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지운 자리
16화. 째진 얼굴과 손끝의 냄새
브러시 여섯 개를 헹궈 수건에 눕히고 스튜디오를 나온 게 밤 열 시 사십 분이었다. 성수동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손끝에서 세정제 냄새가 계속 났다. 계단을 절반쯤 내려갔을 때 모르는 번호가 떴다.
“문세연이지. 지금 어디야.”
여섯 해 만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짐 챙길 때 파우치 지퍼 다 닫고 나가라는 것이었고, 그 뒤로는 통화 목록에도 없던 목소리였다. 나는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뒤에서 올라오던 사람이 내 가방 모서리를 치고 지나갔다.
“천이백 올리고 두 곡째에 얼굴이 갔어. 표정 따라 세로로 째졌고, 지금 피가 비쳐.”
숨소리만 잠깐 들렸다. 백은주가 말했다.
“내 손으론 안 잡혀. 이 얼굴은 네 손만 알아.”
파우치 안쪽 주머니에 세워 넣어둔 노트를 꺼냈다. 마지막 장에 사흘 뒤 날짜가 적혀 있었다. 무대 날이었다. 나는 그 날짜 위에 손가락을 대고 계단을 거꾸로 올라가 도로로 나갔다. 빈 택시가 세 대째에 섰다.
지하 3층 복도는 페인트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 낮에 성수동에서 맡던 것과 같은 냄새였다. B동 문 옆에 백은주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손등이 말라붙은 분대로 얼룩져 있었고, 그중 두 군데는 색이 나머지보다 반 톤 어두웠다.
“얹으면 뜨고, 눌러 펴면 결이 벌어져. 나는 십오 년 동안 이런 건 못 봤어.”
나를 보지 않고 하는 말이었다. 그게 사과가 아니라 인계라는 걸 알았다.
“웃음은 세 번까지라고 종이에 적어뒀는데요.”
“리허설에서 다섯 번 웃었어. 내가 옆에서 세고 있었는데도.”
백은주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눈 아래가 부어 있었다.
“네가 적은 대로 다 했어. 종이는 다 맞았고, 안 되는 게 손이었어.”
엘리베이터 쪽에서 하도균이 걸어왔다. 손에 출입증 하나가 들려 있었고, 그 사람은 그것을 내 목에 직접 걸었다. 사진 칸이 비어 있었다.
“오늘 문 선생님은 여기 안 오신 겁니다. 기록은 안 남기는 걸로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파우치를 열어 장갑을 꺼내 꼈다. 왼손을 먼저 끼우면서, 낮에 광고 현장에서 브러시 각도를 놓치던 손목의 떨림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스스로 가라앉힌 게 아니라 없어져 있었다. 나는 손목을 한 번 뒤집어 확인하고 문을 밀었다.
재이는 거울 앞 의자에 앉아 오른뺨을 위로 들고 있었다. 목을 그렇게 꺾고 있으면 십오 분도 못 버틴다. 그런데 어깨선이 굳어 있는 정도를 보면 훨씬 오래 그러고 있었다. 거울 조명 여덟 개가 다 켜져 있고, 그 아래 카운터에 다른 사람의 파우치가 열린 채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내 파우치를 세우고 보조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흉 한가운데가 세로로 벌어져 있었다. 아래위로 일 점 일 센티미터, 갈라진 안쪽이 젖어 번들거렸고 위쪽 삼 밀리미터 지점에 검붉은 것이 고여 있었다. 분대가 벌어진 양쪽 가장자리로 밀려 올라가 두툼한 두 줄로 서 있었다.
집게 끝을 흉 옆 살에 걸어 조였다. 눈금이 일 점 육에서 멈췄다. 노트를 펴자 열여드레 전 칸에 영 점 팔이 있었다. 같은 노트, 같은 손글씨, 페이지 넷 차이였다.
소독 거즈를 세 장 겹쳐 벌어진 자리 위에 얹고 힘을 나눠 눌렀다. 피와 진물이 거즈 안쪽으로 배어 올라오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움찔하지 않았다. 두 번째 거즈로 바꿀 때, 말하지 않았는데도 고개를 왼쪽으로 십오 도 돌렸다.
“이 각도는 누가 알려줬어요.”
“당신이.”
거즈를 걷어내고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에 손끝을 댔다. 거기가 여전히 제일 뜨거웠다. 흉 밑의 단단한 판은 광대 아래로 더 밀려나 있었고, 눌러보면 살이 아니라 판이 먼저 밀렸다. 나는 그 자리를 두 번 눌렀다가 손을 뗐다.
“이거요.”
식염수를 적신 거즈를 새로 뜯으면서 말했다.
“제가 매일 영 점 일씩 눌러 올린 겁니다. 스무 날 동안 한 번도 안 빼먹고요. 얹고 지우고 다시 얹으면서 이 밑에 판을 세운 게 저고, 그 판이 표정 근육을 못 따라가서 오늘 두 곡째에 째진 거고, 그러니까 이건 조명이 아니라”
거기서 손보다 목소리가 먼저 흔들렸다. 나는 문장을 맺지 않고, 왼손에 들고 있던 분첩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거울 속에서 그가 눈을 들었다. 열여드레 동안 그는 거울 안의 자기 광대만 봤다. 이번에는 자기 얼굴이 아니라 내 얼굴을 봤다. 눈이 마주친 채로 삼 초쯤 지나갔다. 복도에서 스태프 둘이 순서표 얘기를 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 아프냐고 안 물어보네.”
낮고 느린 말이었다. 나는 거즈를 다시 집어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에 댔다.
“물어보면 제 손이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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