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손자국
12화. 무너진 축과 사각거리는 콩테
화요일 오후의 실기실은 아무도 없었다. 항암 3차를 맞고 온 손등에는 바늘 자국을 덮은 반창고가 아직 붙어 있었고, 그 위로 피부가 파랗게 번져 있었다. 나는 반창고를 떼지 않은 채 물레 앞에 앉았다. 지난 수업에서 반쯤 올려놓은 기물이 젖은 천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을 좁혀 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천을 걷고, 스펀지에 물을 먹이고, 페달을 밟았다.
원기둥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젖은 벽 안쪽에 왼손을, 바깥에 오른손을 대고 목을 향해 손을 좁혀 올렸다. 손끝이 흙에 닿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내 손이 아닌 것처럼 떨리는 걸 보았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처음엔 물레가 흔들리는 줄 알았다. 발밑의 페달을 확인하고, 축을 확인하고, 마지막에 손을 확인했다. 흔들리는 건 손이었다.
젖은 벽이 그 떨림을 그대로 받아 물결처럼 번졌다. 매끄럽던 목이 한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
“가만히.”
소리 내어 나를 달랬다. 흙은 듣지 않았다. 반쯤 올라온 벽이 안으로 접히더니, 회전하던 원기둥이 제 무게에 눌려 물레 판 위로 주저앉았다. 무너진 흙은 여전히 돌았다. 축을 잃은 반죽이 판 위에서 뭉개진 채 흔들렸다. 나는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다 무너진 것이 계속 도는 걸 오래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눈물보다 계산이 먼저 왔다. 다시 뭉치면 삼십 분. 초벌 일정은 아직 나흘 남았고, 굽은 지난주에 문 교수 손을 빌려 깨끗하게 깎아 두었으니 몸통만 다시 올리면 된다. 잃은 건 흙 한 덩이와 오후 반나절. 그 정도는 재고에 있다. 나는 그렇게 셈을 마치고 손을 뻗어 페달을 멈추려 했다.
그런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 손끝의 떨림이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꿈치로 잔물결처럼 올라왔다. 나는 그 떨림을 내려다보았다. 방금까지는 삼십 분이면 다시 올릴 수 있다고 셈했는데, 이제 다른 숫자가 떠올랐다. 이 손으로 흙의 중심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잡을 수 있을까. 여섯 달이라는 기한이 아니라, 이 손이 견딜 횟수가 문제였다. 나는 그 숫자를 셀 수 없었다. 셀 수 없다는 것만 알았다.
그때 눈이 뜨거워졌다. 진단서를 서랍 맨 아래로 옮기던 날에도, 기자 앞에서 죽음을 재료로 쓴다고 말하던 날에도 마르던 눈이 무너진 흙 한 덩이 앞에서 젖었다. 나는 젖은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회색 흙물이 뺨에 번지는 감촉이 왔다. 어제 유골함 안벽을 누르다 손톱 밑에 낀 회색이, 눈물에 풀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직 초벌도 안 한 관의 안쪽이 내 얼굴에 묻어 나오는 셈이었다.
문이 언제 열렸는지 몰랐다. 고개를 들었을 때 문 교수는 작업대 모서리에 반쯤 걸터앉아 있었다. 다가오지 않았다. 무너진 흙을 대신 잡아주지도, 페달을 멈춰주지도 않았다. 오른손에는 콩테 조각이 들려 있었고, 무릎에 받친 스케치북 위로 그 손이 움직였다. 종이를 긁는 소리가 물레의 헛도는 소리 사이로 들렸다.
“울 때 어깨가 그렇게 앞으로 말리는군요.”
그가 낮게 말했다. 위로가 아니었다. 관찰이었다.
“그대로 두세요. 그 선, 지금이 제일 좋습니다.”
그의 손이 스케치북 위에서 빠르게 오갔다. 콩테 끝이 종이의 결에 눌렸다가 떼어지고, 획을 길게 끌 때마다 손목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어깨선 어디쯤에서 힘을 주는지 획이 굵어지는 순간이면 팔뚝의 근육이 잠깐 도드라졌다. 그는 한 번 손을 멈추고 콩테를 손안에서 굴려 뭉툭한 면이 나오게 한 다음, 그 면으로 종이를 문질렀다. 명암을 앉히는 손짓이었다. 문지르는 소리는 긁는 소리보다 낮고 둔했다.
“턱을 조금만 더 당겨보세요.”
그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의 시선이 내 젖은 얼굴에 있지 않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은 목덜미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곡선에 붙어 있었다. 이십 년째 뚜껑을 못 얹은 흰 항아리, 그 완성되지 못한 몸체의 어깨가 지금 그의 무릎 위 종이에서 채워지고 있었다.
경멸이 올라와야 하는 자리였다. 대신 계산이 올라왔다. 멈추지 않는 편이 그에게 더 비싸게 팔릴 것을 나는 알았다. 무너진 손 앞에서 우는 시한부 작가. 그가 갤러리에서 흘리고 다니는 서사에 이보다 잘 맞는 그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알면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알면서, 어깨를 앞으로 더 말았다. 이 사람이 내 무너진 손을 재료로 쓰도록, 나는 자세를 내주었다.
떨리는 손만은 무릎 아래로 내렸다. 그것까지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흙물 묻은 주먹을 무릎 안쪽으로 밀어 넣고, 떨림이 스케치북 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손등을 허벅지에 눌렀다. 손톱이 흙 묻은 청바지 천을 파고들었다. 콩테가 사각거리는 동안에는 나도 숨을 멈췄다. 소리가 잦아들면 그제야 조금씩 내쉬었다. 그가 종이에서 눈을 들 때마다 나는 그가 다시 보기 좋은 각도로 고개를 기울인 채, 뺨의 흙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말렸다.
“손은 왜 감추십니까.”
그가 물었다. 콩테가 멈췄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손은 안 그립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어깨로 내려갔고, 콩테는 다시 종이를 긁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 아래 주먹의 떨림이 청바지 천을 타고 허벅지까지 번지는 걸 느꼈다. 그가 손을 안 그린다고 한 말이 배려인지 계산인지, 그것부터 가늠이 서지 않았다.
물레는 아직 돌고 있었다. 무너진 반죽이 축을 잃은 채 헛돌면서, 아무것도 세우지 못한 회전을 계속했다. 나는 발을 떼지 않았다. 언제 멈춰야 할지, 이 사람 앞에서 먼저 멈추는 쪽이 파는 자인지 팔리는 자인지, 그것부터 셈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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