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수요일의 찬송
5화. 천장의 크리스털과 붉은 동그라미
습관은 계절보다 빨리 왔다.
첫 수요일이 지나고 두 번째, 세 번째가 지나자 몸이 먼저 요일을 기억했다. 화요일 밤 편의점 카운터에서 삼각김밥 유통기한 스티커를 뜯어 폐기 봉투에 담을 때부터, 나는 이미 다음 날 오후의 언덕을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에 교대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커튼도 없는 창을 등지고 세 시간을 잤다. 알람 없이도 열두 시면 눈이 떠졌다. 라면 하나를 끓여 먹고, 성경책을 가방에 넣었다. 봉투가 든 성경책은 여전히 로마서 언저리에서 두꺼웠다. 나는 그것을 펼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방에 두고 나오지도 못했다. 옆구리에 그 무게가 닿아야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6호선은 수요일 오후면 늘 한산했다. 한강진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오면 공기부터 달라졌다. 매연 대신 어느 집 정원에서 나온 흙냄새와 물 준 잔디 냄새가 섞였다. 담이 높아지고 대문 사이가 멀어지는 길을 올라, 나는 그 빌라 현관 앞에 섰다. 도어록 앞에서 잠깐 손을 멈추는 것이 그즈음 생긴 버릇이었다.
“외우기 쉽죠? 남의 남편 생일로 문 열고 들어오는 거.”
첫 수요일에 그녀가 웃으며 알려준 숫자였다. 강 장로의 결혼기념일. 나는 그날도, 그 뒤로도 아무 대답을 못 했다. 그냥 네 자리를 눌렀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나는 매주 다른 남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숫자로 그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면 순서는 늘 같았다. 그녀는 나를 현관에서 반기지 않았다. 부엌에서 잔 두 개를 꺼내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유리끼리 부딪는 맑은 소리. 그다음 거실 오디오 앞으로 걸어가는 슬리퍼 소리. 리모컨을 드는 짧은 정적. 그리고 볼륨이 올라갔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찬송가는 벽을 타고 천장까지 번졌다. 이 집에서 그 곡은 예배가 아니라 신호였다. 소절이 두 번째 마디에 접어들 때쯤이면 그녀는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낮에 바른 크림 냄새가 났다. 그녀의 손이 내 셔츠 맨 위 단추에 닿았다.
“오늘은 늦었네.”
“알바가.”
“알아요. 안 물어봤어.”
그녀는 단추를 하나씩 풀면서 내 눈을 보지 않았다. 내 목젖 언저리, 쇄골, 그 아래를 순서대로 보았다. 물건을 사기 전에 흠집을 확인하는 눈이었다. 나는 그 시선이 싫었고, 그 시선이 나를 훑는 동안 숨이 얕아지는 내가 더 싫었다. 찬송가는 계속 흘렀고, 볼륨이 너무 커서 이웃이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매번 했다. 그러다 곧 알았다. 이 집은 이웃이 아무것도 듣지 못할 만큼 벽이 두꺼운 값이었다.
침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켜지 않아도 대낮의 빛을 받아 크리스털이 저마다 다른 각도로 흔들렸다. 그녀가 내 위로 올라올 때, 나는 눈을 감지 않고 그 조각들을 셌다. 하나, 둘, 셋. 세는 동안은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었다. 넷, 다섯. 그녀의 무게에 침대가 삐걱이면 천장의 크리스털도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그 떨림에 맞춰 찬송가의 후렴이 되풀이됐다. 여섯, 일곱. 숫자가 열을 넘어가면 나는 더 세지 못했다. 셈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몸 안에 두 개의 마음이 나란히 숨 쉬고 있다는 걸 인정했다. 지금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과, 그녀의 손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둘은 서로를 밀어내지 못했다. 혐오가 갈망의 목을 조르지 못했고, 갈망도 혐오를 잠재우지 못했다. 나는 둘 다인 채로 숨을 몰아쉬었고, 그게 가장 정직한 내 얼굴이라는 걸 그 천장 아래서 알아버렸다.
끝나면 그녀가 먼저 일어났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나는 젖은 소리를 배경음으로 두고 남은 크리스털을 마저 셌다. 물소리는 늘 오래 이어졌다. 그녀는 흔적을 씻는 데 나보다 훨씬 능숙했다.
“도현아, 목마르지.”
그녀가 물잔을 들고 돌아와 내 입가에 대주었다. 젖은 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내 어깨에 닿았다. 나는 그 다정함이 정사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몸을 섞는 동안의 그녀는 차라리 솔직했다. 물잔을 기울여주는 손이 나는 더 음란하게 느껴졌다.
“수연 씨는.”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권사님도, 아무 호칭도 아닌 이름. 그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이게 죄라고 생각 안 해요?”
그녀는 잔을 협탁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죄는 회개하면 되잖아. 나 주일마다 하는데.”
그녀는 그 문장을 브랜드 이름을 발음하듯 가볍게 말했다. 죄와 회개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는 무게가 없었다. 나는 뭐라고 되받아야 했다. 그건 회개가 아니라 세탁이라고, 당신은 매주 같은 얼룩을 같은 세제로 지우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되받을 자격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녀의 봉투를 성경책 사이에 끼워둔 채로, 뜯지도 돌려주지도 못한 채로 매주 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죄를 세제로 지운다면, 나는 죄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그 무게가 사라지지 않는 걸 내 순결함의 증거로 삼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위선인지 나는 셀 수 없었다.
셔츠를 다시 채우고 나오는 길, 부엌을 지날 때였다.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은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얇은 사각형 종이 위에 강 장로의 출장 일정이 촘촘했다. 도쿄, 밀라노, 다시 도쿄. 그 사이 어떤 주에는 굵은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 표시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남편이 없는 주인지, 있는 주인지. 나는 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물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물어보는 순간 내가 이 집의 일정표 안에 적힌 한 줄이 된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뭐 봐.”
욕실 쪽에서 그녀가 물었다.
“아니에요. 갈게요.”
현관으로 나와 다시 도어록을 눌렀다. 안에서 잠기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남의 남편 결혼기념일의 온기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언덕은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더 가팔랐다. 흙냄새와 잔디 냄새를 지나 매연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나는 냉장고의 그 붉은 동그라미를 자꾸 떠올렸다. 다음 수요일에는 어느 칸에 그어져 있을지, 그게 나를 부르는 표시인지 아닌지, 나는 알고 싶으면서 끝내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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