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의 아침10화 / 전 33화9

2부 런웨이의 끝

10화. 번들거리는 검은 화면과 묵직한 열쇠

서지운


새벽 여섯 시의 진동은 알람보다 먼저 왔다.

전날 밤 나는 소파에서 잠들었다. 눈을 붙였다기보다 잠깐 정신을 놓았다는 게 맞았다. 서버 팬 소리가 자장가처럼 낮게 깔려 있었고, 나는 그 소리에 기대 겨우 몇 시간을 버텼다. 진동은 그 규칙적인 소음을 뚫고 손바닥 아래에서 울렸다. 나는 눈을 뜨기 전에 폰부터 쥐었다.

단독. 제목 맨 앞에 그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레이어드, 공동창업자 CTO 전격 사임. 업계 위기설 확산.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끌어내렸다. 기사 하단, 익명의 관계자 코멘트가 인용부호 안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부에선 이미 런웨이가 끝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나는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같은 문장이 다시 떴다. 한 번 더 끌어내렸다. 문장은 자리를 지켰다. 세 번째로 손가락을 밀었을 때 나는 내가 뭘 기대하는지 깨달았다. 기사가 사라지기를. 누군가 새벽에 잘못 올린 초안이었다고, 곧 정정되기를. 화면은 정정되지 않았다. 익명의 관계자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나는 남은 다섯 명의 얼굴을 순서대로 떠올리다가 멈췄다.

정 이사의 문자가 그 위로 겹쳐 떴다.

“대표님, 여의도에서 연락 왔습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나는 커피도 내리지 않은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 이사는 바로 심사역에게 연결하겠다고 했다. 대기음이 세 번 울리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문장을 정리했다. 리텐션은 여전히 방어되고 있고, 메가마트 이탈분은 다른 채널로 대체 가능하며, 민혁의 사임은 지분과 무관한 방향성의 문제라고. 나는 그 말들을 입안에서 굴렸다. 아직 쓸 만하다고 믿으면서.

“우리 검토 건은 홀드가 아니라 클로즈하기로 했습니다.”

심사역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파티 밤, 축배가 오가던 루프탑에서 잔도 들지 않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던 그 뒷모습과 같은 온도였다. 나는 준비한 첫 문장을 꺼냈다.

“IR 자료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코호트 리텐션이 여전히”

말이 끝나기 전에 통화 종료음이 들렸다. 나는 폰을 귀에서 떼지 못하고 그 짧은 신호음을 두 번 더 들었다. 리텐션이 여전히, 뒤에 붙을 말은 준비되어 있었는데 받을 사람이 없었다.

정 이사가 다시 걸어왔다. 이번엔 그가 말이 없었다. 회의실에서 노트북을 닫으며 나를 오래 바라보던 그 침묵이 이번엔 수화기 안에 있었다.

“대표님, 이건 숫자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오후에 잡을 인터뷰를 이야기했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시장이 흔들리는 건 기사 한 줄 때문이라고. 정 이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알겠다는 말이 그렇게 무겁게 들린 적이 없었다.

인터뷰는 오후 네 시에 잡혔다. 기자는 젊었고 예의 발랐다. 녹음기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그는 곧장 물었다.

“CTO 사임이 위기의 신호 아닙니까.”

나는 웃었다. 웃는 게 답인 질문이 있다고 배운 적이 있었다.

“방향성 차이일 뿐입니다. 저희는 다음 단계로 가려는 거고요. 곧 더 큰 라운드로 증명하겠습니다.”

기자가 뭔가를 적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 멈춤을 보지 못한 척했다. 인터뷰는 삼십 분 만에 끝났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사무실 소파에 다시 누웠고, 다음 날 아침 그 문장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 확인했다.

다 무너지는데 ‘더 큰 라운드’ 자신하는 대표의 오만.

제목이 내 말을 정확히 옮겨 적고 있었다. 방향성 차이. 더 큰 라운드. 증명. 내가 방패로 쓴 단어들이 그대로 칼자루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댓글 첫 줄을 읽었다. 두 번째 줄로 넘어가기 전에 폰을 뒤집어 책상에 엎었다. 검은 뒷면이 형광등을 받아 번들거렸다.

서랍을 열었다. 두 번 접힌 감원 명단 위에 민혁의 파란 사원증 끈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옮기지 않았다. 대신 그 아래에서 지하실 열쇠를 꺼냈다. 밑동의 붉은 인주 자국은 여전히 손금 사이로 파고들었고,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열쇠는 어제와 같은 무게, 같은 온도였다.

밥은 묵고 댕기냐.

엄마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순천 사투리의 억양이 귓가에서 툭 끊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통화 목록을 열었다. 엄마에게 걸까. 손가락이 이름 위에 잠깐 머물렀다. 뭐라고 말할 것인가. 회사가 어렵다고? 기사 봤냐고? 엄마는 기사를 볼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는 건 아들이 큰 회사 대표라는 것, 그거 하나였다. 그걸 내 입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민혁에게 걸까. 그는 이미 사원증을 내려놓고 떠났다. 정 이사에게 걸까. 그는 이미 알겠다고 했다. 은수에게 걸까. 은수는 파티 밤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통화 목록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름은 많았다. 투자사, 심사역, 담당 상무, 기자, 팀장들. 그중에 지금 이 새벽에 전화를 받아 줄 사람의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 목록을 사람이 아니라 항목으로 채워 왔다는 걸. 언제든 필요할 때 열어 보는 계좌 같은 것으로.

열쇠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주가 다시 손가락에 옅게 번졌다.

내일 아침, 유리 팀장이 출근할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이름을 부르지 못했고, 이제는 부를 자리마저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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