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의 찬송6화 / 전 18화7

2부 수요일의 찬송

6화. 신문지를 끼우던 창틀과 붉은 동그라미

김도현


스피커 위의 작은 불빛만 붉게 떠 있었다. 곡이 끝나기 전에 그녀가 리모컨으로 껐고,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는 후렴의 한가운데서 잘려 나갔다. 창밖에서 굵어진 빗줄기가 유리를 두드렸고, 침실에는 그 소리와 그녀의 숨소리만 남았다. 나는 천장의 크리스털을 세다 말고 눈을 멈췄다. 관계가 끝나면 그녀는 늘 먼저 몸을 돌려 나를 밀어냈는데, 그날은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린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 사실, 반지하에서 컸어요. 도현 씨.”

물기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불 끝을 만졌다.

“비 오면 하수구 냄새가 방까지 올라와서. 엄마가 신문지를 창틀에 끼워놨거든. 냄새 막는다고. 그래도 다 올라왔어.”

빗소리가 창을 긁는 동안 그녀는 천장을 향해 말을 이었다. 벽지 아랫단에 봄마다 곰팡이가 슬어서, 엄마가 락스 푼 물로 그걸 닦았다고 했다. 닦아낸 자리에 이듬해 또 검은 테두리가 번졌다고. 반지하 창은 사람 발목 높이에 나 있어서, 골목을 지나는 구두코와 운동화 밑창만 방 안에서 올려다보였다고 했다.

“신발만 보고도 알았어. 저 사람은 우리보다 위에 산다, 저 사람은 우리랑 비슷하다.”

그녀가 짧게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천장에 붙어 있는 웃음이었다. 나를 구석으로 몰 때 짓던, 다음 말을 이미 계산해둔 웃음과는 결이 달랐다. 그 얼굴에는 계산이 없었다. 명품 식기에 와인을 따르고 남편 결혼기념일 네 자리를 도어록에 눌러 나를 들이던 여자 대신, 창틀에 신문지를 끼우던 계집아이가 잠깐 거기 앉아 있었다.

“교회 장학금으로 대학 나왔어요.”

“수련회 가면 밥이 무한리필이었어. 나 거기서 처음으로 밥을 남겨봤어. 남겨도 되는구나, 그런 게 신기해서.”

그녀는 천장을 본 채로 말을 이었다.

“그때 나 같은 애한테 하나님은 진짜 필요했어. 장학금 주는 하나님. 그건 확실히 있더라고.”

‘장학금 주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그녀는 성경 구절 외듯 발음했다. 그녀의 입에서 로마서 8장과 어느 백화점 브랜드가 똑같은 억양으로 나오던 것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그 문장만은 억양이 조금 달랐다.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들었다.

“강 장로랑 결혼한 건.”

그녀가 잠깐 멈췄다.

“건너온 거지. 저쪽으로. 강 건너듯이.”

나는 이불 끝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책상 서랍에 처박아둔 월세 고지서, 등록금이 없어 한 학기 미뤄둔 신학교, 성경책 갈피에 끼워둔 채 아직 뜯지 못한 봉투. 그녀가 방금 말한 강의 이쪽 기슭에 그것들이 전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벌써 건넜고, 나는 배에 한 발만 얹은 채였다. 그 사실이 명치께로 뜨겁게 차올라서, 나는 이유 없이 헛기침을 했다.

“도현 씨는 나 안 불쌍해하죠?”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봤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를 불쌍해하는 순간 같은 말을 나 자신에게 돌려줘야 했으므로, 나는 “네”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가 다시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만족한 것 같기도 하고 실망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빗소리가 잦아들 무렵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시트가 흘러내렸다가 다시 어깨에 걸렸고, 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부엌으로 나갔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방바닥에 흩어진 내 옷가지를 봤다. 셔츠 소매가 뒤집힌 채로 러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냉장고 문이 열리자 문에 붙은 강 장로의 출장 달력이 잠깐 흔들렸다. 자석으로 눌러둔 종이 아래쪽이 들썩였다. 칸마다 잘게 적힌 일정 사이에서 나는 무심코 오늘 날짜를 찾았다. 유월 네 번째 수요일. 그 칸 옆으로 며칠 건너, 다음 주에 붉은 동그라미가 하나 더 그어져 있었다. 매주 다른 칸으로 옮겨 다니는 그 동그라미가 그의 부재를 뜻하는지 재석을 뜻하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고, 알고 싶으면서 끝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유리컵에 정수기 물을 받았다. 물줄기가 컵을 채우는 소리가 조용한 부엌에 또렷했다. 신문지를 창틀에 끼우던 손과, 지금 유리컵을 채우는 손과, 내 성경책 갈피에 봉투를 밀어 넣던 손이 같은 손이라는 것을 나는 그 등을 보며 생각했다. 속이 천천히 뒤틀렸다.

“물 마셔요.”

그녀가 돌아서서 컵을 내밀었다. 나는 받아서 마셨다. 세례받던 날 목사가 이마에 부어준 물처럼 차가웠고, 그날처럼 아무것도 씻어내지 못했다. 목구멍을 넘어간 물이 뱃속에 그대로 고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빈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컵 안쪽에 물방울이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벌써 등을 돌려 개수대에 무언가를 헹구고 있었고, 조금 전 신문지 얘기를 하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러그로 돌아가 뒤집힌 셔츠 소매를 바로 뒤집었다. 단추를 아래에서부터 하나씩 채우는 동안, 다음 수요일이면 저 붉은 동그라미가 또 어느 칸으로 옮겨 가 있을지를 생각했다. 벨트를 조이는 손끝이 아까 헛기침을 할 때처럼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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