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손자국
11화. 서는 자리를 깎는 손
형광등은 하나만 켜져 있었다.
낮 동안 물레를 돌리던 애들이 빠져나가고, 실기실에는 마른 흙가루 냄새와 그 불빛과 우리 둘만 남았다. 나는 초벌을 앞둔 유골함 몸통을 물레 위에 엎어 얹었다. 굽을 깎을 차례였다. 구석에서는 뚜껑 없는 항아리 대신 그것을 닮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고, 앉는 면만 반들거리는 나무 의자는 오늘도 임자 없이 항아리 쪽을 보고 서 있었다. 그 의자가 이 방에 있는데도 문 교수는 다른 의자를 끌어왔다. 낮고 등받이 없는 것으로, 발물레 옆에 바짝 붙여서.
“굽은 그릇의 발입니다.”
그가 앉으며 말했다.
“서는 자리를 깎는 거예요. 너무 깊으면 제 무게를 못 버티고, 얕으면 들뜹니다. 흙이 마른 정도를 손끝으로 먼저 보고.”
그가 내 손에 굽칼을 쥐여주었다. 칼자루는 그의 손 온기가 옮아 미지근했다. 나는 반쯤 마른 몸통의 바닥에 칼끝을 대었다. 발물레를 발로 밀자 몸통이 돌기 시작했고, 첫 줄기가 리본처럼 말려 올라오다 뚝 끊겼다. 회색 부스러기가 물레 판에 흩어졌다.
“손목에 힘이 들어갔어요.”
그가 몸을 기울였다.
“칼이 아니라 손목으로 깎으려니까 끊기는 겁니다. 칼은 대기만 하고, 깎는 건 흙이 하게.”
그러고는 내 손목 안쪽, 맥이 뛰는 자리에 엄지를 댔다. 각도를 눌러 낮추는 시늉이었다. 흙물 밴 그의 엄지가 내 맥 위에 얹혔고, 시늉은 진작 끝났는데 손은 그대로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나는 그 온도를 셌다. 하나, 둘, 셋. 흙보다 뜨겁고 형광등보다 낮았다. 피할 수 있었다. 손목을 반 뼘만 물레 쪽으로 당기면 그만이었고, 그가 먼저 뗄 명분도 그 편이 깔끔했다. 나는 당기지 않았다. 당기지 않는 데도 힘이 든다는 걸, 손목 안쪽의 미세한 떨림으로 알았다. 그게 그의 엄지가 떠는 건지 내 맥이 떠는 건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구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어딘가에서 계산이 먼저 돌았다.
“이렇게.”
그의 목소리가 길어졌다. 흙 얘기를 할 때만 그의 문장은 끝을 서두르지 않는다.
“흙이 스스로 깎이게 두면, 칼은 소리로 압니다. 서걱거리다 매끄러워지는 지점이 있어요. 거기서 흙이 자기 발을 찾는 겁니다.”
굽칼이 다시 돌았다. 이번에는 회색 리본이 끊기지 않고 감겨 나왔다. 얇고 길게, 물레의 회전을 따라 제 몸을 말면서. 나는 그 리본을 보는 대신 내 손목 위에 얹힌 손을 보았다. 마디가 굵고 손톱이 짧게 깎인, 늙은 손이었다. 이 손이 이십 년 전에 죽은 여자의 유골함을 빚었고, 그 항아리의 목까지 올려 놓고도 뚜껑을 끝내 못 얹은 손이었다. 지금 그 손이 내가 들어갈 그릇의 발을 깎는 걸 돕고 있었다. 산 사람의 관을 함께 깎는 손이, 죽은 사람의 관은 덮지 못했다.
그가 손을 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아까 각도만 봐 준 사람처럼. 굽은 깨끗하게 서 있었다. 물레를 세우고 몸통을 뒤집어 바로 놓자, 그릇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 줄 알았다는 듯 흔들림 없이 판 위에 앉았다.
“다음 건 혼자 깎아 보세요.”
그가 일어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방을 나갈 때까지 내 손목 안쪽에 남은 자리를 물레 판 아래로 감췄다.
집으로 돌아온 새벽, 나는 불도 켜지 않고 창가에 서서 손목 안쪽을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자국이 남을 리 없는 접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를 오래 봤다. 이건 무기인가, 항복인가. 나는 그 질문을 두 칸으로 나눠 세워 놓고 하나씩 지웠다가 다시 세웠다. 늙은 남자의 승인 한 조각에 목이 마른 병든 여자인가. 아니면 그가 이십 년 못 덮은 뚜껑을 알아본, 그의 미완성을 재료로 쥔 사람인가. 앞의 문장이 부끄러웠고, 뒤의 문장은 부끄러움을 덮으려고 급조한 것 같아서 더 부끄러웠다.
재인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술집에서처럼 반쯤 삼킨 소주를 내려놓고, 미쳤냐 진짜, 하고 짧게 끊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먼저 웃어버렸겠지. 웃음 끝에 정곡을 하나 더 박아 넣었을 것이다. 담기는 쪽이 되지 말라고 했잖아, 하고. 나는 재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다가 그만뒀다. 그 목소리는 옳았고, 옳은 것이 오늘 밤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톱을 들어 불빛에 비췄다. 어제 유골함 안벽을 눌렀을 때 밀려든 흙이 손톱 밑에서 아직 마르고 있었다. 씻지 않았다. 씻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 흙을 그의 엄지가 남긴 자국인 척, 손목 안쪽에 대고 오래 눌러 보았다. 온도는 없었고 흙은 이미 굳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눌러 보는 동안, 오늘 실기실에서 굽이 깨끗하게 섰다는 사실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 손이 아니라 그의 손이 얹혀 있을 때 흙이 제 발을 찾았다는 것.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나는 또 계산했다. 답을 정하는 순간 나는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고, 지금은 둘 다 아닌 채로 무언가를 쥐고 있는 편이 유리했다. 무엇을 쥐었는지 모른 채로 일단 쥐기로 했다. 손을 펴면 흙가루가 떨어질까 봐, 나는 주먹을 오래 쥐고 잠들지 못했다.
목요일에는 엄마의 김치가 온다. 창밖이 밝아 오는데도, 나는 그것 말고는 아무 일정도 떠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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