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선고와 흙
4화. 중심을 잡는 손
일주일은 흙이 마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톱 밑의 자국은 사흘째에 지워졌고, 나흘째에 새 자국이 생겼다. 집 화장실 세면대에서 몇 번이나 손을 문지르는 동안, 나는 첫 수업 자리를 물레 앞으로 정한 그의 속내를 헤아려 보려 했다. 글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흙부터 만지게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리 돌려봐도 헤아려지지 않았다.
약속한 오후 세 시, 연구실 안쪽 작업실은 창을 통과한 봄볕과 상관없이 서늘했다. 바닥이 시멘트라 발끝부터 냉기가 올라왔다. 문 교수는 물레 앞의 낮은 걸상을 턱으로 가리켰다.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앉았고, 그가 건넨 흙 한 덩이를 두 손으로 받았다. 무겁고 축축했다. 손바닥 안에서 흙이 제 무게로 처졌다.
“판에 붙이세요. 중심을 잡고.”
그게 지시의 전부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반보 물러섰다.
나는 흙을 판 위에 내리쳤다. 젖은 소리가 났다. 페달을 밟자 물레가 돌기 시작했고, 흙은 곧바로 제멋대로였다. 손을 대는 순간 덩이가 부풀었다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손가락 사이로 진흙이 삐져나와 손목을 타고 흘렀다. 나는 눌렀다. 누를수록 덩이는 도망쳤다.
“힘을 주니까 도망가는 겁니다.”
그 말이 얄미웠다. 힘을 뺐다. 이번엔 덩이가 통째로 튀어 판 밖으로 넘어갈 뻔했다. 나는 급히 두 손으로 감아 끌어왔고, 손목까지 흙이 번졌다.
물레는 계속 돌았다. 그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재료를 고르듯 나를 골랐던 사람이 이제 그 재료가 판 위에서 무너지는 걸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견딜 수 없었다. 무너지는 흙보다 그쪽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여섯 달 남은 몸으로 나는 흙 한 덩이의 중심도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이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걸상을 끄는 소리가 났다. 그가 내 등 뒤로 왔다.
냄새가 먼저 닿았다. 마른 향에 오래 물먹은 흙이 섞인, 어느 쪽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냄새. 스웨터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의 마른 손이 내 손등 위로 겹쳐졌다. 손톱 끝에 낀 흙까지 보일 만큼 가까웠다. 노인의 손인데 힘줄이 젖은 밧줄처럼 굵었다.
“누르지 말고, 감싸요. 이렇게.”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흙 쪽으로 천천히 오므렸다. 두 손이 함께 흙의 옆구리를 감았다. 그 순간 흙이 고요해졌다. 방금까지 도망치던 덩이가 물레 중심에 붙박여, 돌면서도 미동조차 없이 젖은 원기둥으로 섰다. 회전하는데 정지해 있었다. 물레 판의 나뭇결은 흙 아래에서 계속 돌아가는데, 흙만 한 점에 못 박혀 있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던 떨림도 사라졌다. 진동하던 것이 갑자기 매끄러워졌다.
그 고요가 흙에서 온 것인지 내 몸에서 온 것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등 뒤의 체온이 목덜미로 밀려 올라왔다. 손등에 얹힌 무게가 손목을 지나 팔꿈치까지 번졌다. 팔뚝의 잔털이 서고, 숨이 어깨에 걸려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것이 승인인지 다른 무엇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계산하지 못했다. 계산이 특기인 나였다.
“됐어요. 느껴집니까, 지금.”
목소리가 귓바퀴 옆에서 낮게 울렸다. 반말과 존댓말이 한 문장 안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네, 라고 대답하는 대신 침을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것 같았다.
그가 손을 뗐다. 물러났다. 그런데 흙은 그대로 돌았다. 손을 뗐는데도 원기둥은 무너지지 않고 중심에 서 있었다. 나는 내 두 손을 흙에서 떼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손등의 온기는 물러난 그를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았다. 경멸할 준비는 진작 마쳐 두었다. 배속 신청서를 낼 때부터, 재인이 그 인간이 타인의 서사를 재료로 쓴다고 했을 때부터. 그런데 온기가 팔을 타고 어깨로 올라오는 동안 나는 그 준비가 어디에 있었는지 더듬어 찾았고, 잡히는 게 없었다. 무너진 흙보다 그게 무서웠다.
물레를 멈추고 손을 씻으러 갔다. 작업실 한쪽 개수대의 물은 얼음처럼 찼다. 손톱 밑에 낀 흙은 아무리 문질러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문지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구석에 그것이 있었다. 먼지를 쓴 백자 항아리. 뚜껑 없이 입을 벌린 미완성 덩이. 첫날 연구실에서 봤을 때보다 오후 빛 속에서 더 허옇게, 더 오래되어 보였다. 입을 벌린 채 이십 년쯤 아무것도 담지 못한 그릇.
“저건 뭐예요.”
젖은 손을 든 채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대에서 다른 흙덩이를 집어 철사를 팽팽히 걸었다. 철사가 흙을 지나는 소리가 짧게 났다. 그는 반으로 갈린 흙의 젖은 단면을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단면은 번들거렸다. 나는 그 안이 그렇게 촘촘한지 그날 처음 알았다. 겉에서 보던 흙과 속에서 드러난 흙은 다른 밀도였다. 기포 하나 없이, 검게 젖어 빽빽했다.
“다음 주엔 이 안을 봅니다.”
안을 본다는 말이 지도의 두 번째 문장이었다. 나는 그가 끝내 항아리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음을 흙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손을 다 씻지도 못한 채 나는 개수대 앞에 서서, 뚜껑 없는 항아리와 갈라진 흙의 단면을 번갈아 봤다. 둘 다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쪽은 이십 년째, 한쪽은 방금.
손톱 밑의 흙은 그날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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