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지운 자리
14화. 형광펜 아래 열일곱 줄
“문세연 씨. 이 병원 예약자 성함이 문세연으로 되어 있더군요.”
스텔라원 6층 회의실은 해가 정면으로 들어왔다. 열여덟 날 만에 처음으로 밝은 데서 일 이야기를 들었다. 테이블 위에 A4 세 장이 부챗살처럼 놓여 있었고, 하도균은 종이 끝을 손끝으로 밀어 세 장의 아래 선을 맞췄다. 왼쪽은 지하 B동 출입 카드 기록이었다. 열일곱 줄. 새벽 3시 58분부터 6시 11분까지가 노란 형광펜으로 그어져 있었다. 가운데는 사흘 전 내가 화상 재건 전문의 쪽에 넣은 문의 접수 화면을 찍은 것이었고, 오른쪽은 상담 예약 취소 확인 문자였다.
“사진은 안 보냈습니다.” 내가 말했다. “부위도 안 썼고요. 서른한 살 남자, 얼굴 찢어진 상처, 봉합 안 함, 열여드레 경과. 그게 전부입니다.”
“그 네 가지면 저희는 끝납니다.”
그는 볼펜을 세워 종이 위에 짚었다가 다시 눕혔다.
“저희는 기록이 무서운 회사입니다. 오늘부로 새벽 작업은 다른 분께 넘기는 걸로 정리하겠습니다.”
파우치 지퍼 위에 얹어둔 오른손 엄지 마디가 떨렸다. 왼손을 그 위에 포개서 눌렀다. 손등 아래에서 두 번 더 뛰고 멈췄다.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재이가 리허설복 차림으로 들어와 테이블 끝을 짚었다. 왼손이었다. 오른손은 옆구리 쪽에 붙어 있었고, 붕대 위에 소매를 내려 덮은 상태였다. 형광등이 천장 정중앙에 있어서, 그의 오른쪽 광대에는 조명 하나 없이도 아래로 짧은 그림자가 졌다. 오늘 아침에 잰 게 2.3밀리였다.
“이사님, 그 사람은 제가.”
그가 내 쪽으로 반 발짝 들어섰다. 문장의 끝이 뭔지 알았다. 그게 이 방에서 나를 끝내는 문장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 사이 아닙니다.”
내 목소리가 나보다 먼저 나왔다.
“저는 새벽 두 시간 계약직입니다. 이 얼굴의 수치를 아는 사람일 뿐이고요.”
재이의 턱이 한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 나는 그의 광대에서 시선을 떼서 하도균에게 옮겼다.
“물러나겠습니다. 대신 두 가지만 확답 주십시오.”
하도균이 볼펜을 놓았다.
“말씀하시죠.”
“무대 당일 사이드 대기. 무대엔 안 올라갑니다. 커튼 뒤 3미터까지만요. 그리고 무대 다음 날 오전 봉합 예약.”
“사이드는 스태프 조끼 입고 서시죠. 목걸이 출입증은 안 나갑니다.” 그는 볼펜 뚜껑을 딸깍 닫았다. “봉합은 무대 다음 날 오전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그가 뚜껑을 닫는 소리까지가 계약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숙인 채로 세 장의 종이를 한 번 더 봤다. 형광펜은 열일곱 줄 전부에 그어져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오후 두 시, 지하 B동 대기실 옆 사무공간의 복사기 앞에 섰다. 치수 측정 노트를 뜯지 않고 펼쳐서 유리판에 눌렀다. 한 장씩 열일곱 번. 유리가 닫힐 때마다 노트 등이 눌려서 나중엔 제자리로 안 돌아왔다.
원본은 파우치 안쪽, 거즈 넣은 지퍼백 옆에 세워 넣었다. 사본만 테이블에 늘어놓고 커터 칼로 왼쪽 칸을 도려냈다. 주아, 스물넷, 순서표 십삼 번. 열한째 날 장이 제일 컸다. 도려낸 자리마다 구멍이 남아서, 사본은 창문 뚫린 종이가 됐다. 오른쪽 숫자 칸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0.7, 0.8, 0.9, 1.1, 그리고 2.3까지 그대로 뒀다.
“인수인계 받으실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문 앞에 서 있던 비서가 태블릿에서 눈을 뗐다.
“백은주 실장님이요. 오늘 밤부터 들어오십니다.”
스테이플러를 쥔 손이 미끄러졌다. 심이 종이 밖으로 나가 테이블에 비스듬히 박혔다. 손톱으로 뽑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종이를 다시 모아 각을 맞췄다. 두 번째는 제대로 물렸다.
재이는 거울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리허설복 등판에 마른 소금 자국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내가 뒤에서 종이를 정리하는 동안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 오른쪽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아까 그거.”
그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왜 먼저 아니라고 했어요.”
나는 사본 마지막 장 여백에 볼펜을 댔다.
“웃음은 세 번까지입니다. 네 번째부터 경계선에 실금 1센티 갑니다. 후렴에서 웃으실 땐 오른쪽 입꼬리 반만요.”
“물어본 걸 대답해요.”
“1000조도 단위에서 두 시간 십 분까지 확인했습니다. 1200조도 단위는 아직 못 재봤어요. 그건 그쪽에서 재실 겁니다.”
볼펜을 종이에서 뗐다. 세 줄이 적혀 있었다. 웃음 3회. 실금 1센티. 1200조도 단위 미측정.
“이거, 그 사람한테도 똑같이 적어드렸습니다. 오른쪽 입꼬리 얘기까지요.”
거울 속에서 그의 눈이 내 쪽으로 왔다. 나는 종이 뭉치를 화장대 오른쪽 끝에 놓았다. 그가 오른손으로 집으려다 붕대를 보고 멈추고, 왼손을 뻗었다. 손끝이 종이에 닿기 전에 나는 이미 파우치 지퍼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 새벽엔 안 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하드케이스 두 개짜리 소리였다. 화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여섯 해 동안 안 들은 목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왔다.
“얼굴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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