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금
20화. 겹쳐진 지문과 굳은 어깨선
“학과 사무실에서 너 찾더라.”
재인이 실기실 문을 발로 밀고 들어와, 갤러리 로고가 박힌 대봉투를 내 물레 옆에 던졌다. 봉투가 판 위에 떨어지면서 마른 흙가루가 살짝 튀었다.
“이거 놓고 가래. 무슨 상장이라도 오는 줄 알았네.”
나는 물레를 멈추고 흙 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손톱 밑은 문질러도 소용없었지만 봉투 겉면에 회색을 묻히기는 싫었다. 봉투를 뜯자 반들거리는 아트지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코팅된 종이는 흙 냄새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낯선 냄새 위에 내 유골함이 실려 있었다.
무광 회백색 몸통. 그가 눌러 완성한 어깨선. 조명을 낮게 깔아서 곡선의 그늘이 실물보다 깊었다. 사진은 흙보다 그럴듯했다. 그 아래 캡션이 있었다.
유골함, 문학수·윤서리 공동작, 2020년대, 도자.
나는 그 순서를 한참 봤다. 문학수라는 이름이 내 이름 앞에 있었다. 이름의 순서란 결국 지분의 순서다. 나는 그걸 도자기 값 매기듯 계산해 본 적이 있으면서도, 활자로 확인하는 건 또 다른 온도였다.
“왜 저 인간이 앞이야.”
재인이 도록을 낚아채 캡션에 눈을 박았다. 나는 대답 대신 작업대 밑 손가방을 끌어당겼다. 계약서 완본은 안쪽 주머니에서 두 달 가까이 접힌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갤러리 회의실에서 끝내 펴지 않고 넘긴 그 장. 반쯤 접힌 자국이 오래되어 종이가 그 선을 따라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나는 접힌 자리를 손톱으로 눌러 폈다. 제7조. 공동제작자 조항. 그 아래 문장은 짧고 단정했다. 지도교수의 실질적 조형 개입이 있는 경우 해당 작품은 공동제작물로 하며, 저작권 및 판매 수익은 균등 배분한다.
균등. 오십 대 오십. 나는 내 관의 절반을 이미 그의 지문과 함께 넘긴 거였다. 비 오는 날 뭉갰다가 그의 손 아래서 다시 올린 그 어깨선, 두 사람 지문이 경계를 잃고 굳은 그 자리가 여기 적힌 ‘실질적 조형 개입’이었다. 나는 웃음이 났다. 나한테는 울음보다 계산이 먼저 오는 버릇이 있는데, 이럴 때만은 그 버릇이 정직했다.
“미쳤냐 진짜. 이걸 안 읽고 사인을 해?”
재인이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관이야, 서리야. 절반이 저 영감 거라고 여기 적혀 있잖아. 도자기 반쪽을 어떻게 나눠. 죽어서도 저 인간이랑 반씩 눕냐?”
“안 편 거야. 못 편 게 아니라.”
재인이 나를 노려봤다. “그게 더 나빠.”
나도 알았다. 펴지 않은 건 몰라서가 아니었다. 이 조항이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하면서도, 균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내 이름을 시장에 올려 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계산을 두 달 전에 끝냈고, 오늘 도록은 그걸 활자로 확인시켜 준 것뿐이었다.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해서 나는 그 손을 무릎 밑으로 넣었다. 언젠가 그가 그리지 않겠다고 했던 손이었다. 손은 안 그린다면서, 손이 만든 자리는 반씩 가져간 셈이다.
“넌 지금 니가 뭘 판 건지 알고나 있냐.”
“알아.”
재인은 더 말하지 않았다. 계약서를 내 무릎 위에 얹어 놓고, 문을 열 때보다 조용히 닫고 나갔다. 나는 그 장을 다시 반듯하게 접었다. 접힌 자국은 이미 종이의 습관이 되어 있어서, 손을 놓으면 저 혼자 그 선으로 돌아갔다.
저녁에 나는 도록과 계약서를 들고 그의 연구실로 올라갔다. 노크를 두 번 하고 밀었다. 문 교수는 스탠드 하나만 켜 놓고 유약 배합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 안쪽, 임자 없는 나무 의자 앞에 그 흰 항아리가 여전히 목이 빈 채로 앉아 있었다. 스탠드 불빛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아서, 항아리는 자기 그림자에 반쯤 묻혀 있었다.
“공동작이라고 적혔던데요.”
나는 책상 위에 도록을 펼쳤다. 문 교수가 안경을 살짝 내리고 캡션을 오래 봤다. 그러고는 느리게 말했다.
“그 어깨는 서리 씨 혼자 세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존댓말이 칼처럼 단정했다. 흙 얘기가 아닌데도 문장이 짧았다.
“제 관인데요.”
그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흙 이야기를 할 때만 길어지는 그 목소리로 대답했다. “흙은 두 손이 겹치면 그 겹친 자리를 기억합니다. 그건 물로도 못 지워요. 초벌을 하면 더 단단히 박힙니다. 서리 씨가 비 오던 날 내 손을 밀어내지 않은 그 순간에, 그 그릇은 이미 두 사람 것이 됐어요. 나는 그걸 계약서보다 흙이 먼저 알았다고 봅니다.”
나는 그의 손가락 끝을 봤다. 흙을 주무를 때마다 내 안에서 승인 욕구와 역겨움을 같은 손잡이로 끌어올리던 그 손. 지금은 배합표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럼 뚜껑은요.”
내가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배합표 모서리를 눌렀다.
“뚜껑도 균등입니까. 아니면 그건, 이십 년 전에 못 덮은 것부터 마저 덮으실 겁니까.”
방 안쪽 항아리 쪽으로 내 눈이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그도 그걸 봤다. 그의 눈에 탁한 무언가가 다시 스쳤다. 오래 고여 색이 바랜 물 같은 것.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경을 다시 올리지도, 배합표로 눈을 돌리지도 못한 채 그냥 나를 봤다.
나는 계약서 제7조가 접힌 자리를 손끝으로 한 번 눌렀다. 종이가 제 습관대로 다시 접혔다. 도록은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 방을 나왔다.
복도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스탠드 불이 꺼지는 딸깍 소리가 났다. 그가 항아리 쪽으로 갔는지, 그냥 어둠 속에 앉아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균등이라는 두 글자를 반씩 갈라 가진 두 사람이, 아직 아무도 그 뚜껑 얘기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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