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우산을 접으며
18화. 벌어진 지붕 아래의 빗소리완결
손잡이 이음매가 헐거워진 지는 오래되었다. 대를 밀어 올리면 그 자리에서 늘 삐걱, 하는 소리가 났고, 나는 목요일 밤 회사 현관에서 그 소리를 확인하듯 잠시 멈춰 섰다. 장마가 시작된 첫날이었다. 3층 상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빗물이 시멘트 홈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우산을 펴자 살 하나가 여전히 제자리를 못 찾고 바깥으로 휘어 벌어졌다. 몇 해가 지나도 그 살은 끝내 곧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굳이 손으로 눌러 펴지 않았다. 을지로 뒷골목의 백반집까지는 걸어서 십 분 남짓이었고, 나는 그 벌어진 지붕 아래로 목을 조금 움츠린 채 걸었다. 헐거워진 이음매에서 걸음마다 미세하게 삐걱임이 새어 나왔다.
지난주 회식 자리에서 부장이 새 삼단 우산을 하나 던져주었다. 포장 비닐도 벗기지 않은 것이었다.
“김 대리, 그 우산 몇 년째 그거 아이가. 하나 사라 마.”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웃으며 받았다.
“이게 빗소리가 잘 들려서요.”
부장은 어이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나는 다음 날 그 새 우산을 사무실 책상 서랍 안쪽에 넣어두었다. 서랍을 열 때마다 그것이 거기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매번 문구용 가위나 스테이플러만 꺼내고 서랍을 도로 닫았다. 이 우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물결처럼 우글거리던 스케치북 표지나, 라무네 병을 들고 웃던 그림 같은 건, 말로 옮기려 하면 자꾸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서랍 속 그 새 우산 말고도, 나에게는 펴지 않는 우산이 하나 더 있었다. 원룸 현관 신발장 옆, 벽 모서리에 낡은 삼단 우산 하나가 몇 해째 그대로 서 있다. 도쿄로 떠나던 날 아침에 두고 나온 것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문을 나서기 직전, 나는 잠깐 그 우산을 내려다봤다. 열이틀 동안 그 도시에 비 맞을 일이 있겠느냐고, 짐이나 하나 더 가벼워지자고 그냥 두고 나왔다. 도쿄에 도착한 첫날부터 마지막 새벽까지 비가 그치지 않았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돌아와서도 나는 그 우산을 다시 펴지 않았다. 살이 휜 것도, 손잡이가 헐거운 것도 아니었다. 대만 밀어 올리면 멀쩡하게 펴질 우산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청소기를 밀다가 그 손잡이 위에 먼지가 얇게 앉은 걸 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걸레로 한 번 훔치고 다시 벽 모서리에 세워두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 채로.
아침마다 나는 그 낡은 삼단 우산 옆을 지나 현관을 나선다. 손이 닿는 자리에 그것을 두고도, 정작 집어 드는 건 살 하나가 바깥으로 휜 오백엔짜리 비닐우산이다. 서랍 속에는 비닐도 안 벗긴 새 우산이 있고, 신발장 옆에는 멀쩡한 헌 우산이 있는데, 나는 매번 가장 얇고 가장 성한 데 없는 것을 골라 든다. 남들이 보면 궁상이라 할 것이다. 부장 말마따나 몇 년째 그거냐고. 그래도 나는 그 얇은 지붕이 아니면 안 됐다.
투명한 지붕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얇은 막 위에서 빗방울 하나하나가 정수리 바로 위에서 터지는 것처럼 가까웠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신주쿠 교엔의 담장 길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불쑥 앞으로 나왔다. 밤 여덟 시가 지난 담을 따라 어깨를 반 뼘씩 나눠 쓰며 걷던 길. 물이 다 새어 들어 두 사람 다 결국 젖었으면서도, 끝까지 그 아래를 벗어나지 않던 길.
예전엔 그 길이 떠오르면 명치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젖은 채로 계단을 갈라져 오르던 새벽이 딸려 나왔고, 나는 그걸 밀어내려 걸음을 빨리하곤 했다. 오늘 밤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서늘함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골목 중간, 처마에서 물이 굵게 떨어지는 자리를 지날 때였다. 나는 하루의 목소리를 아주 또렷하게 들었다. 가나자와행 계단을 오르기 직전, 검은 금붕어 봉지를 안은 채 소리 내어 웃으며 하던 말.
“얇아서, 빗소리가 잘 들린다.”
그 여름 이후로 연락은 한 번도 닿지 않았다. 검은 꼬리 금붕어가 가나자와까지 가는 흔들리는 기차를 견디고 살아남았는지, 나는 끝내 알지 못한다. 물이 좁은 봉지 안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온 세계가 출렁이던 그 작은 것이. 예전 같으면 여기서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얕아졌을 텐데, 오늘은 처마 밑에 잠깐 서서 그 봉지 속 붉고 검은 지느러미가 흔들리는 모양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물방울이 우산 끝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춰 숨을 쉬었다. 답이 없는 자리에 오래 머물러도 손끝이 서늘해지지 않았다.
지난달, 회사 근처 문구점에서 라무네 병을 하나 샀다. 계산대 옆 냉장고에 그것이 놓여 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밖으로 나와 유리 진열장에 비친 내 모습을 오래 들여다봤다. 오른손에 병을 든 채였다. 그림 속의 나는 오른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셔츠 안주머니의 코팅된 종이를 손바닥으로 눌러보았다. 두꺼운 필름 너머로 ‘잘 다녀와요, 그리고 잘 살아요’라는 글자가 손끝에 만져지는 듯했다. 그날, 나는 그 빈 오른손 자리가 어느 틈엔가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이름 붙이지는 못했지만, 비어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백반집 간판 불이 골목 끝에서 노랗게 번져 왔다. 나는 문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휜 살이 끝까지 여며지지 않고 한쪽이 벌어진 채로 남았다. 예전 같으면 손아귀로 몇 번이고 여미려 했을 텐데, 오늘은 그대로 두었다. 벌어진 그 자리에서 물방울이 손등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우산을 억지로 여미지 않고, 벌어진 그대로 옆구리에 끼웠다.
주머니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엄마, 두 글자가 떠 있었다.
“밥은 묵고 댕기나. 이 비에 감기 걸린다.”
전과 똑같은 말이었다. 도쿄로 도망치던 날 공항철도에서 끊어버렸던 그 목소리, 캡슐호텔에서 두 번이나 받지 않았던 그 목소리. 오래도록 나는 그 말을 채근으로 들었다. 밥을 물었지만 실은 언제 사람 구실을 할 거냐고 묻는 것 같아서, 걱정이 늘 등을 떠미는 손처럼 느껴져서. 그런데 오늘 밤엔 그 문장에서 다른 게 들렸다. 밥을 물었으면, 정말로 밥이 궁금한 거였다.
“묵었어요.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길.”
“뭐 하러 그 시간까지. 얼른 들어가 자라.”
전화를 끊고, 나는 백반집 문고리를 잡았다가 도로 놓았다. 그리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일은 없었다. 무릎은 좀 어떤지, 아버지 약은 잘 챙기는지, 부산에도 비가 오는지. 대답이야 뻔한 것들을 나는 오래 물었다. 엄마는 뭘 그런 걸 다 묻노, 하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부산의 빗소리가 서울의 빗소리와 겹쳐 들렸다.
통화를 마쳤을 때 우산 끝에서 물이 한 줄기 흘러내려 신발코를 적셨다. 나는 옆구리에 낀 우산을 고쳐 잡고 백반집 문을 밀었다. 나무 문틀이 긁히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김이 서린 유리 너머로 따뜻한 불빛과 국 냄새가 흘러나왔다.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 나는 벌어진 우산을 옆구리에 낀 채, 젖지 않은 어깨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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