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손자국
13화. 뚜껑 없는 항아리와 유언
열쇠는 손바닥에 오래 쥐고 있던 것처럼 미지근했다.
“학회 자료, 프린트해서 내 방에 두세요. 폴더 이름이 가을일 겁니다.”
문 교수는 그 말만 남기고 강의동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열쇠를 받아 든 채 그의 뒷모습을 봤다. 십 년 넘게 제자를 안 뒀다는 사람이 학생 손에 연구실 열쇠를 맡기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재인이라면 또 뭐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신뢰가 실은 게으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열쇠 구멍을 돌렸다.
흙냄새와 니스 냄새가 문틈으로 먼저 새어 나왔다. 구석의 항아리는 그날처럼 뚜껑 없이 앉아 있었고, 나는 이번에는 손을 뻗지 않았다. 데스크톱은 이미 켜져 있었다. 화면이 절전 상태에서 깨어나는 데는 손가락 하나면 됐다. 바탕화면은 파일 아이콘으로 어지러웠고, ‘2025 가을’이라는 폴더가 창을 반쯤 가린 채 열려 있었다.
pdf를 찾아 눈을 훑는데, 작업표시줄 끝에 최소화된 메일 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멈춰야 했다. 멈추지 않았다. 창을 올리자 종로 갤러리 큐레이터와 오간 메일이 시간순으로 쌓여 있었고, 맨 위 제목은 벌써 정해진 것처럼 단정했다.
「유언(遺言): 문학수·윤서리」 2인전 홍보안 최종.
나는 그 괄호 안의 두 이름을 한동안 봤다. 앞뒤 순서를, 가운뎃점의 위치를. 첨부된 보도자료 초안을 열자 내 이름 아래 다시 괄호가 붙어 있었다. 윤서리(27), 말기 담도암, 잔여 생존 기간 6개월 선고, 자신이 안치될 유골함을 직접 제작. 병원 소견서에도 이 숫자를 이렇게 붙여 쓰진 않았다. 여섯 달이 활자로 정렬되니, 내 것이 아니라 어느 전시의 사양표처럼 보였다. 무게 몇 리터, 높이 몇 센티, 남은 시간 몇 개월.
스크롤을 내렸다. 큐레이터의 답신이 있었다.
“선생님, 학생분 서사가 워낙 강해서요. ‘유언’이라는 제목이 관객 진입에 결정적입니다. 오프닝에 본인이 직접 나와 서 있어 주면 화제성은 배가됩니다.”
본인이 직접 나와 서 있어 주면.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진열대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는 그 문장에서 진열대를 봤다. 여섯 달 남은 몸이 오프닝 저녁에 조명 아래 서 있는 그림. 관객은 그릇보다 그 몸을 먼저 볼 것이다. 그릇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그 몸은 곧 없어지니까. 화제성은 거기서 나온다.
문 교수의 답장은 짧았다.
“제목 좋습니다. 다만 ‘학생’이라는 단어는 빼 주세요. 작가 윤서리로.”
작가. 나는 그 두 글자에서 잠깐 목이 뜨거워졌다. 심사장에서 처음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해 준 사람도 그였다. 그 뜨거움이 채 식기 전에, 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상품의 등급표시를 손보는 일이었다. 학생은 싸고 작가는 비싸다. 그는 나를 위해 올려 부른 게 아니라 값을 위해 올려 부른 것이다.
그런데도 그 두 글자를 보는 순간, 굽을 깎던 밤에 내 손목 안쪽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누르던 그의 엄지가 떠올랐다. 마르고 미지근하던 온도. 승인의 열이 명치를 지나 아랫배까지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경멸과 갈망이 같은 자리에서 데워지고 있었고, 나는 어느 쪽이 먼저 끓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게 제일 역겨웠다. 역겨움도 온기의 일종이라는 것.
메일을 더 내렸다. 금액이 적힌 줄은 이미지 파일로 첨부돼 있어 열리지 않았다. 대신 본문 한 줄이 눈에 걸렸다.
“선생님 몫과 학생 몫의 배분은 계약서에서 확정하시죠.”
몫. 나는 그 글자를 손끝으로 짚었다. 화면 유리에는 지문만 남았다. 여섯 달에 몫이 나뉜다는 걸 이제 활자로 확인했다. 재인이 지하 술집에서 흘린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미지로 가려진 그 숫자가 학생 쪽으로 얼마, 작가 쪽으로 얼마인지. 그 궁금증이 분노보다 먼저 왔다는 사실을, 나는 걸레 밑 봉투를 떠올리듯 조용히 접어 두었다.
프린터가 학회 자료를 뱉기 시작했다. 종이 여덟 장이 온기를 물고 나오는 동안, 나는 메일 창을 원래 크기로 되돌려 작업표시줄 끝에 다시 눕혀 놓았다. 커서를 폴더 밖으로 옮기고, 내가 건드린 창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화면을 정리했다. 흔적을 안 남기는 건 내 특기였다. 진단서 봉투를 마른 걸레 밑으로 밀어 넣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복도로 나오니 문 교수가 종이컵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커피 냄새가 흙냄새를 잠깐 덮었다.
“자료는.”
그가 물음표 없이 물었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은 프린트 뭉치를 내밀었다.
“제목, 좋던데요.”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종이컵을 든 손이 미세하게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는 종이를 넘겨 보는 척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봤습니까.”
“네.”
그는 흙 얘기를 시작할 때처럼 긴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럴 때만 그의 문장은 길어졌다.
“유언이라는 건, 쓰는 사람 것이 아닙니다. 남는 사람을 위한 거지. 죽는 사람은 그걸 못 읽어요. 읽는 건 언제나 뒤에 남은 쪽입니다.”
나는 그 말이 위로인지 변명인지 판정하지 못했다. 판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지워 준 ‘학생’이라는 두 글자가, 지워진 자리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운다는 건 없앤다는 뜻이 아니었다. 더 비싼 자리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뚜껑은요.”
내가 물었다. 그가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
“제 유언이라면서요. 남는 사람 거라면, 뚜껑은 누가 덮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구석 방문 너머, 이십 년째 뚜껑 없이 앉아 있는 흰 항아리 쪽으로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흘렀다가 돌아왔다. 나는 그 짧은 흘림을 놓치지 않았고, 놓치지 않은 걸 그도 아는 눈치였다. 우리는 복도에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아직 계약서에는 서명하지 않았고, 나는 그 마지막 장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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