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불
24화. 두 빈 목이 삼키는 불
가마동의 벽돌은 밤에도 손을 대면 데일 만큼 달아 있었다. 낮에 한 번 예열을 돌린 가스가마가 아직 몸을 식히지 못하고, 이음새마다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나는 재임 선반 위에 유골함을 올려 두고 순서를 기다렸다. 손끝을 뚜껑 안쪽으로 넣어 우묵한 어둠을 한 번 쓸었다. 흙은 이제 물기를 다 놓아버려 서걱거렸고, 그 서걱거림이 손톱 밑까지 마른 소리로 올라왔다. 시유를 마친 몸통은 유약이 마르며 분처럼 뽀얗게 앉아 있어서, 손을 대면 그 가루가 지문에 옮겨 붙었다.
문 교수는 가마 입구에 쪼그려 앉아 시유한 기물을 하나씩 밀어 넣고 있었다. 접시, 완, 굽 높은 사발. 그는 기물끼리 닿지 않도록 손가락 두 마디쯤 간격을 재며 자리를 잡았고, 그럴 때마다 손등에 붙은 흙가루가 열기에 마르며 하얗게 일어나 떨어졌다. 나는 오래 벼려 온 문장을 그의 등에 던졌다.
“교수님, 조건이 있어요.”
그가 밀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말하세요.”
“연구실의 그 백자요. 사모님 항아리. 이번 가마에 같이 재이세요. 뚜껑은 제가 빚을게요.”
그의 어깨가 아주 잠깐 굳었다가 풀렸다. 밀어 넣던 사발이 벽돌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나는 숨을 참았다가 나머지를 마저 뱉었다.
“대신 도록에서 공동제작자 이름을 빼세요. 어깨선 곡선은 남겨도 좋아요. 이름만요.”
침묵이 가마의 소음보다 무겁게 내려앉았다. 팬이 돌아가는 소리, 가스가 새는 낮은 휘파람, 그 사이로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 펴는 소리가 그의 나이만큼 났다. 그는 밸브 옆에 걸어 둔 목장갑을 한 짝 벗어 손바닥에 쥐고, 그것으로 이마의 땀을 눌렀다. 시간을 버는 손짓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가 돌아서며 낮게 물었다.
“서리 씨는, 왜 남의 뚜껑까지 덮으려고 합니까.”
나는 반어를 골랐다. 정색보다 반어가 그에게는 더 아플 것을 알았다.
“남는 사람을 위한 거라면서요. 유언은.”
그 문장은 몇 달 전 그가 내게 준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메일을 들킨 그가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꺼냈던 말.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오늘 밤 그의 앞에 되꺼내 놓았다. 그의 얼굴에 이십 년쯤 묵어 탁해진 무언가가 다시 스쳤다. 어깨선을 뭉갤 때 그의 눈을 지나가던 것과 같은 색이었다. 이번엔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눈을 내렸다. 벗어 든 목장갑을 다시 끼는 척하다 말고, 그것을 밸브 위에 던지듯 걸쳐 두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치마에 손을 닦고, 가마동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며 바깥의 찬 공기가 한 줌 들어왔다가 열기에 삼켜졌다. 나는 그것을 거절이라 여겼다. 떨리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애초에 거래가 성립할 거라고 믿지도 않았으면서, 손끝은 벌써 몇 시간 뒤의 실망을 세고 있었다. 나는 선반 위 내 유골함으로 눈을 돌려, 비어 있는 목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저 목에 얹을 뚜껑을, 나는 아직 흙덩이로도 만져 보지 못했다.
십오 분쯤 지났을까. 문이 다시 열렸다.
문 교수는 뚜껑 없는 흰 항아리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연구실 구석에서 이십 년을 앉아 있던 그 백자였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깃에 회색 먼지가 옮겨 붙어 있었다. 몸통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작았고, 목이 비어 있어서 더 시렸다. 그는 그것을 재임대 위, 내 유골함 바로 옆에 내려놓았다. 흙과 흙이 닿는 둔한 소리가 났다. 항아리 밑굽에 이십 년치 먼지가 검은 테로 눌어붙어 있어서, 그가 손끝으로 그것을 한 번 문질러 닦았다. 먼지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두 그릇의 어깨가 나란히 놓이자 곡선이 닮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손이 눌렀으니까. 비 오던 밤, 내 물레 위에서 그의 손이 그렸던 그 각도가, 이십 년 전 이 항아리 위에서도 똑같이 움직였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역겨우면서도, 두 어깨가 나란한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뚜껑을 빚겠다고 했지요.”
그가 반말과 존댓말 사이 어딘가에서 말했다.
“이 목 치수, 오늘 재 가세요. 흙이 마르기 전에.”
나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냈다. 금속 자가 손안에서 미끄러웠다. 항아리 입술에 자를 대는데 숫자가 두 번 흔들렸다. 항암 뒤로 손끝이 제 마음대로 놀아서, 십육이 십칠로 보였다가 다시 십육으로 돌아왔다. 나는 세 번째에야 눈금을 붙들었다. 입술 안쪽으로 자를 밀어 넣자 오래된 백자의 유약이 손끝에 서늘하게 닿았다. 내 유골함의 마른 유약과는 온도부터 달랐다. 하나는 이미 불을 통과한 매끄러움이었고, 하나는 아직 불을 기다리는 서걱거림이었다. 그때 그가 내 손목 밑에 제 손을 받쳤다.
그 받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금이 멎자 그는 곧 손을 뗐다. 필요 이상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 손이 그렇게 짧게 떨어진 건 처음이었다. 굽을 깎던 밤에도, 비 오던 물레 위에서도 그의 엄지는 언제나 조금 더 길게 남아 있었는데. 나는 그 짧아진 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리다가, 헤아리기를 그만두고 숫자를 노트에 적었다. 안지름 십육, 목 높이 삼점오. 연필심이 종이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재임이 끝났다. 그가 다른 기물들 사이에 두 항아리를 나란히 자리 잡았다. 내 것과 그의 아내의 것.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간격이었다. 그는 두 항아리 사이에 내화갑 받침을 얇게 끼워, 불길 속에서 둘이 서로에게 기대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 가마 문을 닫기 직전, 나는 관측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 유골함 안쪽에는 아직 내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성형 때 내가 새겨 둔 홈. 어떤 지문도 닿지 않은, 팔지 않은 안쪽. 그 홈은 불에 들어가도 남을까. 나는 그것부터 걱정했다.
“이름은요.”
내가 물었다.
문 교수가 관측창의 덮개를 밀어 닫으며, 대답 대신 말했다.
“1300도에서는 누구 지문이든 다 녹습니다. 이름만 종이에 남지요.”
나는 그것이 승낙인지 회피인지 알 수 없었다. 판단을 뒤로 미루는 건 원래 그의 버릇이었다. 나는 그 버릇을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그럼 종이는 제가 지울게요.”
그가 나를 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는 얼굴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밸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손잡이를 반 바퀴 돌리자 가마 안에서 낮은 폭발음 같은 점화가 일었고, 팬이 다시 크게 돌기 시작했다. 그는 관측창 틈으로 불의 색을 살피며 손잡이를 아주 조금씩 더 열었다. 처음엔 벌겋고 탁하던 불이, 그의 손끝이 밸브를 미는 만큼 안쪽에서 밝은 주황으로 갈아 앉았다.
“초반에 급하게 올리면 목이 터집니다.”
그가 관측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마른 흙일수록 천천히요.”
두 개의 빈 목이 나란히 그 열을 삼키기 시작했다. 하나는 재를 담을 것이었고, 하나는 이십 년째 임시함에 갇힌 재를 마침내 옮겨 담을 것이었다. 불빛이 관측창 안에서 붉게 부풀 때마다, 두 항아리의 그림자가 벽돌 벽에 겹쳐졌다 갈라졌다.
나는 불빛에 물든 노인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가 지금껏 내 죽음을 팔아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밤에는 그것이 먼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파는 자이기 전에, 아직 아무것도 덮지 못한 자라는 것이 먼저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을 슬픔 없이 바라보았다. 슬픔은 그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었다. 나는 내 뚜껑 하나를 완성하려고 여기 왔고, 이제 그의 목 치수까지 노트에 적혀 있었다.
가마의 온도계가 조금씩 올라갔다. 나는 밤을 새우기로 하고 벽돌 옆에 앉았다. 등 뒤의 열이 환자복 위에 걸친 작업복을 데웠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도록의 이름이 지워질지, 내 손톱자국이 불을 견딜지, 두 항아리가 갈라지지 않고 이 밤을 통과할지. 온도계의 붉은 숫자만이 흔들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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