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200룩스
19화. 덮지 않은 얼굴
“오늘은 몇 번까지예요.”
거울을 보면서 물었다. 나는 스펀지 끝으로 광대의 마지막 층을 눌러 재우는 중이었다. 두께 0.4밀리. 어제 집게로 잰 유격 1.6센티 위에 얇은 막 하나만 얹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필름도, 접착제도 쓰지 않았다.
“두 번이면 삼십 분 이십 초예요. 다섯 번이면 이십오 분 오십 초. 십삼 번 트랙 시작하고 이 분 이십 초.”
왼쪽 손목 안쪽에 어젯밤 적어둔 볼펜 자국이 땀에 번져 5의 아랫부분이 흐려져 있었다. 나는 소매를 내리지 않았다.
출입증은 목에 걸린 채 뒤집혀 있었다. 사진이 들어갈 자리의 흰 네모가 조끼 안에서 쇄골에 닿았다. 오후 두 시 사십 분, 지하 3층 B동 대기실의 형광등은 두 개 다 켜져 있었다.
그가 카운터 끝에 놓인 종이를 손등으로 밀었다. 세 줄짜리였다. 종이는 내 파우치 옆에 비스듬히 섰다.
“이건 오늘 안 나가요.”
주아에게 한 약속인지 나에게 한 통보인지 묻지 않았다. 나는 스펀지를 지퍼백에 넣고 파우치 지퍼를 반만 닫았다.
문이 열렸다. 하도균 이사가 들어와 파우치 위에 수정용 퍼프 두 개를 나란히 올려놓았다.
“이 분 삼십 초 간주에 사이드에서 한 번, 앙코르 전에 한 번 들어가시죠. 그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구두 소리가 복도 끝에서 꺾였다. 재이가 거울에서 눈을 돌려 퍼프를 봤고, 나는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사이드 스테이지 커튼 뒤 삼 미터, 바닥에 붙은 형광 테이프 안쪽이 내 자리였다. 조명 콘솔의 숫자가 눈높이보다 조금 아래에 있었다. 1200. 정면 조명 3.2미터. 백은주 선생이 내 왼쪽 반걸음 뒤에 섰고, 파우더 통을 든 손을 계속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했다.
십일 번 트랙은 버텼다. 두 번째 후렴에서 그가 웃었고, 그다음 마디에서 한 번 더 웃었다. 나는 손목의 숫자에서 구 분을 뺐다.
십이 번 트랙 일 분 삼십 초에 관자놀이의 땀이 광대 경계선까지 내려왔다. 모니터 화면 속 오른뺨에 세로로 얇은 선이 떠올랐다. 아래에서 위로, 표정 근육이 지나가는 방향이었다. 스무 날 동안 내가 하루 0.1밀리씩 세워 올린 판이 그 힘을 못 버티고 갈라지는 선이었다.
“세연아, 퍼프.”
백 선생이 낮게 말했다. 나는 파우치 지퍼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세연아.”
“판이 열린 거예요. 지금 그 위에 뭘 얹으면 안 열린 것처럼 보이는 시간만 늘어나요.”
“이 분 삼십 초 있어. 무광으로 한 번만 눌러도 화면에서는 안 보여.”
백 선생이 주머니에서 파우더 통을 꺼냈다. 뚜껑을 엄지로 밀어 열고 퍼프를 두 번 눌러 가루를 먹였다. 내가 십 년 전에 이 사람 옆에서 배운 손동작 그대로였다.
“제가 판을 세운 사람이에요. 제가 안 얹는다고 하면 안 얹는 거예요.”
“네가 세운 판이니까 네가 책임지는 거고, 지금 저 사람 얼굴은 방송 나가는 얼굴이야.”
백 선생이 내 어깨를 밀고 형광 테이프 밖으로 발을 뺐다. 나는 팔목을 잡았다. 손목뼈가 손바닥 안에서 딱딱했다. 두 사람 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어깨만 썼고, 파우더 통이 백 선생 손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뚜껑이 굴러가 형광 테이프 위에 멈췄다. 하얀 가루가 테이프의 초록색 위에 반원으로 퍼졌다.
무대 감독 쪽 스태프가 고개를 돌렸다가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말하고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간주가 시작되고 무대 오른쪽 조명이 반으로 떨어졌다. 하도균 이사가 귀 이어폰을 반쯤 뽑으면서 커튼 안쪽으로 들어왔다. 걸음에 가루가 밟혔다.
“문 선생님, 지금 들어가시죠. 십오 초면 됩니다.”
“지금 덮으면 마지막 곡 중간에 저 안에서 터집니다. 열려 있으면 흉만 남고 덮으면 판이 남아요. 판이 남으면 저 사람 오른쪽 입꼬리는 다시 안 올라갑니다.”
내 문장이 길어지는 걸 처음으로 들었다.
이사가 내 파우치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파우치를 왼쪽 옆구리로 옮겼다. 이사가 백 선생을 봤다.
“백 선생님이 들어가시죠.”
백 선생이 바닥의 파우더 통을 주웠다. 뚜껑을 닫는 데 두 번 손이 미끄러졌다. 통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주 남은 시간이 콘솔 옆 타이머에서 사십 초로 줄었다.
무대 위에서 그가 몸을 반쯤 돌렸다. 커튼에서 삼 미터 떨어진 내 자리를 정확히 봤다. 조명이 정면에서 들어오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나는 퍼프를 들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펴서 손바닥이 그쪽을 향하게 들었다.
그가 마이크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서 아래로 내렸다. 붕대가 없었다. 손가락 밑동에서 엄지 아래까지 그어진 자국이 1200룩스 아래에서 다 보였다.
십삼 번 트랙 전주가 깔렸다. 스탠드 마이크 앞으로 걸어가면서 그가 오른뺨을 카메라 쪽에 두었다.
일 절 첫 마디에서 숨이 반 박자 짧았다. 오른쪽 볼 근육을 안 쓰려고 입을 왼쪽으로만 여는 습관이 나오면 발음이 좁아지는데, 그러지 않았다. 모음을 다 열었다. 그때마다 광대 위의 선이 조금씩 벌어졌다.
이 분 이십 초에 갈라진 선 위쪽 사 밀리에서 진물이 비쳤다. 처음에는 점 하나였다가, 두 마디 뒤에 아래로 흘러 선을 따라갔다.
무대 아래 현장 감독이 팔을 들어 2번 카메라 쪽에 손등을 흔들었다. 빼라는 신호였다. 하 이사의 반쯤 뽑힌 귀 이어폰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신 촬영으로, 3번으로, 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됐다.
카메라가 뒤로 빠졌다. 그가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뽑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정면 조명이 3.2미터 앞에서 얼굴을 그대로 받았고, 그는 카메라 렌즈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오른뺨이 화면 가운데로 들어갔다.
현장 감독이 팔을 내렸다. 귀 이어폰에서 나오던 목소리가 한 박자 끊겼다가 다시 나왔다. 그대로 가, 라고 들렸다.
후렴에서 그가 고음을 반음도 안 밀고 올렸다. 진물이 턱선까지 내려와 셔츠 깃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목의 숫자를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객석 앞줄에서 폰 불빛 몇 개가 위로 올라왔다. 삼사 열쯤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는데, 노래를 끊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 이사가 내 팔을 잡았다.
“문 선생님. 이건 기록이 남습니다.”
나는 팔을 뺐다.
“제 일은 없었던 얼굴을 만드는 거였어요. 오늘은 있는 얼굴을 그냥 두는 겁니다.”
마지막 소절이 끝났다. 그가 오른쪽 입꼬리를 반만 올려서 웃었다. 열흘 전에 내가 종이에 적어 넘긴 주의사항이었다. 왼쪽은 쓰지 말 것.
나는 손목 안쪽의 숫자를 엄지손톱으로 문질렀다. 볼펜 자국이 살에 붉게 번지다가 지워졌다. 스무 날 만에 아무것도 덮지 않은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그가 커튼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숨이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고, 셔츠 오른쪽 깃이 젖어 색이 달랐다.
하 이사가 퍼프를 들고 앞을 막았다.
“앙코르 전에 한 번, 아까 정리해 드렸습니다. 이 분 있습니다.”
재이가 이사를 보지 않고 나를 봤다. 나는 파우치 지퍼를 마저 닫았다.
“안 합니다.”
이사가 퍼프를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재이가 마이크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면서 그 손을 지나쳐 갔다. 스태프가 내민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병을 카운터에 놓았다. 귀 이어폰 하나를 귀에 도로 밀어 넣었다.
재공연 요청이 벽을 타고 넘어왔다. 그가 다시 무대로 나갔다. 정면 조명이 켜지고 뺨의 선이 화면에 그대로 올라왔다.
백 선생이 파우더 통을 주머니에 그대로 둔 채 모니터 옆 스태프의 화면 쪽으로 고개를 뺐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 보니 서주아, 세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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