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의 찬송12화 / 전 18화5

3부 금이 간 잔

12화. 세례반에 비친 오자

김도현


목사님이 물그릇을 내게 넘길 때, 그릇 안쪽에 남은 물기가 조명을 받아 얇게 떨렸다. 백자였다. 세례반 옆 작은 탁자 위에는 흰 수건이 각을 맞춰 개어져 있었고, 나는 왼손에 그 그릇을, 오른손에 로마서 6장이 적힌 성구 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코팅된 카드 모서리가 손가락을 미세하게 눌렀다. 오전 예배가 끝난 본당에는 국화 냄새와 사람들 옷에서 풀린 향수가 섞여 있었고, 세례를 앞둔 아이들이 앞줄에 나란히 앉아 발끝을 흔들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나는 카드를 눈높이로 들고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처음 몇 문장은 매끄럽게 나갔다. 스무 살에 이 자리에 젖은 머리로 섰던 나는, 지금은 그릇을 든 쪽에 서서 남의 세례를 낭독하고 있었다.

첫 세례자는 아홉 살쯤 된 사내아이였다. 목사님이 젖은 손을 아이의 정수리에 얹자 물이 가르마를 따라 갈라졌다. 이마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콧등에서 잠깐 멈췄다가 턱으로 떨어졌다. 눈썹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가 아이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흔들렸다. 아이는 그 물을 닦아내지 않았다. 닦아야 하는 물이 아니라는 걸 저 나이에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거기까지 읽고 나는 앞줄을 봤다. 수연 씨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두 손을 무릎 위에 정갈하게 포갠 채였다. 주일마다 회개하면 된다던 그 얼굴로, 그녀는 아이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물을 보며 손끝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나는 그 손끝을 알았다. 수요일 언덕 위에서 내 목덜미를 쓸던 손이었다.

“장사되어… 새 생명 가운데서…”

혀가 문장을 놓쳤다. 소리가 갈라지고, 갈라진 자리로 침이 말랐다. 나는 카드를 내려다보는 척했지만 글자는 이미 읽히지 않았다. 옆에서 목사님이 다음 아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고, 반주자가 낮게 화음을 깔았다. 누군가 내 낭독이 끊긴 자리를 눈치챘는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물이 저 아이의 무엇을 씻는지는 알 것 같았고, 내 세례가 나의 무엇을 씻었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이 물이 차가운 게 은혜라고 믿었다. 정수리로 떨어진 물이 등줄기까지 서늘하게 지나갈 때, 그 서늘함이 죄를 데려간다고 믿었다. 지금 내 손끝에는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먼저 고이는 그 미끈함이. 나는 백자 그릇을 든 손을 내려다봤고, 이 그릇을 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목구멍을 막았다. 정결했던 적이 있기는 했는지. 그 물음이 성수 안쪽에서 나를 되비췄다.

봉사가 끝나고, 나는 백자 그릇을 흰 수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릇 바닥에 남은 물이 탁자 위에 얕은 원을 그렸다. 성구 카드도 제자리에 돌려놓자, 코팅 모서리가 눌러 낸 자국이 손가락 안쪽에 하얗게 남아 있었다.

로비에는 축하 인사가 오갔다. 세례를 받은 아이들은 머리가 다 마르지도 않은 채 부모 손에 이끌려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셔터음 사이로 누군가 “은혜롭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국화 화분이 로비 양쪽에 놓여 있었고, 본당에서 맡았던 향수 냄새가 좁은 공간에 더 진하게 고였다.

한 집사님이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도현 형제, 오늘 낭독 참 좋았어. 목소리가 은혜롭더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좋았다는 말이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인지 가늠했다. 혀가 문장을 놓친 그 자리를 저 사람이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들었으면서도 좋았다고 하는 거라면 그게 더 견디기 어려운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내 대답은 그게 다였다. 집사님은 내 말끝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다른 쪽 인사로 몸을 돌렸다. 그 등이 멀어지기가 무섭게 재영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내 쪽으로 왔다. 손에 종이컵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마시지는 않았다.

“형, 아까 ‘장사되어’에서 딱 멈췄잖아.”

재영은 웃는 낯이었지만 목소리는 낮게 눌러져 있었다. 물음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낭독대에서 놓쳤던 순간을 저 애가 앞줄 어디쯤에서 정확히 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카드가… 좀 안 넘어가서.”

“카드는 한 장이던데.”

재영이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대답을 골랐다. 목요일 호프집에서 그랬듯 순서와 문장을 미리 짜두었어야 했는데, 이번엔 준비된 게 없었다.

“목이 말라서 그랬어.”

“응.”

재영은 더 캐지 않았다. 그게 재영의 방식이었다. 정곡을 한 번 찌르고, 상대가 피하면 칼을 도로 집어넣는다. 진지해지면 말이 짧아지는 애였다.

“얼굴 또 상했다, 형.”

그 말만 남기고 재영은 종이컵을 화분 옆 탁자에 내려놓고 인사 무리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재영이 앉았던 앞줄을 다시 봤다. 거기서는 낭독대 위에 선 사람이 어느 문장에서 멈추는지, 멈춘 뒤 어디를 보는지가 다 보였을 것이다. 내가 수연 씨를 보고 멈췄다는 것까지도.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짚으며 웃었고, 그 웃음 사이로 강 장로가 걸어왔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켰고, 그는 그 비어난 자리를 밟으며 부모들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회색 정장 소맷단에서 은은한 시계 광택이 드러났다가 다시 소매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아이 아버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은혜받는 날입니다.”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그 ‘은혜’라는 단어가 로비 공기를 지나 내 정수리에 물처럼 얹혔다. 나는 그가 손을 잡은 방식을 오래 봤다. 목요일 밤 원목 식탁 위에서 내 쪽으로 밀어 두던 손이 저 손이었다. 장부를 덮듯 정중하고, 덮은 뒤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손. 그가 고개를 돌리기 전에, 나는 마침 지나가던 집사님의 인사를 받는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걸어갔다.

세면대의 물은 미지근했다. 나는 펌프를 눌러 비누를 짜고 손을 문질렀다. 거품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나는 한 번 더 펌프를 눌렀다. 거울 속 얼굴은 아이 이마를 타고 흐르던 그 물기가 하나도 없이 말라 있었다. 볼이 꺼지고 눈 밑이 어두웠다. 물을 받아야 할 얼굴이 물기 없이 저 혼자 멀쩡한 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나는 손을 헹구고 또 헹궜다. 재영의 ‘딱 멈췄잖아’가 물소리 밑에서 계속 되돌아왔다. 내가 숨겼다고 믿은 자리를 누군가는 그냥 보고 있었다.

고시원 성경책 갈피에는 세례 증서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스무 살에 받은 그 종이에는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잘못 인쇄되어 있었다. 현이 아니라 헌. 김도헌. 나는 그 오자를 발견하고도 사무실에 정정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 종이를 손에 쥐면 정말로 씻긴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씻긴 사람이 나인지 그 이름 속의 누군지가 흐려지는 게 차라리 나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날 물을 받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 김도헌이었고, 나는 처음부터 다른 이름 뒤에 서서 정결을 빌려 입었던 것뿐이었다. 빌린 옷은 언제고 벗겨진다.

수도꼭지를 다시 틀었다. 물소리가 세면장 타일에 부딪혀 크게 울렸다. 손등에 남은 그 미끈함은 미지근한 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손을 담근 채 서 있었고, 물소리 아래에서 손가락이 저 혼자 접혔다. 오늘이 주일. 사흘 뒤가 수요일. 셈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