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빙렬
29화. 죽음이 올라온 밥상
택시를 탔다.
부산역에서 엄마 가게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면 닿았다. 예전에는 캐리어를 끌고 그 길을 걸으며 국밥집 간판을 세곤 했는데, 오늘은 손잡이를 오래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손끝이 떨려서, 바퀴가 보도블록 틈에 걸릴 때마다 손목까지 흔들렸다. 기사에게 가게 이름을 대자 기사는 “아, 거기 반찬 잘하는 데” 했고, 나는 그 말에 괜히 조금 우쭐해서 창밖으로 낯익은 시장통을 내다봤다.
가게 문을 밀자 냄새가 먼저 달려들었다. 참기름과, 팬에서 마르고 있는 멸치와, 그 둘 사이에 낀 간장 졸는 냄새.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말랐네.”
그게 다였다. 봄에 서울에서 서랍 속 봉투를 뜯어 본 뒤로 엄마와 나 사이에는 뜯긴 봉투 하나가 늘 놓여 있었는데, 오늘 엄마는 그걸 밟지 않고 옆으로 비켜 갔다. 나도 비켜 갔다. 우리는 저녁 장사를 일찍 접었다. 엄마가 반찬통 뚜껑을 하나씩 눌러 닫는 동안 나는 진열대 유리에 붙은 가격표를 눈으로 읽었고, 그러고 나서 둘이 이층 살림집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여덟 칸인 걸 나는 오늘도 세지 않으려다 세고 말았다.
방바닥에 앉아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전시 사진을 넘겼다. 좌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유골함, 어깨선 위로 얼음 결처럼 번진 실금이 잡힌 사진. 엄마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이기 니가 만든 항아리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려 안쪽을 확대했다. 우묵한 속이 조명을 받아 하얗게 떴다.
“속이 훤하네. 뭐 담을라꼬 이래 파냈노.”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웃는 얼굴을 먼저 만들고 나서 말했다.
“내 들어갈 데.”
엄마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돋보기 너머로 눈이 한 번 커졌다가 도로 가라앉는 게 보였다. 봄에 봉투를 뜯었을 때 엄마가 안 것은 병이었고, 그게 언제 시작됐는지였지, 딸이 제 손으로 제 그릇을 파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엄마는 한참을 그 우묵한 속만 들여다보다가, 툭 뱉었다.
“니 들어갈 방치고는 좁네.”
나는 웃었다. 진짜로 웃음이 났다. 봄부터 지금까지 이 병을 입에 올릴 때 아무도 웃지 못했다. 재인도, 문 교수도, 잡지 기자도, 나조차도. 그런데 엄마는 그걸 방이라고 불렀고 좁다고 흠을 잡았다. 좁으면 넓혀 달라는 소리로 들려서,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방바닥에 손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접었다. 엄마가 “와 저라노” 하면서도 입꼬리가 잠깐 올라가는 걸 나는 접힌 어깨 사이로 봤다.
그날 밤 우리는 처음으로 병 얘기를 제대로 했다. 엄마가 김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담을 것도 없으면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나를 보지 않고, 김치 국물이 손등에 묻는 것도 모른 채였다.
“언제 알았노.”
“봄에.”
서랍 걸레 밑에 진단서를 숨긴 것도, 엄마가 그걸 뜯어 본 걸 알고도 서울에서 내가 모른 척 넘긴 것도, 그날 밤 다 꺼냈다. 화를 낼 줄 알았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뚜껑에 붙은 고춧가루를 손톱으로 떼면서 물었다.
“석 달이라 캤나, 두 달이라 캤나.”
나는 의사 말을 그대로 옮겼다. 두 달, 길게 봐도 석 달. 엄마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라믄 김장은 못 보겠네.”
나는 그 우회가 고마웠다. 죽는다는 말을 배추 포기 수로 바꿔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엄마 하나뿐이었다.
“안 봐도 돼. 겉잎이나 미리 뜯어 놔.”
엄마가 그제야 나를 봤다. 눈가가 젖어 있었는데 소리는 내지 않았다. 반찬가게 이십 몇 년에 우는 법을 잊은 사람 같았다. 나는 유골함 안벽에 손톱으로 파 둔 초승달 자국 얘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그건 아무의 지문도 앉지 못하게 비워 둔 자리라서, 엄마에게조차 채워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팔지 않은 한 줄은 엄마 앞에서도 팔지 않았다.
이튿날 저녁상에는 반찬가게 통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콩나물을 새로 무쳤고 계란을 새로 부쳤다. 고등어를 무와 함께 조렸고, 멸치는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볶아 냈다. 가게에서 하루 종일 남의 반찬을 파는 사람이 집에서는 좀처럼 상을 안 차리던 걸 나는 알았다. 이날은 진열대 통을 다 무시하고 프라이팬을 새로 달궜다.
“밥 무라. 남기지 말고.”
나는 요즘 몇 술 못 뜬다는 말을 삼켰다. 계란말이를 하나 집는데 젓가락 끝이 접시를 두어 번 긁었다. 손이 떨렸다. 가마의 불을 지나고도 이 떨림만은 재로 앉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고등어 한 토막을 제 앞접시로 끌어다 가시를 발랐다. 젓가락으로 살을 헤집고, 잔가시를 손끝으로 골라내고, 발라낸 흰 살점을 내 밥그릇 위에 얹었다.
“가시 발랐다.”
스무 살 넘어 처음 받아 보는 밥이었다. 나는 그 살점을 입에 넣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무가 간을 다 빨아들인 조림이었다. 씹는 동안 문 교수가 떠올랐다. 이십 년 만에 아내의 백자에 뚜껑을 덮으러 납골당으로 갔을 그의 마른 손. 임시함에서 진짜 목으로 유골을 옮겨 담을 때, 그 손도 이만큼 떨렸을까. 다들 각자의 그릇을 채우거나 비우는 중이었다. 나는 여기 앉아 남이 발라 준 살을 씹고, 그 노인은 저기서 이십 년 미룬 뚜껑을 닫고.
밥을 반 그릇쯤 비웠다. 요 몇 주 통틀어 가장 많이 먹은 양이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자 엄마가 나를 봤다. 그러더니 활짝 웃었다. 봄에 봉투를 뜯은 뒤로 처음 보는, 이도 다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죽음이 마침내 밥상 위에 올라와 다른 반찬들과 나란히 놓인 것을, 콩나물 옆에 앉아도 되는 반찬 하나가 된 것을, 나는 그 웃음을 보고 알았다.
“더 무라.”
엄마가 밥그릇을 뺏어 갔다. 밥통 쪽으로 돌아앉는 엄마의 등이, 봄보다 한 뼘쯤 좁아져 있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