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런웨이의 끝
9화. 지하실 열쇠와 반듯한 사원증
지퍼 닫히는 소리가 유리벽을 타고 네 번 났다.
밤 열한 시, 남은 개발자 넷이 차례로 가방을 쌌다. 누구도 나를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모니터를 끄고 의자를 밀어 넣고, 서로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복도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가 닫혔다. 마지막 발소리가 계단으로 사라지자 사무실에는 서버 팬 도는 소리와 정수기 웅웅거림만 남았다.
민혁은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코드가 떠 있는데 손은 키보드에서 떨어져 무릎 위에 있었다. 나는 그의 옆 빈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나머지 다섯 명은 개별로 하자.”
그는 화면을 봤다.
“한꺼번에 부르면 소문 돌고 분위기 뒤집어져. 조용히 한 명씩, 개인 면담으로. 유리 팀장부터 순서 정하자. 팀장급을 먼저 정리해야 나머지 정산도 깔끔하고.”
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커서만 화면 어딘가에서 깜빡였다. 나는 그 침묵이 동의인 줄 알았다.
“위로금은 세훈이 때랑 똑같이 맞추고, 통보는 다음 주 화요일 오전에 몰아서 하면…….”
“지운아.”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화낼 때 나던 톤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래로 내려간 소리였다.
“사람을 로그아웃시키듯 처리하지 마.”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가 곧 다시 폈다.
“그럼 어떻게 하냐. 다 같이 앉혀놓고 울면서 하냐. 그게 저 사람들한테 더 나아? 나는 지금 방식을 고민하는 거야. 최대한 안 다치게.”
민혁이 그제야 나를 봤다. 오래 나를 봤다.
“네가 통보 방식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네 손에 피 안 묻힐 방법을 찾고 있는 거잖아.”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나는 그게 그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대학 때부터 그랬다. 화가 오르면 그는 소리를 키우는 대신 낮췄다.
“계산은 감정이 아니야.” 나는 받아쳤다. “누군가는 이 명단을 실행해야 회사가 산다. 감정 넣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 자른다는 거 너도 알잖아.”
민혁은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서버 팬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에러는 로그를 남겨. 사람도 그래.”
그러고는 목에 걸린 사원증 줄을 벗었다. 파란 끈이 조명 아래에서 잠깐 흔들렸다. 그는 그것을 키보드 옆에, 아주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각을 맞추듯이. 마지막까지 자기다운 손짓이었다.
나는 그게 사표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붙잡지 않았다. 손을 뻗어 팔이라도 잡으면, 그가 옳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노트북을 챙기지 않고 그냥 일어섰다. 자동문 열리는 소리, 찬 공기, 다시 닫히는 소리. 그 순서가 오늘 밤만 유독 느리게 흘렀다.
새벽 두 시,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슬랙 채널에 알림 하나가 떠 있었다. 민혁의 마지막 커밋 메시지였다. ‘결제 모듈 안정화, 남은 사람들이 쓸 수 있게.’ 그는 떠나는 길에도 자기 코드를 정리하고 갔다. 회사에 남은 사람들이 결제 하나 때문에 밤새 헤매지 않도록. 나가면서 그것부터 손봤다는 게 오래 목에 걸렸다. 나는 명단을 두고 통보 순서를 짜는 동안, 그는 남은 사람들이 켤 불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하실 열쇠를 꺼냈다. 밑동에 옮겨 묻은 붉은 인주가 형광등 잔광 아래에서 검붉게 가라앉아 보였다. 낮에 연대보증란에 도장을 찍은 손끝이 여기까지 옮아온 흔적이었다.
십일 년 전, 이 열쇠를 처음 나눠 쥐던 밤이 떠올랐다. 상가 지하, 곰팡이 냄새 나던 스무 평.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면서 민혁이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 반으로 나누는 시늉을 했다.
“복사본 하나 더 팔까? 둘 다 지각 안 하게.”
내가 그냥 하나 갖고 다니겠다고 하자, 그는 그럼 네가 지각하면 내가 문 앞에서 얼어 죽겠다며 웃었다. 그날 밤 우리는 편의점 컵라면을 지하실 계단에 앉아 먹었다. 국물까지 마셨다. 그때는 밸류에이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너는 회사를 사랑한 게 아니라, 성공한 너를 사랑했어. 나는 그 옆에 있던 사람일 뿐이었고.”
나는 답장 창을 열었다. 아니라고, 회사가 곧 나였고 너도 그 안에 있었다고 쓰려다 멈췄다. 그건 결국 그의 말을 증명하는 문장이었다. 다른 걸 써보려 했다. 미안하다는 세 글자를 눌렀다가 지웠다. 몇 달만 버티면 다 설명된다고 썼다가 지웠다. 커서가 빈 입력창에서 혼자 깜빡였다.
엄마 계좌에 삼백만 원을 보내던 날이 겹쳤다. 그날도 나는 메모 칸을 열어두고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송금 버튼을 눌렀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무슨 말을 적든 그게 돈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나도 아는데,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같았다. 반박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반박할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게 두려웠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나는 결국 창을 닫았다.
열쇠를 다시 손에 쥐었다. 밑동의 붉은 자국이 손금 사이로 들어와 앉았다. 엄지로 문질렀지만 인주는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에 옅게 번졌다. 서버 팬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누군가 안정화해 둔 결제 모듈 위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옆자리 키보드에 반듯하게 놓인 파란 끈을 한참 보았다.
내일 아침이면 남은 다섯 명이 출근할 것이다. 유리 팀장의 자리는 아직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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