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후 우리는 서로를 잃는다5화 / 전 21화0

2부 덮는 손

5화. 스물한 번의 자정과 새벽

문세연


자정 십오 분 전이었다.

화보 스튜디오 지하 대기실은 천장이 낮고 벽 한 면이 통거울이었다. 거울 위 전구 줄 중 세 개가 나가 있어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어두웠고, 그는 그 어두운 쪽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운 어깨에 은박 조각이 붙어 있었다. 스물세 시간 켜져 있던 조명 밑에서 파운데이션은 이미 반쯤 떠서, 오른쪽 광대에서 흘러내린 자리에 소금 같은 흰 선이 얇게 남았다.

나는 따뜻한 물에 적신 티슈를 네 번 접어 상처 바깥 오 밀리미터부터 눌렀다. 안쪽으로 밀지 않고,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삼 초씩 머물다 떼는 방식이었다. 딱지 위를 지날 때 티슈에 노란 얼룩이 두 군데 번졌다. 나는 그걸 세지 않은 척하면서 세었다.

“오늘 몇 시간이었어요?”

“안 봤어요.” 그가 거울을 보며 대답했다.

“열한 시간 사십 분요. 컨디션 기록지에 적혀 있었어요.”

그가 웃는 것에 가까운 숨을 내쉬었다. 티슈를 대고 있던 손끝에 그 숨의 진동이 왔다.

“그건 왜 적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티슈를 새것으로 바꿨다. 두 번째 티슈에는 얼룩이 한 군데만 번졌다. 그것도 세었다.

문이 열렸다. 하도균이 반쯤만 들어와 문을 손으로 잡고 섰다.

“다음 주 리허설은 조명을 천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넥타이는 이미 풀려 있었다. “자정에 지우는 건 이대로 매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사님.”

“내일 새벽도 네 시죠.”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수고하십니다.”

문이 닫혔다. 복도 불빛이 사라지고 나간 전구 세 개 쪽이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마지막 티슈를 접어 쓰레기봉투에 넣고 장갑을 벗었다.

“오늘 열이 어제보다 위쪽까지 올라왔어요. 상처 아래만 뜨거웠는데 지금은 눈꼬리 쪽도 같이 뜨겁습니다. 지금 봉합하면 흉은 남아도 얇게 남아요. 이 상태로 삼 주가 지나면 두껍게 굳습니다. 굳은 건 못 지웁니다.”

그가 거울 속 자기 오른쪽 얼굴을 봤다. 삼 초쯤이었다. 눈을 돌리지도 않고 턱을 들지도 않았다.

“삼 주만요.”

그날 새벽 두 시 사십 분에 집에 들어왔다. 파우치를 식탁에 올리고 지퍼백에 담긴 퍼프를 꺼내 날짜를 적어 서랍에 넣었다. 노트를 펴자 첫 장 맨 윗줄이 비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 아래 표에는 날짜 칸과 길이 칸만 있었다. 자를 대고 선을 세 줄 더 그었다. 첫 칸에 부푼 높이라고 쓰고, 다음 칸에 열이 몰린 자리라고 쓰고, 마지막 칸에 조명이라고 썼다. 조명 칸에 팔백을 적고, 다음 주 줄에 천을 미리 적었다. 삼 주는 스물한 번의 새벽과 스물한 번의 자정이었다. 그 숫자는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닷새째 새벽 네 시 삼 분, 연습실 지하 B동 대기실.

그는 벽에 붙은 좁은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아 고개를 왼쪽으로 십오 도쯤 돌리고 있었다. 다섯 번 만에 말하지 않아도 그 각도가 나왔다. 나는 스탠드를 바닥에 놓고 펜라이트를 이십 도로 눕혀 상처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가 길게 누우면 부푼 자리의 높이가 보였다.

두께 재는 집게 자를 꺼내 눈꼬리 아래에서 광대까지 벌렸다. 사 점 이. 어제와 같았다. 집게 자를 옆으로 세워 부푼 자리에 물렸다. 일 점 사였다. 어제는 일 점 삼이었다.

“오늘도 영 점 일 늘었어요.”

“그래요.”

“나흘째 같은 속도입니다.”

광대 쪽 깊은 골 안에서 지난번에 빛을 되쏘았던 짧은 자국을 다시 찾는 데 사십 초가 걸렸다. 펜라이트 각도를 세 번 바꾸고 나서야 그 금속 같은 반짝임이 같은 자리에 다시 떴다. 자국은 상처가 그어진 방향과 나란하지 않았다. 찢어진 상처는 눈꼬리에서 광대로 내려가는데, 그 안의 짧은 선은 반대로 아래에서 위를 향해 십칠 도쯤 어긋나 박혀 있었다. 그으면 남지 않는 각도였다. 들어왔다가 방향을 틀어야 남는 각도였다.

나는 펜라이트를 내리고 왼손으로 그의 턱을 고쳐 받쳤다.

“이거, 뭐에 긁힌 거라고 하셨죠.”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턱을 받친 손바닥에 목이 한 번 움직이는 감촉이 왔다. 나는 손을 떼지 않았고, 그도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노트에 십칠 도라고만 적었다. 물음표는 그리지 않았다. 물음표를 그리면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이 되고, 이 방에서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직 내가 아니었다.

다섯 시 사십 분, 마무리 톤을 얹기 전이었다.

나는 마른 티슈를 상처 위에 얇게 덮고 그 위를 손끝으로 눌러 결을 읽었다. 눈꼬리 쪽은 종이처럼 얇고 미끄러웠다. 광대 쪽은 두 밀리미터마다 걸리는 데가 있어서 손끝이 계단을 내려가듯 덜컹거렸다. 걸리는 자리마다 손을 멈추고, 노트에 점을 찍었다. 점이 다섯 개 찍혔다. 조명이 밝아지면 이 계단은 그림자로 살아난다. 팔백에서는 두 개가 보였고, 천에서는 몇 개가 보일지 아직 몰랐다.

그가 눈을 떴다. 거울이 아니라 나를 봤다.

“문세연 씨.”

나흘 동안 나는 선생님이었고, 대개는 아무 호칭도 없었다. 성과 이름이 다 붙어서 정확하게 발음된 것은 처음이었다.

“네.”

“새벽에 두 시간, 자정에 한 시간. 이거 원래 사람이 하는 일정이에요?”

“제 일정은 제가 셉니다.”

그가 고개를 다시 십오 도 돌렸다. 나는 퍼프에 톤을 묻혀 부푼 자리 아래쪽부터 얹었다. 손등이 그의 뺨에 닿을 때 피부 온도가 어제와 비슷했다. 어제와 비슷하다는 건 내려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왼쪽도 같이 얹어야 색이 맞습니다. 눈 감으세요.”

그가 눈을 감았다. 마무리까지 십이 분이 걸렸다.

퍼프를 지퍼백에 넣고 노트를 덮으려는데 그가 말했다.

“그 노트, 언제 다 채워요?”

“무대 당일까지요.”

“다 채우면 어떻게 해요.”

“제가 갖고 있습니다.”

그가 거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울 속에서 오른쪽 얼굴은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었다.

“거기 적힌 건 내 건데.”

나는 노트를 열어 오늘 날짜 아래에 열이 몰린 자리를 적었다. 어제는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라고 적었고, 오늘은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부터 눈꼬리 위쪽 사 밀리미터까지라고 적었다. 사라고 쓴 자리를 지우고 사 점 이로 고쳐 적었다. 그 두 밀리미터를 고쳐 적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사님이 보자고 하시면요.”

“안 보여드립니다.”

“여기서 이사님한테 안 되는 게 있어요?”

나는 볼펜 뚜껑을 닫았다. 그가 팔걸이에 걸쳐 둔 손을 들어 화장대 위 노트 쪽으로 반쯤 뻗다가 멈췄다. 손끝이 노트 모서리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떨어진 데서 멎어 있었다.

“십칠 도.”

낮게, 확인하듯 발음했다. 나는 노트를 덮은 손을 그대로 두었다.

“펼쳐진 데가 보이길래요.” 그가 손을 거뒀다. “그거 각도예요?”

“각도입니다.”

“뭐의.”

“아직 모릅니다.”

“모르는데 왜 적어요.”

“모르니까 적습니다.”

그가 짧게 웃었다. 웃음 끝에 오른쪽 뺨이 당겼는지 눈꼬리가 한 번 움찔했고, 방금 얹은 톤 위로 얇은 금이 갔다. 나는 퍼프를 다시 꺼내 그 자리를 눌러 메웠다.

“웃지 마세요. 갈라집니다.”

“무대에서는 웃어야 되는데.”

“무대까지 열여섯 번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참으세요.”

그가 거울 속의 나를 봤다. 이번에는 오른쪽 얼굴을 보지 않았다.

“문세연 씨는 그 노트에 나 말고 뭐 적어요?”

복도 저쪽에서 구두 소리가 왔다. 한 걸음마다 간격이 같았고, 대기실 문 앞에서 한 박자 멈췄다가 지나갔다. 하도균은 늘 그 자리에서 한 박자 멈췄다.

나는 노트를 파우치 맨 아래에 넣고, 그 위에 브러시 케이스와 파운데이션 통을 얹은 다음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오늘 자정에도 지웁니다. 열한 시 사십오 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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