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금
22화. 죽어가는 여자의 뚜껑
응급실에 눕혀지기 전에, 피가 먼저 왔다.
새벽 세 시의 실기실은 물 흐르는 소리도 없었다. 물레는 멈춰 있었고 나는 뚜껑의 건조 상태를 손끝으로 눌러보는 중이었다. 반건조. 손가락이 얕게 잠겼다가 천천히 밀려 나왔다. 이대로 사흘을 더 두면 어깨선과 두께가 어긋난 자리부터 실금이 간다는 걸 손끝이 먼저 알았다. 실금이 가면 소성 때 그 자리가 벌어진다. 벌어지면 처음부터 다시다. 나에게 처음부터 다시는 없었다.
기침은 한 번이었다. 목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왔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손을 떼자 붉었다. 흙보다 뜨겁고 흙보다 묽었다. 뚜껑을 향해 상체가 기울던 참이라 나는 몸을 옆으로 틀었다. 붉은 것이 우묵한 속으로 떨어지지 않게. 아직 굽지 않은 흙은 물을 그대로 빨아들인다. 그 자리가 소성 때 어떻게 터질지 나는 몰랐고, 모르는 건 두었다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 새벽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거였다. 뚜껑을 피에서 비켜 세우는 일. 나중에 그 순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조금 웃었다. 죽어가는 여자가 제 관 뚜껑부터 챙겼다.
침대에 눕혀졌을 때도 나는 천장을 보지 않았다. 형광등 두 줄이 지나가는 사이 어딘가에 실기실 벽의 온습도계가 겹쳐 떠올랐다. 습도가 얼마였더라. 젖은 신문지로 뚜껑을 덮어두지 않고 나온 게 그제야 생각났다. 밤새 마른 공기가 실기실을 훑고 지나갈 것이고, 겉은 마르고 속은 젖은 채로 굳어갈 것이고, 그 시차가 금이 될 것이다. 응급실 커튼이 젖혀지고 젊은 의사가 들어왔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하루치 건조 손실을 계산하고 있었다.
의사는 말이 빨랐다. 모니터를 보며 숫자를 읽었다.
“각혈량이 적지 않았고요, 간 수치가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봄에 들으신 기간보다 더 짧게 잡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상태면 두 달, 길게 봐도 석 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이라는 말이 무섭지 않았다. 무섭지 않다는 게 무서웠다. 대신 머릿속에서는 가마동 예약이 십일월 둘째 주라는 사실과, 초벌과 유약 소성 사이에 필요한 최소 건조일수가 나란히 놓였다. 두 달이면 된다. 뚜껑만 안 갈라지면, 두 달이면 그 안에 다 들어간다. 나는 남은 시간을 개월로 받지 않고 소성 회차로 받았다. 초벌 한 번, 유약 한 번. 불에 두 번만 들어가면 되는 몸이었다.
“환자분.”
의사가 처음으로 화면에서 얼굴을 돌렸다.
“지금 뭐 계산하고 계세요?”
가마 일정이요, 라고 대답할 뻔했다. 삼켰다. 대신 짧게 끊었다.
“괜찮아요. 놀라진 않았어요.”
속은 길고 말은 짧아야 했다.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돌아갔다. 놀라지 않는 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운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간호사가 손등에 링거 바늘을 꽂았다. 찌르는 순간 왼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통증이 아니라 그 떨림을 보고 있었다. 항암을 거듭한 뒤로 손끝이 저 혼자 흔들리는 일이 잦아졌고, 이 손으로 뚜껑 굽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가 지금 내게 남은 유일한 질문이었다. 굽은 그릇이 마지막으로 서는 자리다. 흔들리는 손으로 서는 자리를 깎다가 한 번만 빗나가도 뚜껑은 몸체 위에 비뚜로 앉는다. 비뚜로 앉은 뚜껑은 덮은 게 아니라 얹어둔 것이다.
문 교수의 연구실 구석에 이십 년째 서 있는 흰 항아리가 떠올랐다. 뚜껑이 없어서 여태 그릇이 되지 못한 것. 몸만 있고 입을 못 막아, 그 안에 들어갈 사람은 아직도 납골당 임시함에 있다고 했다. 나는 두 번째 항아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저 노인이 못 덮은 뚜껑을, 하필 내 남은 개월 수를 마감일 삼아 내 관 위에 얹으려 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니 내 뚜껑은 내가 덮어야 했다. 흔들리는 이 손으로라도.
비가 그쳤다가 다시 창을 두드렸다. 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휴대폰을 받았다. 재인도, 엄마도, 문 교수도 아니었다. 새벽에 깨워도 될 만큼만 아는 사이, 실기실 조교에게 문자를 보냈다.
물레 옆에 있는 뚜껑, 젖은 신문지로 한 겹만 덮어서 습도 유지해 주세요. 완전히 싸지는 말고요. 안쪽은 젖은 채로 두셔야 돼요.
전송을 누르고 답이 오기 전에 나는 오른손 엄지를 들여다봤다. 손톱과 살 사이에 마른 흙이 얇게 남아 있었다. 손바닥의 피는 아까 화장실에서 씻어냈는데 이건 아직 거기 있었다. 피는 물에 지워지고 흙은 남는다는 게, 그 새벽에 이상하게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아직 흙 묻은 손이었다. 죽어가는 환자이기 전에.
병상 시트는 팽팽하고 서늘했다. 손바닥으로 눌러보니 반건조된 흙과 온도가 달랐다. 흙은 마르면서도 안쪽에 미지근한 물기를 오래 물고 있는데, 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웠다. 나는 그 차이를 오래 쟀다. 두 달, 어쩌면 석 달. 그 안에 초벌 한 번, 유약 한 번. 계산이 딱 떨어지는데도 손끝이 자꾸 흔들려서, 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시트 위에 눌러두었다. 눌러도 떨림은 손바닥 안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조교의 답인가 하고 화면을 켰다. 문 교수였다.
가마동 십일월 둘째 주, 앞당길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봤다. 그가 내 남은 시간을 다시 세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나만큼 빠르게. 화면 불빛 아래에서 왼손이 또 흔들렸고, 이번에는 눌러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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