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금이 간 잔
13화. 부유한 물건들의 표정
문자는 짧았다. 저녁이나 하자는 말 뒤에 매장 주소가 붙어 있었고, 발신인은 강 장로였다. 나는 액정을 세 번 읽었다. 편의점 야간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목요일 저녁이었고, 읽는 동안 목이 자꾸 말라 침을 삼켰다. 답을 보내기 전에 세면장으로 가 손을 씻었다. 두 번. 물이 미지근했다.
한남동 언덕 아래, 그의 수입 가구 매장은 유리문을 밀기도 전에 냄새로 먼저 다가왔다. 가죽과 오일이었다. 무겁고 기름진 그 냄새는 문턱을 넘자 코를 눌렀고,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얕게 쉬었다. 검은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나를 알아본 듯 목례하고는 매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진열된 소파와 장식장 사이를 지나는 동안, 조명은 물건마다 다르게 떨어져 나무의 결과 가죽의 모공까지 도드라지게 했다. 값을 확인하지 않으려 눈을 앞만 보고 걸었다.
안쪽 방에는 원목 식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산이라고, 직원이 묻지도 않은 걸 일러주고 문을 닫았다. 식탁 위에 접시가 두 벌 차려져 있었는데, 그 흰 사기의 광택이 낯익어 속이 서늘해졌다. 수요일 밤 그 여자의 식탁에 놓여 있던 은수저와 같은 종류의 빛을 냈다. 부유한 물건들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왔어요? 앉아요.”
강 장로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언성을 높이는 걸 본 적 없는 사람이었고, 그날도 낮고 느린 목소리로 내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곧 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는 고기를 정갈하게 썰었다. 나이프가 접시에 닿을 때마다 얇은 쇳소리가 났고, 그 사이사이로 그는 뼈 없는 말들을 이어갔다. 교회 지하 식당 밥이 요즘 짜졌다는 얘기, 청년들의 봉사가 귀하다는 얘기, 올해 겨울이 이르게 올 것 같다는 얘기.
나는 포크를 쥔 손끝이 미끈거리는 것 같아 자꾸 냅킨에 닦았다. 고기는 잘 씹히지 않았다. 그가 나를 볼 때마다 나는 접시로 눈을 내렸고, 접시의 광택은 매번 그 여자의 부엌을 데려왔다.
“먹어요. 식으면 질겨져요.”
나는 먹었다. 삼키는 것이 일이었다.
접시를 물리고 그가 냅킨으로 입가를 눌렀을 때, 직원이 커피를 내왔다. 잔에서 김이 올랐다. 그가 화제를 바꾼 건 그때였다.
“도현 형제, 신학교는 언제 갈 생각이에요.”
나는 등록금 얘기를 흐렸다. 여건이 되면요, 정도로 말끝을 접었다. 그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교회가 관여하는 장학 재단 하나를 입에 올렸다.
“내가 거기 이사로 있어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성실한 청년 하나 밀어주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매년 두엇씩은 그렇게 세워 보내요.”
방 안이 조용했다. 나이프 소리도 그친 뒤였다. 나는 이게 협박인지 매수인지 가늠하려고 그의 얼굴을 살폈지만, 거기엔 아무 균열도 없었다. 회개하는 얼굴도 아니고 용서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값을 부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는데, 그마저도 정중했다.
“청년은 앞길이 창창하니까.”
그가 잔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도자기에 닿는 소리가 났다.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지요.”
그 ‘은혜’라는 단어가 세례식 날 아이 부모에게 건네던 것과 똑같은 억양으로 떨어졌다. 은혜받는 날입니다, 하던 그 목소리. 나는 등줄기가 굳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던진 축복이라 믿고 싶었던 그날의 인사가, 실은 이 방을 향해 오래전부터 놓여 있던 길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밀라노 일정을 하루 당겨 돌아온 밤이 떠올랐다. 놀랐지, 하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이 우연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우연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어쩌면 그 전부터, 그는 나를 어딘가에 적어두고 있었다. 그 여자가 냉장고 달력의 붉은 표시 안쪽에 나를 넣어 관리했듯, 이 사람은 나를 자신의 장부에 기입해두었다. 가정이라는 장부와 교회라는 장부, 그 두 권 어디쯤의 한 줄로. 두 사람은 서로의 장부를 알면서도 서로의 항목을 지우지 않았다. 나는 양쪽에 동시에 올라간 하나의 숫자였고, 그들이 관리하는 것은 나의 침묵이 아니라 그 숫자의 건재였다.
“장로님.”
나는 무언가 말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나도 몰랐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해요. 급할 거 없어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찬은 그렇게 끝났다.
직원이 유리문을 열어주며 좋은 저녁 되시라고 인사했다. 문을 나서자 가죽과 오일 냄새가 등 뒤에서 닫혔고,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나는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담과 담 너머, 창문 하나에 노란 불이 켜져 있었다. 저 안쪽에 그 여자가 있을 것이었다. 화장실도 없는 거리에서 나는 손을 씻을 수 없었다. 대신 바지에 손바닥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포크를 쥐었던 자리가, 냅킨으로 아무리 닦아도 가시지 않던 그 미끈함이, 천 위에서도 그대로였다.
값은 이미 매겨져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 내려가는 동안 손가락을 접었다. 오늘이 목요일. 닷새 뒤가 수요일. 셈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 숫자를 또박또박 눌러 세었다. 어릴 때부터 숫자를 쓸 때면 위와 아래를 나눠 쓰던 손버릇이, 어둠 속에서 저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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