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후 우리는 서로를 잃는다12화 / 전 21화0

3부 지운 자리

12화. 닫히는 창과 여백의 글씨

문세연


지퍼백은 안쪽 면이 서로 들러붙어서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손톱으로 입구를 벌리는 동안 원장이 장갑을 끼웠다. 열이틀 전 새벽에 상처 아래를 닦은 거즈였다. 가운데는 아직 갈색이었고 가장자리는 검게 말라, 집으면 부서질 것 같았다.

성북동 골목 안쪽 의원 상담실은 진료실보다 좁았다. 책상 유리 밑에 회복 사진이 열 장쯤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나는 복사해 온 노트 세 장을 아래 선을 맞춰 밀어 놓았다. 위쪽 이름 칸은 잘라내고 왔다. 접수대에서 성함을 묻길래 내 이름을 적었다. 전화번호까지 적고 나서야, 내 이름이 종이에 남는 게 삼 년 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환자분 성함은요.”

“지인입니다. 본인은 못 옵니다.”

원장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서랍에서 자기 자를 꺼내 내 스케치 위에 대고 각도를 되쟀다. 십 분 동안 세 번 쟀다. 그러고는 볼펜 끝으로 상처 안쪽에 표시해 둔 짧은 선을 두 번 두드렸다.

“이거, 방향이 열일곱 도 어긋나 있죠. 결이랑 나란하면 긁힌 겁니다. 어긋나 있으면 박힌 거예요.”

“안에 뭐가 남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남아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가 유리 밑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광대에 흰 판이 얹힌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살이 안쪽에서부터 저 혼자 붙어요. 붙는 동안 그 위에 굳은 살이 판으로 앉습니다. 판 앉으면 표정 근육이 그 밑에서 놉니다.”

나는 노트를 넘겨 스무 날 치 예정 칸과 지금까지 그어 온 곡선을 보여줬다. 0.1밀리씩 올라가다가 사흘 전부터 0.2로 꺾인 자리였다.

“지금 열이틀 차예요.”

“늦었죠.” 그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그래도 창은 아직 있습니다. 열어서 안에 있는 거 빼고, 가장자리 정리하고, 다시 붙이는 거. 사나흘.”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여섯 달 기다렸다가 다시 손대는 겁니다. 여섯 달 뒤엔 지금 이 선이 그대로 남아요. 두께까지 그대로.”

나는 사나흘, 이라고 적고 밑줄을 그었다. 그날부터 세면 D-9였고, 그건 무대 아홉 날 전에 그의 얼굴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튿날 오전 열한 시, 나는 스텔라원 B동 지하 주차장 세 번째 기둥 옆에 서 있었다. 8층 회의실은 내게 금지였고, 이 사람이 서서 대답하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검은 세단이 경사로를 내려와 기둥 앞에서 멈췄다. 시동을 끄지 않아서 배기구 쪽 공기가 미지근했다. 조수석 문이 열렸다.

“이사님. 치료 적기가 사나흘 남았습니다.”

하도균은 문을 반쯤 연 채로 나를 봤다. 나는 노트를 펼쳐 부푼 높이 칸을 손톱으로 짚었다.

“0.1이 사흘째 0.2로 바뀌었어요. 지금 열면 선이 얇게 남습니다. 사흘 뒤에 열면 굳은 판을 깎아내야 하고, 깎으면 그 자리는 다시 부풀어요. 무대 아홉 날 전에 삼십 분입니다. 재우지 않고, 그 자리만 마취하고 끝납니다.”

“삼십 분 뒤에 얼굴에 실이 들어가 있겠죠.”

“실은 닷새면 뽑습니다. 그 닷새를 제가 가립니다. 그건 제가 해 본 일입니다.”

그는 차 키를 손바닥에서 한 번 돌렸다. 열쇠고리가 손톱에 걸려 짧게 소리를 냈다.

“문 선생님. 그 사나흘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건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변수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가 조수석에 다시 앉았다. “다음 주 리허설 조명 밝기, 그대로 갑니다. 봉합은 무대 다음 날로 정리하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차가 반 미터쯤 굴러가다 섰고, 창이 손바닥만큼 내려갔다.

“성북동 그 의원, 어제 오후 세 시 이십 분에 상담이 하나 있었다더군요. 흉터 사진 들고 오신 분이요.”

창이 올라갔다. 나는 노트를 가슴 쪽으로 접어 든 채로, 세단이 경사로 끝에서 왼쪽으로 도는 걸 보고 있었다. 배기 냄새가 기둥 사이에 남았다. 어제 접수대에 적은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하루도 못 가서 8층으로 올라갔다는 뜻이었고, 그러면 다음에 잘려 나가는 건 종이가 아니라 지하 3층 출입증이었다.

오후 두 시가 지나서 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문 선생님, 확인만 하나 하려고요. 오전에 어디 회사 총무팀이라면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어제 세 시 이십 분 상담 건, 보호자 성함이랑 상담 내용 확인해 줄 수 있냐고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환자분 개인정보는 못 드린다고 했죠. 그쪽에서 그러던데요. 우리가 그 환자 소속입니다, 라고.” 원장이 잠깐 말을 끊었다. “혹시 문 선생님 곤란해지는 일이면, 사본은 여기 두지 않겠습니다. 파쇄할까요.”

“두세요.” 나는 지하 계단 난간에 등을 대고 말했다. “제가 다시 갈 수도 있습니다.”

“창은 사흘입니다. 넷째 날까진 억지로 됩니다. 다섯째 날부턴 제가 열어도 선이 안 얇아져요.”

전화를 끊고 오 분 뒤에 스케줄 팀에서 문자가 왔다. 담당자 이름 대신 부서명만 찍힌 번호였다. 출입증 일괄 재발급 건이니 오늘 안에 반납해 달라, 지하 3층은 재발급까지 현장 매니저 동행하에 출입하라, 다음 주 리허설 현장 메이크업은 본사에서 한 팀 붙는다. 세 줄이었다.

나는 세 번째 줄을 두 번 읽었다. 한 팀이 붙으면 나는 대기실 밖에 서 있게 되고, 그러면 그 얼굴을 여는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판이 앉을 때까지 사흘, 판이 앉은 다음에는 여섯 달. 나는 노트 여백에 사흘, 이라고 적고 그 아래에 팀, 이라고 적었다가 볼펜으로 뭉갰다.

그날 새벽 네 시, 지하 3층 B동 대기실 문은 열려 있었다.

내가 손잡이를 잡자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현장 매니저가 고개를 들었다. 스물몇 살쯤 됐고, 무릎에 종이컵을 놓고 있었다.

“문 닫을게요.”

“열어두라고 하셨어요.” 그가 컵을 바닥에 내려놨다. “여기 있으라고만 하셔서요. 죄송합니다.”

방 안 형광등은 두 개 다 켜져 있었다. 재이는 이미 의자에 앉아 있었다. 후드를 벗고 있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둔 채였다. 나는 파우치 지퍼를 열었다. 복도 쪽에서 종이컵이 바닥에 닿는 소리까지 들리는 방이었으니, 이 소리도 저쪽에 다 갔을 것이다.

장갑을 끼고 왼손 바닥으로 그의 턱을 받쳐 각도를 잡았다. 피부 온도는 어제와 같았다. 상처 아래 이 밀리미터에서만 손끝이 뜨거웠다. 거울 속에서 그는 내 손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열린 문을 보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안 보이던데.”

“일이 있었어요.”

나는 노트를 무릎에 펴고 볼펜으로 한 줄 적었다. 사나흘. 그 밑에 D-9. 노트를 돌려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눈만 내려서 읽었다. 복도에서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가 멎었다.

재이가 왼손으로 내 볼펜을 집었다. 글씨는 삐뚤었다.

주아는요.

나는 그 아래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가 볼펜을 내려놓고 다시 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노트를 펼쳐 둔 채로 분통 크림 뚜껑을 열고, 손등에 얹기 전에 그의 광대 위로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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