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금
15화. 반건조 흙에 남은 지문
비닐을 걷자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반쯤 마른 흙은 젖은 흙과 다른 냄새가 난다. 물기가 빠진 자리에 서늘한 회분 냄새가 앉는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려고 새벽에 온 게 아니었다. 가마동 예약을 확인하러, 건조 상태를 보러, 그것뿐이었다.
어깨선이 달라져 있었다.
어제 세워 둔 각이 아니었다. 반 뼘쯤 눕고, 넓고 얕게 흐르도록 다시 손이 간 채였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를 마저 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섰다. 실기실은 아직 반쯤 어두웠고, 그 반쯤 어두운 데서 곡선만 유독 밝게 살아 있었다.
손끝을 댔다. 반건조 흙 위에 지문이 남아 있었다.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지문보다 두껍고, 마디가 하나씩 굵고, 눌린 각도가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그게 누구 손인지 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굽을 깎던 밤, 내 손목 안쪽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누르던 그 무게. 흙에 박힌 각도가 그날 내 손목에 얹혔던 각도와 같았다. 몸이 먼저 알아봤다.
화를 내야 하는 자리였다. 나는 또 계산부터 하고 있었다.
남의 지문이 박힌 유골함은 이제 누구의 그릇인가.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손톱 밑에 어제 안벽을 누르다 들어간 마른 흙이 아직 박혀 있었다. 나는 그 흙 낀 손톱을 새 지문 위에 나란히 대 보았다. 내 자국은 안쪽에 있었고, 그의 자국은 바깥 어깨에 있었다. 안은 아직 내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정리하고 나서야 스위치를 마저 올렸다. 실기실 전체가 한꺼번에 밝아지자, 유려하게 눕은 어깨선이 오히려 더 잘 보였다.
인정하기 싫은 건 그때 이미 알았다. 내 각보다 그의 각이 완성에 가까웠다.
여덟 시가 조금 넘어 문 교수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나는 물레 앞에 앉은 채, 손바닥으로 그 어깨선을 덮고 있었다. 가리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손이 먼저 그리로 갔다.
“어깨, 손대셨죠.”
낮게, 짧게 끊어 말했다. 아픈 얘기일수록 나는 문장을 길게 늘이지 못한다.
그는 대답 대신 물레 옆 걸상을 끌어와 천천히 앉았다. 앉는 데도 시간을 썼다. 무릎을 접고, 코트 자락을 정리하고, 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 선은 새벽에 다시 봤습니다.”
흙 얘기를 할 때만 그의 문장은 길어진다.
“반건조는 시간이 없어요. 하루만 더 지나면 못 눕힙니다. 그래서 눌렀어요. 서리 씨가 눕히기로 도면을 고쳤으니까. 고친 대로 안 가면 초벌에서 어깨가 당겨서 갈라져요. 그건 알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맞아서 더 역겨웠다. 나는 도면을 눕히기로 결정한 사람이었고, 반건조의 시간을 놓친 사람도 나였다.
“제가 고친 도면이면 제 손으로 눕혀야죠.”
내가 말하자 그는 처음으로 나를 정면으로 봤다. 노인의 눈이 흙물처럼 탁했다.
“손이 떨리잖아요.”
젖은 흙보다 차게 목덜미에 얹히는 한마디였다. 나는 청바지 무릎 아래로 손을 내렸다. 화요일 오후에 무너진 축을 그가 이미 봤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그날 그는 콩테로 내 어깨와 목덜미를 그렸고, 손은 그리지 않았다. 나는 그게 배려인 줄 잠깐 착각했었다.
“손은 안 그린다면서요.”
“그리지는 않아요.”
그가 옅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입가의 주름이 잠깐 자리를 옮긴 것에 가까웠다.
“대신 잡아 줄 수는 있죠.”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굴렸다. 잡아 준다. 손목을 눌렀던 것도 잡아 준 것이고, 어깨선을 다시 매만진 것도 잡아 준 것이라면, 이 남자에게 착취와 애도는 같은 동작인 모양이었다. 자기가 무슨 손을 쓰고 있는지 그 자신도 구분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나를 그리지 않겠다던 손이, 그 안 그린 떨림을 근거로 내 그릇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어깨선을 덮고 있던 손을 치웠다.
가려 두었던 곡선이 다시 드러났다. 그의 지문이 박힌 그 선은, 다시 봐도 내 것보다 유려했다. 나는 그 유려함이 싫으면서 부러웠다. 지워서 내 각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 그의 손이 얹힌 채로 두어 더 비싸게 팔 것인가. 어느 쪽도 정하지 못한 채, 나는 손톱 밑에 남은 마른 흙을 엄지로 문질렀다. 어제 안벽에 누르고 씻지 않은 흙이었다. 안쪽에서 온 흙과 바깥에 박힌 그의 지문이 지금 한 그릇 위에 있었다.
“교수님 손이 더 좋아요.”
내가 말했다. 그는 눈썹을 조금 올렸다.
“제 것보다 그 어깨가 잘 나왔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칭찬처럼 들렸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들리도록 발음했다.
“그런데 이건 제 관이에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걸상에 앉은 채로, 자기 지문이 박힌 어깨선을 오래 봤다. 흙을 볼 때 그의 눈이 어떻게 젖는지 나는 이제 안다. 이십 년 먼지 밑에 뚜껑 없이 놓인 흰 항아리를 볼 때도 그는 저 눈이었을 것이다.
“완성된 그릇은 시장의 것이에요.”
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 명령을 질문처럼 말하는 사람이, 이번에는 판결을 위로처럼 말했다.
“죽음은 서리 씨 것이지만.”
나는 그 문장을 받아 적지 않았다. 대신 손끝을 다시 어깨선에 얹었다. 그의 지문 위에 내 지문을 겹쳤다. 두꺼운 마디 위에 얇은 마디를 포갠다고 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흙은 이미 그의 손을 물고 반쯤 굳어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뭉개지 않았다. 지우지도, 남기지도 않은 채로 형광등 아래 앉아 있었다. 안은 내 것이고 바깥은 그의 것이라는 새벽의 정리가, 여덟 시의 실기실에서는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반건조 흙은 하루면 못 눕힌다고 그가 말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도 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나는 그 어깨선 위에서 손끝으로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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