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의 찬송3화 / 전 18화2

1부 물과 기름

3화. 성경책에 겹쳐진 봉투

김도현


복도 끝, 세면장 옆 방까지 가는 동안 공용 주방에서 누군가 데운 국 냄새가 따라왔다. 열쇠를 두 번 돌려 문을 밀었다. 늘 문턱에서 먼저 나를 맞던 눅눅한 곰팡이 냄새 대신, 오늘은 다른 것이 방 안에 고여 있었다. 디퓨저의 옅은 우드 향과 오래된 나무 가구에 밴 냄새. 그녀의 거실을 채우던, 새벽 내내 씻어 내고 싶던 그 냄새가 나보다 먼저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는데 성경책 옆구리에서 그 냄새가 더 짙게 흘러나왔다. 나는 문을 등지고 선 채 가방 입구를 벌렸다.

흰 것이 성경책 표지 옆에 끼어 있었다. 처음엔 주보인 줄 알았다. 지난 주일 것을 아직 안 버렸나, 하는 생각이 먼저 지나갔다. 손가락을 넣어 빼내는데 종이가 주보보다 두꺼웠고 각이 살아 있었다. 봉투였다. 봉해지지 않은 입구가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만 원짜리의 붉은 결이 보였다. 한 장이 아니었다. 결이 겹겹으로 포개져 두께를 이루고 있었다.

세어 보지 않았다. 세어 보기도 전에 손끝이 먼저 알았다. 내 방값의 두 배는 되는 돈이었다. 한 평 반짜리 이 방에서 내가 한 달을 사는 값, 그 값의 두 배가 봉투 하나에 접혀 들어와 있었다. 나는 봉투를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봉투를 쥔 손끝에 종이의 결과 지폐의 미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언제 넣었을까. 와인을 따르던 손이 잠깐 식탁 아래로 내려갔던가. 아니면 내가 잠든 새벽, 침대 옆에 벗어 둔 가방 곁으로 그녀가 소리 없이 다가왔던가.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다시 세웠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찬송가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의 손톱은 지하 식당에서 처음 봤을 때처럼 반들거렸을 것이다. 그 손이 내 가방 입구를 벌리고 봉투를 밀어 넣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녀의 침대에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이었을지 나는 그려 보지 못했다. 그리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손을 떼고 두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한 걸음 다가가 봉투를 노려보았다. 형광등 아래 흰 종이가 유난히 밝았다.

바닥에 그것이 있었다. 어젯밤 밟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월세 고지서. 나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붉은 글씨로 찍힌 독촉 문구와 숫자가 형광등 아래 선명했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봉투를 집어 그 고지서 위에 올려놓았다. 두 종이의 모서리가 정확히 겹쳤다. 고지서에 찍힌 미납 금액과, 봉투 속에 접혀 있을 액수가 같은 자리에 포개졌다. 액수가 액수를 딱 가리고도 남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거다. 처음부터. 이 방이 몇 평인지, 내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 내가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는 인간인지. 로마서 8장을 읽어 주겠다며 명함을 건넨 그 손이,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할 것 같던 그 입이, 정죄 대신 이 봉투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나를 정산하고 있었다.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나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봉투 앞에 서 있었다. 이게 모욕인가. 그렇다면 화를 내면 됐다. 봉투를 도로 그녀의 우편함에 처넣거나, 다음 주일 헌금함에 밀어 넣고 잊어버리면 됐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았다. 화 대신, 그 돈이면 이번 달 방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저 혼자 굴러갔다. 계산이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나 자신이 역겨웠다. 이게 자비인가. 자비라면 고마워하면 됐다. 그런데 고마움도 아니었다. 나는 이 두꺼운 종이가 모욕인지 자비인지 밤새 분간하지 못했다.

봉투를 뜯으면 받은 게 됐다. 받으면 어젯밤이 사고 팔린 것이 됐다. 돌려주면 어젯밤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됐다. 인정하면 나는 세례받은 그 이름을 스스로 지워야 했다. 뜯을 수도, 밀어낼 수도 없어서 나는 봉투를 노려보기만 했다. 붉은 결이 봉투 틈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 한 가지가 떠올랐다. 한남동 언덕을 내려오면서, 종로까지 한 시간을 걸으면서, 문득 이젠 택시를 부를 돈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던 것. 아직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았을 때, 아직 이 돈의 존재조차 몰랐을 때, 내 몸은 이미 값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속이 뒤집혔다. 나는 입을 손으로 막고 잠깐 서 있었다. 뭔가 올라올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봉투를 다시 성경책 사이로 밀어 넣었다. 아무 페이지나가 아니었다. 그녀의 명함이 끼워져 있는 바로 그 페이지, 주소와 이름이 적힌 그 종이 옆에 봉투를 포갰다. 명함과 봉투와 성경이 한 자리에 겹쳤다. 나는 그 두께를 덮어 책을 닫았다.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집 냄새는 방을 놓아주지 않았다. 좁은 매트리스에 누워 손바닥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보이지도 않는데 붉은 지폐의 미끈한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자기 전에 세면장에 나가 비누로 두 번이나 문질러 씻었는데도, 그 미끈거림은 손금 사이 어딘가에 눌어붙어 있었다.

천장 어딘가에서 옆방 사람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경책이 놓인 책상 쪽으로 돌아눕지 못하고, 벽을 향해 몸을 말았다. 내일이 오면 저 봉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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