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후 우리는 서로를 잃는다7화 / 전 21화0

2부 덮는 손

7화. 볼펜으로 세워 올린 경계선

문세연


“고개, 아까 돌려놨어요.”

의자에 앉은 그가 거울 대신 벽을 보고 말했다. 왼쪽으로 십오 도. 각도는 정확했다. 나는 문을 닫고 조명을 발로 밀어 그의 오른쪽 뒤에 세웠다. 네 시 사 분이었다.

장갑을 끼고 얇은 강철 자를 꺼내 흉의 위쪽 살에 세로로 붙였다. 자는 뺨에 다 닿지 않았다. 흉이 자를 밀어내면서 가운데에 틈이 생겼고, 나는 그 틈에 눈금을 맞춰 읽었다. 영 점 칠.

“길이는요.”

“사 점 이 센티예요. 첫날하고 같아요.”

“위로는.”

“영 점 칠 밀리 올라왔어요. 하루 영 점 일이요.”

노트를 무릎에 펴고 일곱 번째 칸에 숫자를 넣었다. 앞의 여섯 칸과 차이가 없었다. 여섯 번을 한 번도 어긋나지 않은 숫자였다. 나는 소수점을 한 번 더 덧그렸다.

“그거 매일 똑같으면 좋은 거예요?”

“규칙적인 건 예측이 되니까 좋아요.”

“그럼 좋은 거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검지로 광대 아래를 눌렀다. 사흘 전까지 그 자리는 눌리면 들어갔다. 지금은 손끝을 밀어냈다. 아래쪽 어딘가에 얇은 판을 하나 끼워둔 것처럼 단단했고, 판의 경계는 눈꼬리 쪽으로 이 밀리쯤 더 자라 있었다. 손을 떼자 눌린 자리가 하얗게 남았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돌아오는 속도도 어제보다 느렸다.

그가 거울 속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왼쪽이 먼저 올라갔다. 오른쪽은 그 뒤를 따라오다가 절반에서 멈췄다.

“웃을 때 당기죠.”

“안 당겨요.”

“지금 오른쪽만 늦게 올라왔어요.”

“몇 도 차이나요?”

나는 각도를 재지 않았다. 파운데이션 통을 열고 브러시에 색을 묻혀 흉의 위쪽부터 얹었다. 굳은 자리는 색을 먹지 않았다. 세 번을 겹쳐야 주변과 같은 높이로 보였고, 겹칠수록 그 위의 층은 두꺼워졌다. 두꺼운 층은 표정을 따라 늘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 계산을 소리 내지 않고 브러시를 눕혔다.

“오늘 리허설에서 후렴에 웃는 부분 있어요?”

“세 번째 소절.”

“웃지 마세요.”

“안무에 있어요.”

“그럼 오른쪽은 반만 올리세요.”

그는 대답 대신 턱을 조금 왼쪽으로 더 돌렸다. 자기가 계산한 각도였다.

리허설은 여덟 시부터였다. 나는 무대 뒤편 커튼 옆 접이식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봤다. 조명은 팔백 밝기 단위. 화면 속 그의 오른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흉도, 열도, 일주일 치의 영 점 칠 밀리도.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돌아 광대를 정면으로 받았을 때도 경계는 나오지 않았다.

하도균 이사가 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화면을 봤다. 셔츠 소매에서 세제 냄새가 났다.

“티가 하나도 안 나네요.”

“조명이 아직 낮아요.”

“다음 주도 이대로 정리하겠습니다. 조명은 천으로 올립니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커튼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당겨 후렴 구간을 되감았다. 세 번째 소절에서 그가 웃었다. 왼쪽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가고, 오른쪽은 중간에서 각도를 눌렀다. 다시 돌려봤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만큼 눌렀다. 안무가는 그 뒤 동작만 지적했고, 조명감독은 그의 오른쪽 얼굴에 조명을 반 스텝 더 넣자고 했다. 아무도 입꼬리를 말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이어폰을 빼며 대기실 복도 벽에 등을 붙였다. 땀이 관자놀이에서 턱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파우치를 열어 그의 오른쪽으로 서서 뺨을 확인했다. 경계선에 금이 하나 가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늘었고, 흉의 위쪽 가장자리를 따라 일 센티쯤 이어져 있었다.

“금 갔어요.”

“보여요?”

“지금은 저만 보여요.”

화장용 스폰지를 꺼내 그 위를 두 번 누르고 색을 밀어 넣었다. 금은 사라졌다. 나는 손목을 돌려 그의 얼굴에 남은 힘을 봤다. 웃음을 세 번 썼고, 세 번째에서 금이 갔다. 노트를 꺼내 그 자리에 적었다. 경계선 가느다란 금 1, 웃음 3회 후.

“그것도 적어요?”

“적어야 다음에 어디부터 갈라지는지 알아요.”

“그럼 다음엔 안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갈라지는 자리를 미리 두껍게 덮어요.”

그는 벽에서 등을 떼고 연습실 쪽으로 걸어갔다. 오른손은 후드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출장 뷔페 테이블은 A동 복도 끝에 있었다. 나는 종이컵에 커피를 받으면서 뚜껑을 찾았다. 뚜껑 통이 비어 있었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조명팀 두 사람과 코디 한 사람이 김밥 접시를 가운데 놓고 서서 먹고 있었다. 출장 뷔페 이모가 종이컵을 새로 쌓아 올리며 국물통 뚜껑을 열었다. 김이 형광등까지 올라갔다.

“요즘 은주쌤 여전하대? 얼굴 잡는 거.”

“여전하지. 그 손은 안 늙어. 지난달 역사 드라마 그 배우 턱, 그거 은주쌤이 잡은 거래.”

“그 사람은 톤 뜬 거 절대 안 넘긴다더라. 스태프한테도 얼굴 잡을 땐 말 걸지 말라고 한다던데.”

코디가 젓가락으로 김밥 끝을 집어 들었다가 놓았다.

“옛날엔 애들 쪽도 봤잖아요. 연습생들.”

“봤지. 그때는 데뷔 전 애들 얼굴을 다 은주쌤이 잡았어.”

“왜, 그때 그 애 있었잖아. 조용히 없어진 애.”

“누구.”

“이름은 몰라. 겨울에 무대 하나 하고 그다음부터 안 보이더라고.”

“그런 애가 한둘이야.”

한 사람이 김밥 접시를 내 쪽으로 밀며 고개를 들었다.

“저기, 어느 팀이세요?”

“프리랜서예요.”

“누구 붙었어요?”

나는 커피를 들어 입술 앞까지 올리고 말했다.

“지원이요.”

그는 더 묻지 않고 접시를 다시 당겨 갔다. 뚜껑은 테이블 아래 다른 통에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하나를 꺼내 종이컵에 눌러 닫았다.

여섯 해 전 겨울에도 나는 이런 복도에 서 있었다. 열아홉이던 애의 어깨에 멍이 세 개 있었고, 나는 반 톤 두꺼운 색으로 그것을 덮었다. 무대 조명은 이보다 낮았다. 애가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경계가 밀릴까 봐 나는 사이드에서 무대를 끝까지 봤고, 아무것도 밀리지 않았다. 끝나고 은주 선생이 내 어깨를 한 번 치며 잘 잡았다고 했다. 그날 그 애는 무대에 올랐다. 그건 성공이었다.

이름 없는 애가 조용히 없어지는 얘기는 이 업계에 널려 있었다. 겨울 무대도 해마다 있었다. 은주 선생 밑으로 오간 얼굴은 한 해에도 수십이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복도로 나왔다.

지하 B동 대기실 책상에 커피를 놓고 노트를 펼쳤다. 일곱째 날 페이지는 왼쪽 칸과 오른쪽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에는 오늘 적은 것이 있었다. 팔백 밝기 단위, 흠이 없음, 이사 확인, 다음 주 천 밝기 단위. 오른쪽에는 영 점 일씩 일곱 번 올라간 숫자가 계단으로 서 있었다. 그 아래에 아침의 가느다란 금과 밀어내는 조직에 관한 줄이 붙어 있었다.

나는 파우치에서 강철 자를 꺼내 손등에 두 번 쳐서 파우더를 털었다. 자를 두 칸 사이에 세우고 왼손 검지와 중지로 위아래를 눌렀다. 볼펜 끝을 자 옆면에 붙이고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방에서 제일 컸다.

선이 페이지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영 점 칠이라고 적힌 숫자의 꼬리를 지나갔다. 나는 자를 떼고 그 위에 다시 자를 맞췄다.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아서 손날에 파란 줄이 옮겨 붙었다. 손날을 티슈로 닦고, 자를 조금 왼쪽으로 옮겨 다시 대고, 선을 처음부터 다시 그었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한 번에 내려갔다. 나는 자를 그대로 둔 채 같은 자리를 두 번 더 덧그었다. 볼펜 심이 종이를 파고들어 선이 굵어졌다. 세 번째에 종이가 살짝 찢어지는 감촉이 손가락에 왔고, 나는 힘을 빼고 끝까지 내렸다. 자를 들어내자 페이지 가운데에 파란 줄이 하나 서 있었다. 왼쪽 칸의 글자들과 오른쪽 칸의 숫자들 사이가 그 줄만큼 벌어져 보였다.

나는 페이지를 넘겨 뒷면을 봤다. 볼펜 자국이 배어 나와 다음 장에도 같은 자리에 세로줄이 하나 눌려 있었다. 손톱으로 그 위를 문질러봤다. 자국은 그대로였다.

자를 파우치에 넣고, 뚜껑을 덮어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나는 볼펜을 노트 위에 가로로 얹었다가 다시 집어 들어 파우치에 꽂고, 노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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