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200룩스
17화. 덮은 자리를 펼치는 새벽
오늘은 아무것도 얹지 않았다.
새벽 네 시 십 분, 지하 3층 B동 대기실의 형광등은 세 개 중 하나만 켜져 있었다. 나머지 둘은 스위치를 내려놓았다. 밝으면 그가 거울을 오래 본다. 재이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자세를 유지했고, 나는 어제 붙인 거즈의 테이프를 광대 바깥쪽부터 천천히 뜯었다. 테이프가 떨어질 때 그의 눈꺼풀이 한 번 닫혔다 열렸다.
벌어진 자리는 어제와 같았다. 일 점 육 센티. 위쪽 사 밀리 구간에만 새 진물이 노랗게 맺혀 있었고, 아래쪽은 말라서 가장자리가 살짝 오그라들어 있었다. 소독액을 적신 면봉으로 위쪽만 닦아내고, 새 거즈를 세 겹으로 접어 얹었다. 테이프는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붙였다. 같은 자리에 계속 붙이면 그 살까지 헐어버린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얹네요.”
거울을 보면서 그가 말했다. 낮고 느렸다. 나는 노트에 일 점 육과 사 밀리를 적고 볼펜을 꽂았다.
“이틀은 비워둬야 해요.”
“내일 대기실 앞에 사람 지나가는데.”
“모자 쓰세요.”
그는 뭔가 더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로 어깨가 계속 올라가 있었다. 나는 그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그제야 삼 센티쯤 내려왔다. 그가 일어나 후드를 뒤집어쓰고 나갔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파우치를 챙겨 나오자 백은주 선생이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는데 김이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톤은 네가 맞다.”
인사 대신 그 말이 먼저 나왔다. 6년 만에 같은 층에서 같은 얼굴을 두고 교대하는 사이가 됐는데도 순서가 그랬다.
“어제 것보다 반 톤 내렸지. 천이백에서 뜨는 건 두께가 아니라 경계야. 두께로 잡으면 두 시간째에 판이 통째로 톤 뜬다. 너 그거 알고 내렸으면 됐어.”
“내일 새벽 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라.”
선생은 종이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보지 않고 물었다.
“하나 물어보자. 너 아직도 그날 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냐.”
무슨 날 말이냐고 되묻지 않았다. 여의도 3층 분장실, 열아홉이었던 애, 왼쪽 어깨. 그 밤은 6년 동안 내 손이 시작된 자리로 남아 있었다.
“이름이 한지우야.”
선생이 말했다.
“너보다 두 살 어렸어. 그리고 그거 멍 아니었다. 어깨가 이미 안에서 갈라져 있었어. 나는 알고 있었고, 너한테는 멍이라고 했지.”
파우치 손잡이를 쥔 손가락이 하얘지는 게 보였다.
“네가 덮은 다음 날부터 그 애 스케줄이 두 배가 됐어. 아무도 안 열어봤으니까. 반년 뒤에 어깨 힘줄이 통째로 나갔고, 데뷔조에서 빠졌고, 지금 오른팔이 귀 위로 안 올라가.”
복도 끝 환풍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세고 있었다.
“그때 왜 말 안 하셨어요.”
“내가 가르친 게 그거였으니까.”
선생은 그제야 나를 봤다.
“완벽하게 덮이면, 아무도 열어보지 않아요. 그 문장 너한테 심어준 게 나야. 너는 그걸 자랑처럼 쓰고 다녔지.”
“선생님도 쓰셨습니까.”
“열두 해 썼다. 우린 얼굴 잡는 사람이라고, 얼굴만 잡으면 끝이라고. 잡아놓고 나오면 그다음은 내 담당 아니라고. 나는 그 말 하면서 손이 안 떨렸어. 그게 제일 나빠.”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문을 닫고, 파우치 안쪽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냈다. 책상 위 파우더 통과 브러시 통을 옆으로 밀고, D-21부터 D-2까지 스무 장을 뜯지 않은 채 펼쳐 겹쳐 놓았다. 부푼 높이 칸만 왼쪽부터 손끝으로 짚었다.
영 점 일. 영 점 이. 영 점 삼. 영 점 사. 영 점 오. 영 점 육. 영 점 칠. 영 점 팔. 영 점 구. 그다음이 일 점 일이었다.
거기서 손을 멈추고 아래 칸을 봤다. 조명 값이 팔백에서 천으로 올라간 날짜였다. 나는 그날 커버 두께를 반 톤 올렸다. 얇게 얹으면 두 시간째에 경계가 뜨니까, 그 위에 한 겹을 더 세웠다. 그날 이후로 하루 증가치가 영 점 일에서 영 점 이로 바뀌었다.
숫자를 오른쪽 끝까지 다시 읽었다. 내가 잘 덮은 날과 흉이 단단해진 날이 어긋난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커버를 올린 날 다음 날에 두께가 올랐고, 두께가 오르니까 다시 커버를 올렸고, 그 판이 광대 아래로 이 밀리 밀려났고, 오른쪽 입꼬리가 반만 올라가게 됐고, 그저께 밤 천이백 밝기 아래에서 표정 근육이 그 판을 못 따라가서 세로로 째졌다.
여덟째 날 자정 칸에는 숫자가 없었다. 점이 세 개 찍혀 있었다. 그날 나는 재이가 웃는 걸 처음 봤다. 웃음 세 번이면 경계선에 일 센티 실금이 간다는 걸 이미 적어둔 뒤였는데, 그날만은 몇 번 웃었는지 세지 않았다. 세지 않은 것을 표시해두려고 점을 찍었고, 그게 무슨 뜻인지는 나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 장을 넘겼다. 볼펜으로 문질러 지운 자리가 회색으로 남아 있었다. 손톱을 대봤다가 뗐다.
노트를 접어 들고 복도로 나갔다. 선생은 아직 벽에 붙어 있었고, 바닥의 종이컵은 그대로였다.
“선생님, 이거 좀 봐주세요.”
펼쳐서 내밀었다. 손이 흔들려서 종이가 소리를 냈다.
“제가 잘한 날마다 영 점 일씩 올라갔어요. 여기서 반 톤 올렸고, 여기서부터 영 점 이예요. 제가 이 사람 얼굴에 판을 세웠어요. 스무 날 동안 매일. 저는 그동안 이게 관리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중간에서 갈라졌다. 선생은 페이지를 한참 봤다. 형광등 하나가 복도 끝에서 지직거렸다.
“이거 잘 잡았다.”
선생이 말했다.
“조명 값하고 두께를 한 칸에 나란히 붙여놓은 게 잘한 거야. 그러니까 보이는 거지. 나는 이런 거 안 적었어. 적으면 보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셨어요.”
“덮고 나와서 문 닫았어. 다음 날 또 덮었고. 열두 해 동안 손은 늘었지. 그 애 어깨는 안 늘었고.”
그러고는 노트를 덮어 내 가슴께로 밀었다. 표지가 갈비뼈에 닿았다.
“이제 열어본 사람이 너 하나야. 열어봤으면 끝까지 봐라. 나는 못 했다.”
선생은 종이컵을 집어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구두 굽 소리가 네 번쯤 나다가 모퉁이에서 끊겼다. 그쪽에서 청소 카트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고, 수건을 든 여자가 나를 한 번 보고 지나갔다. 나는 벽에서 등을 뗐다.
대기실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볼펜을 꺼내 마지막 장 아래 빈 자리에 세로로 줄을 세웠다. 천이백 밝기. 조명 아래 얼굴 표면 온도는 지난 리허설 때 재둔 값이 있었다. 벌어진 자리 위에 얹은 커버가 체온과 땀에 어느 지점에서 밀리는지도 이틀 전 밤에 봤다. 째진 채로는 사십 분.
그 옆에 곡 순서를 적기 시작했다. 첫 곡 삼 분 사십 초. 멘트 이 분. 두 번째 곡 삼 분 이십 초. 멘트 일 분 삼십 초. 세 번째 곡 사 분 십 초. 밴드 소개 이 분. 네 번째 곡 삼 분 오십 초. 다섯 번째 곡 사 분. 여기까지 이십사 분 삼십 초였다.
앞쪽도 세야 했다. 마지막 터치를 끝내고 대기실 문을 나서는 시점부터 계산기를 눌렀다. 복도에서 스탠바이 십이 분, 그 구간 조명은 사백이지만 얼굴은 이미 판을 얹은 상태다. 무대 오르기 전 귀 이어폰 확인 삼 분. 합쳐서 십오 분. 그러면 다섯 번째 곡이 끝나는 지점이 삼십구 분 삼십 초였다.
삼십 초 남는다.
재청 곡 한 곡을 아래에 적었다. 사 분. 인사 이 분. 사십오 분 삼십 초. 다섯 분 삼십 초가 모자랐다. 다섯 분 삼십 초 동안 커버는 밀리고, 밀린 자리에서 판이 톤 뜨고, 그 밑에서 진물이 올라오고, 천이백 밝기는 그걸 정면에서 비춘다.
그 아래에 지금까지 내가 해왔을 방법을 적었다. 반 톤 더. 접착제를 한 겹 더. 고정 필름. 다섯 분 삼십 초는 그렇게 벌 수 있다. 벌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볼펜을 든 손이 그쪽으로 먼저 움직였다. 다 적어놓고 그 세 줄에 가로로 선을 그었다. 선을 긋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아서, 볼펜을 눌러 여섯 번 더 문질렀다. 여덟째 날에 지웠던 자리처럼 회색이 남았다.
일어나서 스위치를 올렸다. 형광등 두 개가 차례로 켜지면서 책상 위 스무 장이 한꺼번에 하얘졌다. 나는 밝은 데 서서 곡선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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