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수요일의 찬송
7화. 어긋난 장부와 구겨진 지폐
복도 형광등 하나가 나가 있었다. 주인 남자는 내 방문 앞에 서서 슬리퍼로 장판을 툭툭 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좁은 복도에 둔하게 울렸다.
“학생, 이번 주까지야. 두 달이면 나도 할 만큼 했어.”
담배 냄새가 밴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반뼘만 열고 그 틈으로 내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이번 주 안에……”
말끝이 저절로 흐려졌다. 그가 혀를 차고 돌아서자 복도 끝 공용 주방에서 누군가 라면에 물을 붓는 소리가 났고, 뒤이어 전기포트가 딸깍 꺼졌다. 그 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았다.
성경책을 펼쳤다. 로마서 8장, 그 페이지에 끼워둔 수연 씨의 명함, 그리고 명함 옆에 겹쳐둔 흰 봉투. 나는 그것을 뜯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고 믿어왔다. 뜯지 않았으니 아직 받은 게 아니고, 받지 않았으니 아직 팔리지 않았다고. 밤마다 그렇게 셈을 했다. 그런데 값을 부르지 않은 물건에 대해 굳이 팔리지 않았다고 우기는 마음이, 이미 흥정판 위에 올라앉은 마음이라는 걸 나는 그날 봉투를 뜯으며 알았다.
봉투는 생각보다 쉽게 찢어졌다. 종이가 얇았다. 만 원짜리 지폐가 손끝에서 그 미끈한 감촉으로 되살아났다. 나는 그중 월세만큼을 세어 접었다. 엄지로 지폐 모서리를 눌러 한 장씩 밀어 넘겼고, 끝을 맞춰 반으로 접은 다음 접힌 자리를 손톱으로 두 번 눌러 폈다. 세는 동안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다는 게 무서웠다.
복도로 나갔다. 나간 형광등 아래로 주인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공용 주방 입구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려던 참이었다. 라이터를 켜기 전에 내 기척을 들었는지 반쯤 돌아섰다.
“사장님.”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나는 접은 지폐를 내밀었다. 손을 뻗는 동안 지폐 모서리가 손끝에서 다시 그 미끈한 감촉을 냈다. 몇 번을 씻어도 손바닥에 남던 결이 이 종이에도 옮아 있었다. 나는 그 감촉째로 돈을 그의 손에 넘겼다. 넘기고 나면 감촉도 함께 건너갈 줄 알았는데, 손바닥에는 여전히 그것이 남았다.
그는 세어보지도 않고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진작 이렇게 하지.”
그가 웃었다. 이 사이로 바람 새는 웃음이었다.
“학생, 교회 다닌다 그랬지. 착실한 줄 알았어. 두 달이나 밀길래 사람 잘못 봤나 했지.”
착실하다는 말과 이 돈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그가 아는 나는 밤마다 편의점 계산대에 서고 주일이면 백자 물그릇을 드는 청년이었다. 그가 방금 주머니에 넣은 지폐가 어디서 왔는지 그는 묻지 않았고, 나는 그가 묻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는 나를 또 견뎌야 했다. 물어보았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한남동, 복층, 수요일. 그 세 단어를 이 담배 냄새 나는 복도에서 발음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아무 표정도 만들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주머니 밖으로 조금 나온 지폐 모서리를 보다가, 방문을 슬며시 더 당겨 몸을 문 뒤로 들였다. 슬리퍼 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질 때까지 나는 문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싸구려 알루미늄 손잡이가 손바닥 안에서 미지근해질 때까지.
방으로 돌아와 남은 돈을 셌다. 봉투는 방값의 두 배였으니, 월세를 빼고도 한 달 치가 그대로 손안에 있었다. 나는 그 돈으로 두 달이나 밀린 전기와 수도 공과금을 따로 접어두고, 다음 달 방값까지 미리 헤아려 접었다. 그러고 나니 만 원짜리 한 장이 남았다. 나는 그 한 장을 성경책 사이, 이제는 비어버린 봉투 자리에 도로 끼웠다. 헌금으로 하면 되겠다고 중얼거렸다. 마지막 한 장까지 하나님께 돌려보내면 이 봉투에서 나온 돈은 어디에도 내 몫으로 남지 않는 셈이니, 그러면 얼추 정산이 맞는다고. 정산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온 건지 나도 몰랐다. 방값과 공과금으로 이미 다 나간 돈이었고, 남은 한 장을 헌금함에 올린다고 봉투가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될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밤 그 어긋난 장부를 붙들고 있었다. 스물넷의 내가 타락을 이렇게 회계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그 장부의 필체까지 기억한다. 숫자 8을 위아래 두 동그라미로 또박또박 나눠 쓰던 그 필체를.
주일 오후, 예배당은 오르간 소리와 사람들의 헛기침으로 채워졌다. 붉은 융이 깔린 나무 헌금함이 앞줄에서부터 손에서 손으로 건너왔다. 함 위에는 다른 이들의 흰 봉투가 단정히 쌓여 있었다. 이름과 십일조라는 글자가 적힌, 접힌 자국 하나 없는 봉투들이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그 위에 슬며시 얹었다. 봉투도 없이. 지폐는 봉투들 사이에서 혼자 구겨진 채 떠 있었다.
그때 강단 뒤 스테인드글라스로 든 빛이 함 가장자리 놋쇠 테두리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광택에서 수연 씨 집 식탁에 놓여 있던 은수저를 떠올렸다. 첫날 새벽 주머니에 넣었다 도로 내려놓은 그 물건의 결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하는 자세였지만 나는 기도하지 않았다. 이걸로 뭐가 씻긴다고 믿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손을 두 번 씻어도 손바닥에 남던 그 감촉이, 헌금함 위에 지폐 한 장을 올린다고 사라질 리 없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 지폐를 올렸다. 모은 두 손 사이로, 헌금함이 옆자리 노인에게 건너가는 걸 곁눈질했다. 내가 얹은 한 장은 어느새 봉투 더미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통로 건너 세 번째 줄에서 재영이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애는 웃지 않았다. 시선을 천천히 헌금함으로 옮겼다가, 다시 내 손으로 옮겼다. 봉투 없이 지폐를 올린 손. 나는 그 손을 무릎 사이로 내렸다.
예배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재영이 옆에 붙었다. 목소리를 낮췄다.
“너 요즘, 손을 자꾸 씻더라.”
나는 계단 손잡이를 잡았다. 놋쇠였고 차가웠다.
“물이 차가워서.”
재영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계단 아래까지 나와 나란히 걸었다. 그 침묵이 내가 방금 낸 헌금 한 장보다 무거웠다. 계단 끝에서 그애가 잠깐 멈춰 나를 보았고, 나는 수요일까지 나흘이 남았다는 걸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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