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어갈 그릇18화 / 전 32화4

3부 금

18화. 지문이 겹쳐 굳는 자리

윤서리


물레 판 위에 물이 고여 있었다. 흙에서 밀려 나온 물이 회색으로 탁해진 채, 판이 도는 방향을 따라 얕은 소용돌이를 그렸다. 나는 그 물을 스펀지로 걷어낼 생각도 못 하고 벽만 올렸다. 손끝이 흙을 짚을 때마다 지붕에서 함석이 울렸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실기실은 안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세 번째였다. 어깨가 될 자리가 또 한쪽으로 기울었다. 손가락이 벽을 붙잡으려다 오히려 밀어 눕혔고, 젖은 흙이 물레 가장자리로 흘러 손목까지 감았다. 감춰도 떨림은 거기까지 올라왔다.

“젖었어요. 물이 너무 많아.”

혼잣말이었는데 대답이 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였다. 문 교수가 우산도 없이 들어와 있었다. 셔츠 어깨가 검게 젖어 등에 달라붙었고, 흰머리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그는 문간에서 물기를 털지도 않고 곧장 작업대로 왔다. 실기실 안의 마른 흙 냄새 위로 비린 물 냄새가 얹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스펀지를 집었다. 판 위의 고인 물을 한 번에 눌러 빨아들이고, 벽 안쪽에 앉은 물까지 조심스럽게 훑었다. 물기가 걷히자 흙이 제 색을 되찾았다. 나는 그 손이 하는 일을 보면서, 저 손이 지금 무슨 그릇을 매만지고 있는지 계산했다. 이십 년 동안 뚜껑을 얻지 못한 항아리, 그 흰 몸통을 빚던 손.

그가 물레를 다시 돌렸다. 판이 부드럽게 속도를 얻는 동안 그의 손이 내 손등 위로 내려왔다. 크고 마른 손이었다. 처음 물레 앞에서 흙의 중심을 잡아 주던 그날처럼,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며 흙에 닿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등 뒤가 아니라 옆이었고, 그의 젖은 셔츠가 내 팔에 닿아 서늘했다는 것이다.

“힘을 주지 말고. 흙이 올라오는 걸 기다려요.”

목소리가 낮게 귀 옆에 떨어졌다. 나는 손에 준 힘을 뺐다. 뺀 게 아니라 빼앗겼다. 그의 손이 압력을 대신 맡자 내 떨림은 그 아래로 눌려 사라졌고, 흙이 올라왔다. 거짓말처럼 곧게, 흔들림 없이. 세 번을 무너진 자리에서 벽이 한 번에 어깨의 각을 얻었다. 유려한 곡선이었다. 내 손으로는 열 번을 다시 해도 나오지 않을 선.

이건 또 대필이다. 머리가 그렇게 말했다. 유언은 대필이 안 된다고, 그 어깨선을 그의 눈앞에서 뭉갠 게 바로 나였다. 그런데 손바닥은 그의 체온에 눌러앉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온기가 손등을 지나 손목의 파란 자국까지 데웠다. 나는 그 온기를 밀어낼 근육을 찾지 못했다.

그가 죽은 여자를 여기서 되살리려 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자기 손으로 몸통은 빚었으나 끝내 덮지 못한 뚜껑을, 남은 여섯 달을 마감일 삼아 나한테서 완성하려 한다는 것도. 두 번째 그릇. 그의 두 번째 실패작이 되지 말라던 재인의 말이 함석 소리 사이에서 잠깐 들렸다가 지워졌다. 알면서도 나는 그 곡선이 탐났다. 그의 이십 년 묵은 상처 위에 내 승인 욕구를 얹었고, 그 위에 남은 시간을 다시 얹었다. 흙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올라왔다.

“이 어깨선, 그대로 둘 겁니까.”

그가 물었다. 질문의 얼굴을 한 명령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물레를 멈췄다. 발판에서 발을 뗐고, 판이 관성으로 몇 바퀴 더 돌다가 섰다. 흙이 정지했다. 그의 손도, 내 손도 그 위에 얹힌 채로 함께 멈췄다.

미지근하던 흙이 식어 갔다. 젖은 표면에서 온기가 먼저 빠지고, 속의 물기는 아직 더디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잡지도 않았다. 두 가지 다 하지 않은 채,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있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것처럼 굴었다.

창밖에서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함석지붕이 견디는 소리가 실기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고개를 숙여, 어깨선 위에 겹쳐 굳어 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지문과 내 지문이 같은 흙 위에서 서로의 경계를 잃고 있었다. 어느 것이 눌렀고 어느 것이 눌렸는지 이미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게 항복인지 절도인지, 나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판단은 뒤에 오는 법이었다. 지금 온 것은 마음의 변명뿐이었다. 이건 완성을 위한 거야. 뚜껑을 덮으려면 어깨가 먼저 서야 하고, 어깨를 세우려면 이 손이 필요했을 뿐이야. 나는 그 문장을 속으로 두어 번 굴려 보았다. 굴릴수록 얇아지는 문장이었다.

그가 손을 거두지 않았고, 나도 거두라고 하지 않았다. 흙은 우리 두 손 밑에서 조용히 제 시간을 향해 굳어 갔다. 이대로 마르면, 내일 아침 이 어깨선에는 그의 지문이 다시 박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물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뭉갤지 남길지는, 흙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정해야 했다. 빗소리 너머로 내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그의 손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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