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금
19화. 목요일을 앞질러 온 발걸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화요일 이맘때 실기실 문을 여는 사람은 문 교수뿐이었다. 나는 물레 판에 붙인 굽을 세우던 손을 멈추지 않고, 오는 사람의 발소리만 귀로 셌다. 문 교수의 걸음은 느리고 고른데 지금 들어온 발은 짧고 무거웠다. 슬리퍼가 아니라 굽 낮은 신발이 바닥을 끄는 소리였다.
“니 이게 뭐꼬.”
발을 밟은 채로 물레가 저 혼자 도는 동안, 나는 그 목소리의 낮은 자리를 알아들었다. 화나서 낮은 게 아니라 무서워서 낮은 목소리. 엄마는 문지방에 서 있었다. 반찬가게 앞치마를 벗지도 않았고, 새벽 첫차를 탄 사람의 신발에는 부산 시장 바닥의 흙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손에는 접힌 잡지가 들려 있었다. 표지가 안으로 말려 무슨 잡지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게 어느 페이지에서 접혔는지는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엄마, 밥은.”
나도 모르게 엄마의 어법으로 되받았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흙물이 천에 번지는 대신 손톱 밑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엄지로 검지 손톱 밑을 밀어도 흙은 빠져나오지 않고 살 안쪽으로 더 밀려 들어갔다. 나는 그 손을 다시 앞치마에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손톱 끝이 하얗게 눌릴 때까지.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걸어와서 잡지를 물레 판 위에 내려놓았다. 반건조된 유골함 바로 옆이었다. 어제 세워 둔 어깨선이 회색으로 마르는 중이었다. 잡지는 접힌 자국을 따라 저 혼자 펼쳐졌다. 기사 제목 아래 내 이름이 있었고, 그 밑으로 작은 활자가 두 줄, 병명과 여섯 달이 박혀 있었다. 엄마가 손톱으로 눌러 접었는지 자국 위로 종이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유골함의 젖은 회색 위로 그 종이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걸쳤다.
“이거 니가 만드나.”
엄마가 유골함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흙에 닿을 듯 말 듯 멈췄다. 그 손끝이 무엇인지 알고 멈춘 건지, 몰라서 멈춘 건지 나는 가늠하지 못했다. 이게 뭔지 말할 방법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
“졸업작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안이 비어야 완성된다는 대목만 삼켰을 뿐이다. 엄마는 유골함을 한참 봤다. 흙 만지는 사람의 눈으로 본 게 아니라 딸이 뭘 만드는지 보려는 엄마의 눈으로 봤고, 그 눈에는 그릇의 용도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도 정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자취방은 김치 냄새로 먼저 찼다. 엄마는 부산에서 이고 온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지도 않고 방바닥 한가운데 두었다. 목요일에 부치겠다던 그 김치였다. 부치는 대신 손수 이고 왔으니, 엄마는 화요일 새벽에 이미 목요일을 앞질러 온 셈이었다.
나는 물을 올렸다. 라면이라도 끓일 참이었다. 등 뒤에서 서랍 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엄마가 방구석 서랍을 열고 있었다. 나는 그 서랍에 아무것도 숨긴 적이 없었다. 봉투는 실기실 서랍 걸레 밑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마의 손에 그 봉투가 들려 있었다. 병원 이름이 찍힌, 부치지 못한 봉투였다.
낮에 나 잠깐 손 씻으러 간 사이였는지, 엄마가 실기실 어느 순간에 그 서랍을 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걸레를 들추는 엄마의 손을 그려 보려다 그만두었다. 엄마는 딸의 살림을 어디에 뭘 두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숨긴 자리라는 게 엄마에게는 늘 제일 먼저 보이는 자리였다.
“언제부터고.”
엄마가 봉투를 손끝으로 뜯었다. 침 발라 뜯는 대신 손톱으로 옆을 갈랐다. 종이 찢기는 소리가 좁은 방을 채웠다. 나는 그 소리를 어깨선이 마르며 갈라지는 소리처럼 들었다. 안쪽이 겉보다 늦게 마르면 표면에 실금이 간다. 지금 이 방에서 늦게 마르는 쪽은 나였다.
엄마는 진단서를 폈다. 그리고 읽지 못했다. 글자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눈이 첫 줄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담도, 하는 데서 한 번, 여섯이라는 숫자에서 또 한 번. 미끄러진 눈이 결국 종이 밖으로 나가 나를 봤다.
“봄에.”
나는 짧게 잘랐다. 더 길게 말하면 엄마가 계절을 세기 시작할 것 같았다. 엄마는 세지 않았다. 진단서를 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종이 위쪽을 손끝으로 두어 번 쓸었다. 뜯긴 가장자리가 손끝에 걸릴 때마다 손이 멈췄다. 방 안에는 가스레인지 위에서 냄비가 끓기 시작하는 소리뿐이었다.
진단서를 든 엄마의 손이 조금 떨렸다. 봉투를 가른 손톱 자국이 종이 위쪽에 삐뚤게 남아 있었다. 나는 냄비 쪽으로도, 엄마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방바닥에 앉은 채였다. 방바닥 한가운데 김치통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빈 병원 봉투가 뒹굴었다. 나는 그 봉투를 주워 접힌 자국을 폈다. 손끝에 남은 흙이 봉투 겉면에 회색으로 묻어났다. 봉투를 폈다가 다시 놓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진단서를 접어 봉투에 도로 넣지도 않고, 방바닥의 김치통 쪽으로 몸을 돌렸다.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붉은 국물 냄새가 확 올라왔다. 손을 통 안에 넣어 맨 위 겉잎을 매만졌다. 눌러 앉히고, 삐져나온 이파리를 안으로 접어 넣었다. 시장에서 하루에 백 번씩 하던 손놀림이었다. 그 손끝이 김칫국물에 붉게 물들었다.
“밥은 무야제.”
그 말에 내가 무너졌다.
물레 위에서 무너지는 흙은 소리가 없다. 그냥 한쪽으로 기운다. 나는 그렇게 기울었다. 잡지에도, 갤러리에도, 저 실기실의 마른 손에도 얼마쯤 내준 여섯 달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이걸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겉잎 한 장을 찢어 내 입가로 가져왔다. 밥도 없이 김치부터 먹이려는 손이었다. 나는 입을 벌리지 못하고 그 손목을 잡았다. 붉게 물든 손이었다. 그 손이 이십 년 넘게 뭘 만져 왔는지 나는 알았다. 정작 나는, 내가 들어갈 자리는 만들면서 엄마가 그 자리를 어디서 들여다보게 될지는 한 번도 계산해 두지 않았다.
물이 끓어 냄비가 넘쳤다. 아무도 불을 끄러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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