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어갈 그릇5화 / 전 32화2

1부 선고와 흙

5화. 마른 걸레 밑의 진단서

윤서리


엄마의 전화는 늘 저녁에 왔다.

물레 수업이 끝나고 실기실에는 나만 남아 있었다. 개수대 물은 진작 잠갔고, 형광등 하나만 켜 둔 채 나는 작업대에 앉아 손톱 밑을 파내는 중이었다. 흙은 마르면 회색이 된다. 손톱 끝에 낀 그 회색을 반대쪽 엄지손톱으로 밀어내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사흘을 문질러도 안 빠지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에 뜬 ‘엄마’ 두 글자를 잠깐 내려다봤다. 받을까 말까가 아니라, 목소리를 어느 높이에 맞춰 둘까를 먼저 정했다. 나는 손에 묻은 흙을 앞치마에 문지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밥은.”

“먹었지.”

점심부터 아무것도 넘기지 않았다는 말은 삼켰다. 앞치마에 문지른 손을 다시 펴 보니 손금 사이에 회색이 그대로였다.

“김치 부친다. 다음 주에 택배로 보낼 끼다. 냉장고 좀 비아라.”

엄마는 학교에서 뭘 만드는지 묻지 않았다. 유골함이라는 단어가 그 무심함 뒤에 안전하게 숨었다. 나는 그게 고마워서, 고마운 만큼 다른 얘기를 서둘러 꺼냈다.

“이번 달 월세는 냈나. 주인이 또 올린다 카드나.”

“안 올랐어. 다 냈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다음 달 월세를 낼 사람이 나일지 아닐지를 나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고, 그 계산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말은 짧을수록 안전했다. 길어지면 문장 끝이 흔들렸고, 엄마는 그 흔들림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목소리 끝이 반 박자 늦게 떨어지면 “뭐 있제” 하고 바로 파고들었다. 반찬가게 계산대 앞에서 삼십 년을 서 있으면 손님 얼굴만 봐도 오늘 뭘 사갈지 안다고 했다. 딸 목소리쯤은 뒤통수로도 읽을 것이다.

“몸은 괘안나.”

그 한마디에 나는 흙 묻은 손을 쥐었다 폈다. 손바닥 안쪽이 축축했다. 낮에 만진 흙의 습기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이었는지 구분되지 않았다.

“괜찮지. 엄마나 무릎 조심해. 계단 오르내릴 때.”

순서를 바꿔 되쏘았다. 몸을 물으면 몸으로 대답하지 않고, 엄마의 무릎으로 화제를 넘기는 것. 오래 익힌 수법이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도 내가 먼저 했다. 걱정을 먼저 하는 쪽이 걱정을 덜 받는다.

“됐다마. 끊는다.”

통화는 이 분도 되지 않았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나는 어두워진 액정을 한참 들여다봤다. 거기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손톱 밑의 회색은 여전히 그 자리였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책상 서랍 맨 안쪽에 밀어 넣어 둔 봉투를 다시 꺼냈다. 겉면에는 부산 주소와 엄마 이름이 내 글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반찬가게 상호까지 썼다. 진단서 한 장이 그 안에서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우표만 붙이면 되는 상태였다.

붙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상상이 아니라 예정이었다. 사나흘 뒤, 엄마가 계산대 앞에서 이 봉투를 받는다. 김치 부치던 손으로 겉면의 내 글씨를 알아보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은 다음 봉투를 뜯는다. 담도암, 이라는 세 글자와 ‘길어야 여섯 달’이라는 소견을 계산대 유리 위에서 읽는다. 그 다음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거기서 화면이 꺼졌다.

나는 우표를 서랍 위에 올려놓고 봉투를 노려봤다. 붙일까 말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언제 붙일까를 계산하고 있었다. 가을 전시 뒤에. 아니면 입원하기 전날. 죽음을 통보하는 일에도 적기가 있다고 믿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반찬가게 성수기는 언제인지, 김장철은 피해야 하는지까지 머릿속에서 표를 그리다가, 나는 봉투를 다시 접어 가방에 넣었다.

우표는 서랍 위에 남겨 뒀다. 붙일 준비가 된 것처럼.

다음 날 실기실에 나가서, 나는 봉투를 집 서랍이 아니라 작업대 서랍 맨 안쪽으로 옮겼다. 흙물 얼룩이 밴 걸레와 물기 다 마른 스펀지 아래, 아무도 열어 볼 이유가 없는 칸이었다. 조교도 재인도 이 칸은 뒤지지 않는다. 걸레를 들추자 마른 흙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그 아래에 봉투를 밀어 넣고 다시 걸레를 덮었다.

집에 두면 엄마가 서울 올라와 우연히라도 볼까 봐, 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지만 그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엄마는 예고 없이 올라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내가 들어갈 그릇을 빚는 이 방 안에 그 봉투를 두는 편이, 이상하게 앞뒤가 맞는다고 느꼈을 뿐이다. 서랍 맨 위 칸에는 초벌을 기다리는 유골함 몸통이 마른 천을 덮은 채 놓여 있었고, 맨 아래 칸에는 반듯하게 접힌 진단서가 걸레 밑에 눌려 있었다. 같은 캐비닛 안에서 한 칸씩 떨어진 그 둘을 나란히 두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가라앉았다.

서랍을 닫고 돌아서니 물레가 있었다.

물레 위에는 지난 수업 때 문 교수가 철사로 반을 가른 흙덩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젖은 단면이 위를 향한 채였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안쪽은 마르지 않았다. 겉면만 희끗하게 김이 오른 것처럼 색이 바랬고, 갈라진 속은 여전히 검게 젖어 번들거렸다. 안이 겉보다 오래 젖어 있는 흙. 그도 그걸 보여주려고 굳이 반을 갈랐을 것이다.

나는 그 흙덩이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아직 축축한 온도가 손바닥에 옮겨왔다. 반으로 갈린 두 쪽을 다시 맞붙이고, 위에서부터 눌러 뭉쳤다. 갈라진 자국이 손바닥 밑에서 뭉개지며 사라졌다. 안과 밖의 색이 눌리는 힘 안에서 하나로 섞였다.

부치지 못한 것은 걸레 밑에 묻었고, 여기 젖은 흙은 다시 뭉쳤다. 나는 뭉친 흙덩이를 물레 한가운데에 얹고, 오후 세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다음 주엔 이 안을 본다고 했다. 안을 보겠다는 사람 앞에서, 나는 서랍 하나를 방금 닫아 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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