대 이름들이 다 남의 이름이에요. 그게 규칙이니까 불평은 아니고요.”
그는 거울 속에서 나를 오래 봤다. 눈이 아니라 거울을 통해서, 그러니까 나를 보면서 자기 얼굴도 보는 방식으로.
“그건 이번에도 안 되겠네요.”
“알아요. 계약서에 그렇게 써 있어요.”
“미안하다고 하면 이상해요?”
“이상해요. 이사님도 아니시고.”
그가 웃었다. 오른쪽 입꼬리는 반만 올라갔다. 내가 가르친 대로였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멈췄다.
나는 파우치 지퍼를 반쯤 닫은 채로 손을 멈췄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아래쪽 틈으로 복도 불빛이 들어왔고, 그 틈으로 목소리도 들어왔다. 하도균 이사는 통화 중이었다. 매끄러운 목소리였다.
“네. 백은주 쪽 그때처럼 조용히 정리하면 됩니다. 기록만 안 남으면 되는 거니까.”
의자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재이는 담요 아래로 오른손을 더 밀어 넣었다. 구두 소리가 다시 시작돼 엘리베이터 쪽으로 멀어질 때까지 우리 둘 다 숨을 얕게 쉬었다. 나는 지퍼를 끝까지 닫지 않았다. 닫으면 소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아까 여기 들어오려던 거예요.” 재이가 말했다.
“안 들어왔어요.”
“그럼 됐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는 것도 기록이 될 것 같았다.
담요를 걷고 그의 오른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붕대를 풀자 손바닥 안쪽이 드러났다. 길이는 3.4센티 그대로였는데 가장자리가 물러 있었다. 물에 오래 담근 종이처럼 흐물흐물해서, 손을 오므리면 그 자리가 다시 벌어질 상태였다.
“오늘 손 썼어요?”
“안무에 손바닥 펴는 데가 있어요.”
“펴는 건 괜찮아요. 쥐는 게 문제예요.”
나는 붕대를 두 번 접어 손바닥 가운데를 가로질러 덧대고, 손가락 세 개를 함께 감아 고정했다. 이렇게 감으면 주먹이 안 쥐어진다. 그는 손이 묶이는 걸 보면서도 손을 빼지 않았다.
“이러면 마이크는요.”
“왼손으로 드세요. 밥도 왼손으로 드시잖아요.”
그가 다시 웃으려다 그만두었다. 이번엔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만두었다.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에 두 사람이 있었다. 앉은 그와, 그 뒤에 선 나. 어깨와 어깨 사이가 20센티쯤이었다. 첫 새벽에 이 거리는 팔 하나였다.
노트를 펴서 어제 그어놓은 세로줄 오른쪽에 D-14, 0.8, 1000이라고 적었다. 다음 주 조명 값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통보는 이미 받았다. 왼쪽 칸에는 손바닥, 가장자리 물러짐, 세 손가락 고정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시작했다. 이 사람은, 까지 쓰고 멈췄다. 볼펜 끝을 눌러 그 세 글자를 문질러 없앴다. 잉크가 번져서 종이가 회색이 됐다.
다섯 시 사십 분에 천장이 울렸다. 위층 연습실에서 곡이 켜진 소리였다. 후렴이 두 번 지나갔고, 그 두 번 다 그가 웃어야 하는 마디였다. 저음 악기 소리가 내려올 때마다 카운터에 세워둔 파우더 통 뚜껑이 아주 조금씩 떨렸고, 나는 그게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눌러 덮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