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지운 자리
11화. 열입곱 도의 흉터
일 점 일 밀리미터였다.
눈금을 두 번 읽었다. 어제까지 나는 이 자리를 소수점 아래 한 자리로만 불러왔는데, 오늘은 정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화장대 앞 접이식 의자에 그가 앉고 나는 그 왼쪽에 서 있었다. 위층에서는 아직 조명 스탠드를 접는 소리가 났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일 점 일이에요.”
“그건 어제보다 얼만큼이에요?”
거울을 보면서 물었다. 그 얼굴에는 열두 시간 얹혀 있던 톤이 광대 아래에서만 얇게 들려 있었다.
“영 점 이요. 오늘 하루에 두 배 올랐어요.”
내가 계산해둔 수술은 아침 여덟 시 반에 시작해서 열 시 사십 분에 끝났어야 했다. 열네 시간 전이었다. 그 시간에 그는 화보 스튜디오 A동에서 셔츠를 여섯 번 갈아입었고, 나는 대기실 밖 계단에 앉아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세 종류 얹어놓고 어느 쪽이 열을 덜 먹는지 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이 지나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를 파우치에 눕히고 오일을 검지와 중지에 묻혀 광대 바깥쪽부터 얹었다.
티슈를 접어 아래 방향으로만 밀어냈다. 위로 올려 닦으면 부푼 자리 가장자리가 들린다. 그 각도를 지키느라 손목이 뻣뻣해질 때쯤 화장대 위에서 그의 휴대폰이 두 번 진동했다. 화면이 켜지면서 동생 이름 두 글자와 첫 줄이 같이 떴다. 주아. 오빠 나 그냥 말할게.
그가 왼손을 뻗어 폰을 뒤집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인 채였다.
나는 묻지 않기로 정해둔 것을 그날 처음 깼다.
“상처 안쪽에 뭐가 스친 자국이 있는데, 결하고 나란하지 않아요. 열일곱 도 위를 향해 있어요. 손바닥은 반대 방향이고요. 손을 펴서 날을 감쌌을 때만 그렇게 나요.”
티슈가 광대 아래 이 밀리미터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오일이 흉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방이 조용해졌다. 위층 소리도 그때 끊겼다.
그는 내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거울 속 자기 오른쪽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낮고 느렸다.
“그날 밤에 주아가 부엌에 있었어요.”
“네.”
“우리 집 부엌이요. 그 애랑 나 둘이 살아요. 열두 시 넘어서 물 마시러 나갔는데 불이 꺼져 있는데 애가 서 있었어요.”
“네.”
“손에 과도를 들고 있었고, 자기 손목 쪽으로 돌렸어요. 내가 뒤에서 껴안았는데, 팔이 돌아가는 방향까지는 못 계산했지.”
“계산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칼끝이 뭔가에 걸려서 딱, 하고 소리가 났어요.”
“딱요?”
“딱.”
나는 그 소리를 아는 얼굴이 되지 않으려고 티슈를 한 번 더 접었다. 네 겹이 됐다. 손에 쥔 것만 보고 있었는데도 그의 뺨이 아까보다 뜨거워진 것이 손가락 옆면으로 전해졌다.
“뭐에 걸린 건지 아세요?”
“몰라요. 소리가 안에서 났어요. 귀로 들은 게 아니라.”
나는 광대뼈 위를 손끝으로 눌러보고 싶은 것을 참았다. 흉 안쪽 이물 자국이 위로 열일곱 도 뻗어 있다는 건, 칼끝이 살을 지나 뼈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는 뜻이다.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뜨거운 게 흐르는데, 그게 내 얼굴인지 주아 손인지 몰라서 한참 서 있었어요. 불도 안 켜고. 주아가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말인지 안 들리고.”
“몇 분이요.”
“몰라요. 그거는 안 셌어요.”
“동생이 왜 그 시간에 칼을 들고 있었는지는요.”
그가 거울 속에서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세연 씨는 그날 낮에 뭐 했어요?”
대답 대신 질문이 왔다. 나는 티슈를 접던 손을 멈췄다. 그가 낮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 적지 않았다.
복도에서 카트 바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문 앞을 지나가면서 안을 한 번 들여다봤고, 그는 그동안 말을 멈추고 거울만 봤다. 바퀴 소리가 계단 쪽으로 멀어졌다.
“주아 씨는요.”
“손가락 두 개 베였어요. 왼손 검지랑 중지, 밑동. 그건 병원 갔어요. 접시 깨진 거 치우다가 그랬다고 하고.”
“주아 씨 이름으로요?”
“손가락은 이름 적혀도 돼요. 접시니까.”
나는 티슈를 내려놓고 새것을 뽑았다. 오일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병원, 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첫 음절만 나왔다.
“차트에 경위 적히면, 이름 적히는 건 내가 아니라 주아예요.”
“경위는 안 적어도 돼요. 넘어졌다고 하면 돼요. 그렇게 오는 사람 많아요.”
“찢어진 상처 방향 보고 안 적는 의사가 있어요?”
없다. 나는 그 방향을 보고 열흘째 재고 있었다. 티슈를 새로 접었다.
“넘어져서 얼굴이 이렇게 갈라지려면 어디에 부딪혀야 하는지, 세연 씨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나흘째 날에.”
물어봤다. 그때 그는 유리 선반이라고 했고, 나는 유리에 베인 자국의 가장자리를 알고 있었다.
“그때 거짓말인 거 아셨죠.”
“네.”
“근데 왜 안 캐물었어요?”
“열흘째 되면 저절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무슨 계산이에요.”
“계산 아니에요.”
그가 처음으로 거울에서 눈을 뗐다. 오른쪽 얼굴이 조명 밑에서 그대로 나에게 왔다. 눈꼬리 아래에서 광대까지, 아직 오일이 남아 번들거렸다.
“스물넷이에요. 나랑 일곱 살 차이 나고.” 그가 무릎 위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덮었다. “기사 제목이 뭐가 될지 나는 알아요. 서재이 여동생, 흉기. 그 여섯 자 뒤에 무슨 말이 붙어도 앞의 여섯 자만 읽혀요. 그 애가 왜 그 시간에 부엌에 서 있었는지는 아무도 안 읽어요.”
“동생분이 직접 말하겠다고 하면요.”
“말하겠죠. 아까부터 그 얘기예요.” 다시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나으면 흉이 남는데, 이름은 한 번 붙으면 안 떨어져요. 내 얼굴은 내가 정해도 되는데, 그 애 이름은 내 게 아니에요.”
“얼굴도 안 떨어져요.”
“알아요. 세연 씨가 매일 말해주니까.”
“십삼 번은요.”
“십삼 번이 주아 얘기예요. 가사에 그 애 방 창문이 나와요.” 그가 잠깐 말을 끊었다. “무대에서 그거 부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감출 게 얼굴밖에 안 남아요.”
화장대 위에서 폰이 한 번 더 짧게 울렸다. 뒤집힌 채라 화면은 보이지 않았고, 진동이 화장대 상판을 타고 내 팔꿈치까지 왔다.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 뒤로 둘 다 아무 말을 안 했다. 나는 흉 바깥 오 밀리미터부터 안쪽으로 세 번에 걸쳐 닦아냈다. 클렌징을 마치니 흉이 조명 아래에서 그대로 보였다. 눈꼬리 아래에서 광대까지 사 점 이 센티, 광대 쪽이 더 두껍고 색이 짙었다. 열하루 전 소형 후래시로 처음 본 것보다 훨씬 단단해진 얼굴이었다.
내 노트는 왼쪽에 본 것, 오른쪽에 숫자를 적도록 세로줄이 그어져 있다. 나흘 전에 자를 대고 힘을 줘서 그은 줄이라 다음 장에도 눌린 자국이 남아 있다. 그날 밤 나는 왼쪽 칸에 이렇게 적었다.
주아, 스물넷, 여동생, 순서표 십삼 번.
‘큐’ 자리에서 볼펜이 눌린 자국에 걸려 한 번 멈췄다. 심이 종이를 파고들어 점이 굵게 뭉쳤다. 나는 다시 쓰지 않고 그 위에서 문장을 끝냈다. 열하루 동안 그 칸에는 크기와 색과 온도만 적혀 있었다.
노트를 세워 파우치 안쪽에 밀어 넣고 돌아섰을 때 그는 아직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이 무릎 위에서 조금 벌어져 있고, 붕대 끝이 풀려 손목에 늘어져 있었다. 안무 연습을 세 번 돌린 손이었다.
“손 주세요.”
그가 손을 들었다. 나는 파우치에서 붕대를 새로 꺼내고, 접이식 의자 앞에 무릎을 붙이고 앉았다. 낡은 붕대를 손목에서부터 풀었다. 두 바퀴째에서 천이 손바닥 안쪽에 붙어 있었다.
“숨 뱉으세요.”
“안 아파요.”
“뱉으세요.”
그가 숨을 뱉는 동안 거즈를 들어 올렸다. 붙은 자리가 떨어지면서 그의 팔이 어깨까지 한 번 굳었다가 풀렸다. 손바닥 안쪽 삼 점 사 센티 자리의 가장자리가 다시 물러 있었다. 하얗게 불어서 결이 벌어졌고, 아래쪽 끝에서 진물이 한 방울 맺혀 있었다.
“오늘 몇 번 돌리셨어요.”
“세 번.”
“네 번이요. 제가 계단에서 셌어요.”
“그럼 왜 물어봐요.”
소독용 소금물을 적신 거즈로 가장자리부터 닦아냈다. 물러 있는 자리를 피해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두 번, 그다음 소독액을 묻힌 새 거즈를 대자 그가 손가락을 오므리려고 했다.
“쥐지 마세요. 사흘 말했어요.”
“마이크는 왼손으로 들어요.”
“연습은 오른손으로 하셨네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마른 거즈를 네 겹으로 접어 상처 위에 얹고, 손목부터 붕대를 올려 감았다. 한 바퀴를 손목에 고정하고, 손등을 지나 엄지 아래에서 방향을 틀어 손바닥을 가로질렀다. 감을 때마다 그의 손이 아주 조금씩 따라 움직였다. 상처를 지나 손가락 밑동에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너무 조이면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손끝 색 볼게요.”
손톱 위를 눌렀다 떼자 하얘졌던 자리에 이 초 만에 색이 돌아왔다. 세 손가락을 같이 묶어 올리자 손이 반쯤 펴진 모양으로 멈췄다. 이 손은 이제 뭘 쥘 수 없다. 열하루 전 이 손이 부엌에서 뭘 감쌌는지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내일 오전에 다시 갈게요. 젖으면 바로 부르세요.”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까, 그만두실 거예요?”
매듭을 손등 쪽으로 돌려 놓고, 그 손을 그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일어서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뒤집어놓은 폰이 화장대 위에서 검은 면을 보이고 있었다.
“동생분, 오늘 두 번 걸었어요. 다음엔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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