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200룩스
18화. 피 흘리는 얼굴과 이십오 분 오십 초
거즈를 떼자 가운데가 노랗게 젖어 있었다. 동전만 한 자국이었다. 밤 열한 시 사십 분, 오늘 세 번째였다. 새 거즈를 광대에 얹고 테이프를 세로로 두 줄 붙이는데 문이 아니라 벽 쪽에서 소리가 났다. 계단이었다. 지하 5층 연습실에서 이 방까지 두 층,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몇 층에서 내렸는지가 기록에 남지 않는다. 나는 그날 처음 그 사실을 알았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반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왔다.
주아가 문틈으로 먼저 얼굴을 넣었다.
“언니, 미안, 아니, 그게 아니라.”
손에 A4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세 번 이상 폈다 접은 종이의 상태였다.
“저 오늘 말하려고 왔어요.”
재이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광대에 방금 붙인 거즈가 흰 사각으로 떠 있었다.
“누구한테.”
“경찰서. 아니면 회사. 아니면 그냥 내 계정에. 오빠 얼굴이 저렇게 된 게 난데, 사람들은 오빠가 유리에 부딪혔다고, 무슨 유리가 사람 얼굴을 저렇게, 나는.”
거기서 문장이 끊겼다. 나는 집게를 쟁반에 내려놓았다. 스물넷, 순서표 십삼 번. 지난달에 적었다가 칼로 도려낸 이름이 이 방에서 제 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주아가 종이를 펴려고 손을 움직였다. 손이 떨려서 종이가 먼저 소리를 냈다.
“읽어드릴게요. 세 줄이에요.”
“그 종이, 몇 번 폈다 접었어요.”
주아가 나를 봤다.
“네?”
“몇 번이요.”
“모르겠어요. 열흘쯤 됐어요. 매일 폈다가.”
주아의 왼손 검지와 중지 밑동에 실선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건 자기 이름으로 치료받은 자국이었다. 병원 기록이 있고, 접시를 깨서 치웠다고 적혀 있는 자국이었다.
재이가 의자를 돌렸다. 테이프가 당기면서 오른쪽 입꼬리가 반만 움직였다.
“내일 끝나고 해.”
“그 하루가 벌써 스무 날이야.”
“주아야.”
“오빠는 나한테 물어본 적 없잖아. 그날도 안 물어보고 그냥 안았잖아.”
재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무릎 위에서 뒤집혔다가 다시 엎어졌다.
“십삼 번, 오빠 목에 맞춰 반음 내린 거 내가 해달라고 했잖아. 내일 그 노래를 그 얼굴로 부르는 거 나는 못 봐.”
주아가 손등으로 눈을 눌렀다. 눌렀다 떼니 다시 젖었다.
내일 아침 저 종이가 올라가면 찢어진 상처 사진이 붙고, 광대 위 일 점 육 센티가 증거가 되고, 저 아이는 오빠 얼굴을 그은 사람으로 검색된다. 종이를 태우면 저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마저 갈라진다. 나는 숨을 한 번 길게 내보내고 쟁반의 집게를 손끝으로 밀어 가장자리에 맞췄다. 스무 날 동안 내가 센 것은 한쪽 숫자뿐이었다. 벌어진 폭, 봉합까지 남은 날수, 커버가 버티는 분. 반대쪽 칸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주아의 검지 밑동 실선 두 개는 다른 페이지에 있었다. 나는 그 두 페이지를 나란히 펴본 적이 없었다. 이제 한 방에서 둘이 같이 숨을 쉬고 있었고, 나는 두 숨을 다 듣고 있었다.
“주아 씨.”
목소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낮게 나왔다.
“오늘은 가져가세요. 내일 지나서 다시 폅시다.”
주아가 종이를 카운터 끝에 내려놓았다. 놓고 손을 뗐다.
“저 이거 벌써 세 군데 저장해놨어요. 없애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말끝을 못 맺고 나갔다.
계단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복도에서 하도균 이사와 마주쳤다.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실장님, 다음 날 오전 봉합은 조정하시죠. 오후에 온라인 공개 행사가 붙었습니다. 그다음 주 음악방송 세 개까지는 얼굴이 그대로여야 하고요. 봉합은 그 뒤로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벌어진 폭이 일 점 육입니다.”
“압니다. 실장님이 적어주셨죠.”
“열흘 더 밀리면 봉합해도 선이 그대로 남습니다. 그건 제가 못 지웁니다.”
나는 벽에 붙은 진행표 옆에 서서 그를 봤다.
“날짜 하나만 주십시오. 오전이든 저녁이든, 어느 날 몇 시라고 종이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그가 셔츠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뚜껑을 열지 않고 손안에서 한 번 돌린 다음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열흘 전 회의실에서 서류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뚜껑을 닫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내일은 커튼 뒤 삼 미터, 조끼 입으시고 서 계시면 됩니다. 그 자리도 원래는 없는 자리예요.”
복도 끝에서 야간 경비가 손전등을 아래로 내리고 지나갔다. 나한테 고개를 반쯤 숙였다가 계단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에 걸린 출입증을 손끝으로 눌렀다. 안쪽 흰 네모에는 아직 아무 얼굴도 붙어 있지 않았다.
“예.”
대기실로 돌아와 형광등 두 개를 다 켰다. 저녁 최종 리허설 수치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정면 조명 삼 점 이 미터, 천이백 밝기 단위. 열이 오른 뒤 뺨 표면 온도 삼십사 점 구 도. 거즈를 떼고 커버를 얹은 다음, 흉 위쪽 실금이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시각까지 삼십구 분 이십 초.
그건 웃음 두 번 기준이었다. 리허설에서 그는 두 번 웃었다. 내일 순서표에는 웃어야 하는 마디가 다섯 개다. 웃음 한 번이 벌리는 폭을 사이 값으로 나누니 한 번당 사 분 삼십 초가 앞당겨졌다. 세 번이 더 있으면 십삼 분 삼십 초.
이십오 분 오십 초.
무대 쪽 진행표를 옆에 폈다. 마지막으로 내 손이 그 얼굴에서 떨어지는 시각부터 스탠바이와 귀마개용 이어폰 확인까지 십오 분. 십이 번 트랙 사 분 십 초. 멘트 사 분 이십 초. 십삼 번 트랙 삼 분 오십오 초.
십삼 번 시작하고 이 분 이십 초.
주아가 오빠 목에 맞춰 반음 내린 곡이었다.
노트 첫 장을 넘겼다. 여섯 해 전에 배운 대로 맨 위에 적어둔 문장이 그대로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아래 스무 장의 곡선이 이어지고, 그 끝에 오늘 숫자가 붙었다.
볼펜을 세워 왼쪽 손목 안쪽에 25:50이라고 적었다. 조끼 소매를 내리면 가려지고, 걷으면 보이는 자리였다.
재이는 거울 앞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내가 적는 걸 거울로 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서 귀마개용 이어폰 케이스를 한 바퀴 돌렸다.
“그거 시간이에요?”
“예.”
“뭐가 이십오 분 오십 초예요.”
“두 곡이요. 두 곡 넘기면 안 됩니다.”
그가 오른뺨의 거즈를 손등으로 눌렀다. 누르면 안 아픈 것처럼 보인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내일은 세 곡 다 부르실 거죠.”
거울 속에서 그가 나를 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세연 씨는 내일 어디에 서 있어요.”
나는 노트를 덮지 않고 책상에 세워두었다. 스무 날치 곡선이 펼쳐진 채 형광등을 받았다.
천장 환기구에서 바람이 내려왔다. 카운터 끝에 놓인 종이가 접힌 자리에서 한 겹 들렸다가 마른 소리를 내며 도로 내려앉았다. 재이가 거울에서 눈을 돌려 그쪽을 봤다. 나도 봤다. 그가 다시 얼굴을 거울로 돌리고 거즈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러 붙였다. 나는 쟁반을 정리하고 형광등 하나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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