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어갈 그릇7화 / 전 32화6

2부 손자국

7화. 삼 리터와 비석의 어깨

윤서리


“성인 화장 후 유골 부피”라고 쳤다. 검색창은 망설이지 않았다. 대략 삼 리터. 분쇄 전이면 조금 더 나가고 곱게 갈면 그만큼 준다는 말을, 화면은 날씨를 알려주듯 늘어놓았다. 나는 그 숫자를 노트 귀퉁이에 적고 밑에 내 몸무게를 적었다. 오십사 킬로그램. 그 옆에 키를 붙였다. 살아 있는 나를 오십사라고 부르는데, 태우고 나면 삼이 된다는 계산이 어쩐지 밑지는 거래처럼 느껴져서 나는 실기실 형광등 아래서 혼자 웃었다.

줄자를 꺼냈다. 금속 끝을 쇄골에 걸고 어깨 끝까지 늘였다. 삼십팔. 다시 골반. 삼십사. 자의 차가운 촉이 뼈를 눌렀을 때, 나는 내가 들어갈 안쪽 지름을 처음으로 몸으로 셈했다. 어깨는 접힌다. 무릎도 접힌다. 옆으로 눕히면 사람은 생각보다 작아진다. 결국 다 접혀서 삼 리터가 되는 몸을, 나는 도면 위에 높이 이십오, 안지름 십육으로 옮겨 적었다. 연필 끝이 조금 흔들렸는데, 자를 오래 쥔 탓이라고 정해두었다. 손목이 저린 거지 다른 게 아니라고.

다음 날 오후, 나는 그 도면을 말아 쥐고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문 교수는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종이를 폈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손톱으로 뚜껑의 어깨선을 톡톡 두드렸다.

“이 어깨, 아직도 서 있네요.”

몇 번을 고쳤다고 말하려다 삼켰다. 밤마다 그 곡선만 지웠다 그렸다 했다는 말을 하면, 그가 그걸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만년필 뚜껑을 돌려 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래 매만진 위쪽 절반에, 굵은 사선을 두 번 그었다. 잉크가 종이의 결을 따라 번졌다.

“당신은 그릇을 그린 게 아니라 비석을 그렸어요.”

그가 도면을 내 쪽으로 밀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손날에 묻을 것 같아서 나는 손을 뗐다.

“높이를 이렇게 세우고 어깨를 세우면, 이건 사람이 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라 이름을 새기려고 만든 겁니다.”

목소리가 흙 얘기를 할 때처럼 느려졌다. 그럴 때만 그의 문장은 길어졌다.

“비석은 남으라고 만드는 거고, 그릇은 비라고 만드는 겁니다. 당신이 재야 할 건 몸이 아니에요. 몸이 빠져나간 뒤의 자리지. 그건 줄자로는 안 잽니다.”

나는 삼 리터를 떠올렸다. 쇄골을 눌러가며 잰 삼십팔과 삼십사를 떠올렸다. 그가 오 초 만에 지운 건 내가 사흘 밤을 들인 계산이었다. 화가 나야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선을 긋던 그의 손목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자기 것을 지우는 사람의 각도였다.

시선이 저절로 연구실 구석으로 갔다. 뚜껑 없는 항아리가 먼지를 쓴 채 서 있었다. 몸이 빠져나간 뒤의 빈 자리를 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이십 년째 그 빈 목 하나를 못 덮고 있었다. 앉는 면만 반들거리는 나무 의자가 그쪽을 향해 있었다. 그는 저 앞에 앉아 무얼 쟀을까. 뚜껑의 어깨선을 몇 번이나 지웠다 그렸을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이 더 나올 자리였는데,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려 오세요.”

그가 안경을 벗었다. 지시가 아니라 물음처럼 들리는 말투였다. 그대로 둘 거냐고 묻는 얼굴로, 그대로 둘 리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하는 말.

나는 반쯤 지워진 도면을 말면서 이미 새 선을 긋고 있었다. 어깨를 눕히자. 뚜껑을 넓고 얕게 열자. 세워 올렸던 걸 눌러 앉히자.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승인을 받으려고 내가 밤을 새울 거라는 걸, 나는 그 앞에서 이미 알았다. 그게 배우는 건지 굴복하는 건지는 구분되지 않았고,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구실을 나서는데 말아 쥔 도면이 손안에서 미지근했다. 종이는 얇았고, 그 안에 적힌 이십오와 십육은 가벼웠다. 그런데도 그날 처음으로, 내 죽음이 손에 잡히는 무게로 느껴졌다. 삼 리터. 안지름 십육. 접히는 어깨. 나는 그것을 슬픔이 아니라 부피로 쥐고 있었다. 비어야 완성된다는 그의 말을 나는 아직 몸으로는 몰랐다. 나는 여전히 안을 채우고 싶었다. 무언가를, 이름이든 뭐든, 그 좁은 자리에 남기고 싶었다.

복도 끝에서 나는 한 번 돌아봤다.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안의 빈 목은 보이지 않았다. 내 가방에는 절반이 지워진 도면과, 뚜껑 얹는 법이 적히지 않은 세 개의 배합표가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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