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수요일의 찬송
9화. 노란 창문과 이레 뒤의 셈
디퓨저 냄새가 침실 공기를 무겁게 눌렀다. 나무를 태운 것 같기도 하고 마른 꽃 같기도 한 그 냄새는 매주 같은 자리에 고여 있었고, 나는 이제 그 냄새를 맡으면 침이 마른다는 것을 알았다. 스피커에서는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가 두 번째 소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수연 씨의 머리카락이 내 쇄골 위로 흘러내렸다. 끝이 서늘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천장 쪽으로 시선을 던지려다 말았다.
언덕 아래에서 엔진 소리가 담을 타고 올라왔다.
처음엔 흘려들었다. 밤이 되면 이 동네에도 차가 다녔고, 문 앞을 지나쳐 더 높은 집으로 올라가는 소리를 나는 몇 번이나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그 소리가 멈추지 않고 점점 커졌다. 헤드라이트가 커튼 안쪽으로 하얗게 번지며 벽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빛보다 먼저, 수연 씨의 몸이 내 위에서 굳는 것을 살갗으로 알았다.
“일어나.”
웃지 않았다. 은수저 얘기를 할 때도, 회개하면 된다고 할 때도, 결정적인 말은 늘 웃으면서 하던 사람이었다. 그 입에서 웃음기 없는 소리가 나오자 나는 심장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보리색 리넨 셔츠를 나는 그러쥐었다.
“달력엔 내일이라고, 분명히 내일 칸에……”
말이 끝을 맺지 못했다. 수연 씨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가 리모컨을 집었고, 찬송가 볼륨을 반으로 줄였다. 방 안이 갑자기 헐거워졌다. 소리가 채우고 있던 자리에 냄새와 우리 둘의 숨소리만 남았다.
“뒷계단. 신발은 손에 들고.”
낮게 잘라 말하고 그녀는 가운을 걸쳤다. 나는 셔츠 단추를 채울 겨를도 없이 그것을 가슴에 뭉쳐 안았다. 세례받던 날, 목사의 손이 내 이마에 얹히기 전 등줄기로 흐르던 그 차가운 물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 등을 타고 내리는 것은 그 물이 아니라 미끈한 식은땀이었다. 반쯤 벗은 몸으로 나는 복층의 좁은 뒷계단을 더듬어 내려갔다.
계단참에 센서등이 달려 있었다. 내 발소리에 불이 켜질까 봐 나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한 손엔 신발, 한 손엔 셔츠. 난간을 잡을 손이 없어서 벽에 어깨를 붙이고 내려갔다. 그때 현관 쪽에서 도어록이 울렸다. 강 장로의 결혼기념일 네 자리를 삼키는 전자음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알았다. 매주 내가 눌러 이 집에 들어오던 바로 그 번호였다.
이어 낮고 느린 목소리가 집 안의 공기를 눌렀다.
“여보, 밀라노 일정이 하루 당겨졌어. 놀랐지.”
나는 그 마지막 세 글자에서 뼈를 느꼈다. 놀랐지. 저 남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가.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하루를 당겨 확인하러 온 것인가. 신발을 손에 든 채 계단참에 붙어서, 나는 그 회계의 눈금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현관 마루를 밟는 구두 소리가 느릿하게 이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여행 가방의 바퀴가 대리석 위를 짧게 구르다 멈췄고, 열쇠 꾸러미가 콘솔에 떨어지는 금속 소리가 났다. 곧 재킷을 벗어 거는지 옷걸이가 삐걱였다. 그 모든 소리가 내가 매주 밟고 지나던 자리에서 났다.
“저녁은 드셨어요? 씻으실 물 받아둘게요.”
수연 씨가 되받았다. 그 태연함에 나는 문틈에 손가락이 낀 것처럼 잠깐 멈춰 섰다. 사흘 전 회중 앞에서 정결을 구하던 목소리와 지금 남편에게 물을 받아두겠다는 목소리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뒷문을 밀었다. 등 뒤로 물 트는 소리가 났다.
담벼락 아래는 어두웠다. 나는 화단 옆에 쭈그려 앉아 셔츠를 마저 입었다. 단추를 잠그는 손이 자꾸 헛돌았다. 첫 단추를 두 번째 구멍에 꿰었다가 다시 풀었다.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끈을 묶는데 매듭이 자꾸 어긋났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복층 창에 불이 하나 켜졌다. 노란 불빛이었다. 곧 그 옆, 욕실 쪽으로 짐작되는 창에 또 하나 켜졌다. 물을 받는 창일 것이다. 저 남자가 씻을 물. 불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방금 도망쳐 나온 사람인데, 그 노란 빛이 밝아올수록 나는 도망친 사람이 아니라 저 안의 온기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식은땀이 식으면서 리넨 셔츠가 등에 들러붙었다. 급하게 껴입느라 안감이 축축한 채로 살에 감겼고, 밤바람이 그 젖은 천을 훑을 때마다 서늘한 것이 등뼈를 따라 내려갔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차야 할 자리에, 나는 엉뚱한 셈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수요일에는 냉장고 달력의 붉은 동그라미가 어느 칸으로 옮겨갈지. 오늘 하루 당겨졌으니 다음번엔 하루 늦춰질지, 아니면 아예 다른 주로 넘어갈지. 들킬 뻔했다는 사실이 관계를 끊을 이유가 되기는커녕, 목을 조이는 끈처럼 나를 저 창문에 더 팽팽하게 매달았다. 끈은 조여질수록 나를 그쪽으로 당겼다.
낡은 티셔츠를 담은 종이백은 고시원 벽에 걸린 셔츠 옆, 옷걸이 밑에 있었다. 나는 오늘 그것마저 없이 새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언덕을 내려왔다. 손바닥에 아직 식은땀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지에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걸음마다. 그래도 손금 사이에 밴 축축함은 자리만 옮길 뿐 가시지 않았다. 등판에 들러붙은 리넨은 걸음마다 살에서 떨어졌다 다시 붙었고, 아직 채우지 못한 첫 단추 자리로 밤공기가 파고들었다. 새 옷이라는 게 무색하게 천은 무겁고 차가웠다. 아무리 문질러도 손바닥은 마르지 않았다.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복층의 두 창은 여전히 노랬다. 그중 하나에서 사람 그림자가 잠깐 지나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그 거리에선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래 서서 그 창을 보았다. 오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벌써 사흘 뒤가 아니라 이레 뒤를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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