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런웨이의 끝
7화. 숫자가 된 이름과 지하실 열쇠
커서를 세 번째 줄에 놓았다. 새벽 두 시, 성수동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스프레드시트의 첫 열에 이름, 둘째 열에 연봉, 셋째 열에 회사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적었다. 합계 셀을 만들고 커서를 아래로 끌었다. 여섯 줄을 지우면 월 4천1백만 원. 두 달이던 런웨이가 넉 달로 늘어나는 숫자였다.
민혁이 두고 간 종이 명단을 옆에 펼쳐두고 이름을 하나씩 셀로 옮겼다. 옮길 때마다 이름은 사람에서 절감액으로 바뀌었다. 그게 편했다. 얼굴이 붙어 있으면 손이 느려지는데, 숫자로 바뀌면 커서가 잘 내려갔다. 종이에서 이름을 읽고 첫 칸에 옮겨 적었다. 탭을 눌러 다음 칸으로 넘어가 연봉을 쳤다. 다시 탭, 보험료. 엔터를 치면 커서가 아랫줄로 떨어졌다. 종이에서 이름 읽기, 탭, 탭, 엔터. 두 번째 줄까지 같은 손놀림이 반복됐다.
세 번째 줄에서 손이 멈췄다. 오세훈, 3년 8개월. 지하 상가 시절, 냉장고도 없던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직원이었다. 그날 그는 편의점 봉지를 흔들며 들어왔다. 삼각김밥 두 개를 사 와 하나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대표님, 이거라도 드세요. 아침 굶으면 오후에 머리 안 돌아가요.”
그때 우리 회사에는 직원이 그와 나, 둘뿐이었다. 매출은 없고, 첫 주문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둘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세훈은 그 주문 화면을 캡처해 포스트잇에 손으로 옮겨 적어 벽에 붙였다. 하루에 한 장씩, 벽 한 면이 노랗게 도배될 때까지.
나는 그 벽을 지우려는 사람처럼 셀을 클릭했다. ‘오세훈, 3년 8개월’을 지우고 ‘연 6천2백’을 쳐 넣었다. 화면에 남은 건 그의 근속도 삼각김밥도 아니고 여섯 자리 숫자였다. 나는 그 숫자를 그의 전부인 것처럼 읽었다. 다음 줄로 커서를 옮겼다.
그러다 내 손을 봤다. 자판 위에서 이름을 비용으로 갈아 끼우는 손. 언제부터 이 손놀림이 이렇게 매끄러워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화면 속 합계 셀만 붉은 테두리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세훈을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유리벽 너머에서 직원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원두 가는 소리가 잘게 이어졌다. 세훈은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무슨 프로젝트예요? 신규 라인이면 저 이번엔 기획부터 붙고 싶은데.”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어제 저장한 시트를 떠올렸다. 준비한 문장을 그대로 꺼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이번에 인력 조정을 하게 됐어.”
세훈의 웃음이 천천히 굳었다. 노트를 쥔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 속 여섯 개의 이름 중 하나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미안해. 위로금은 규정보다 최대한 챙길게. 다음 자리 잡을 때까지 소개도 돌려주고.”
말해놓고 나는 방금 그의 3년 8개월을 위로금이라는 숫자로 정산하려 했다는 걸 알았다. 세훈은 노트 표지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그 지하실 열쇠 아직 갖고 계세요?”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첫 사무실 열쇠가 손끝에 걸렸다.
“그 방, 여름엔 곰팡이 냄새 나고 겨울엔 발 시렸잖아요. 저는 그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세훈은 다시 노트 표지에 시선을 떨궜고, 나는 그 시선을 따라가지 못했다. 유리벽 너머에서 원두 가는 소리가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세훈의 손등을 봤다가, 그가 앉은 의자 다리 옆 바닥을 봤다가, 형광등이 비치는 테이블 위로 눈을 옮겼다. 무슨 말이든 놓을 자리였는데, 입을 떼면 위로금 액수부터 나올 것 같아 다물었다. 노란 포스트잇들, 삼각김밥, 둘이 울리던 하이파이브가 이 형광등 아래로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침을 삼키고 테이블 아래에서 열쇠를 쥐었다 폈다.
세훈은 노트를 챙겨 일어섰다. 문을 열기 전에 돌아보았다.
“대표님도 밥 챙겨 드세요. 오후에 머리 돌아가게.”
그가 나가고 회의실 문이 닫혔다. 유리벽 너머 커피 향이 여기까지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명단을 다시 펼쳤다. 남은 다섯 개의 이름을 눈으로 훑었다. 유리, 그리고 지난겨울 서버가 죽던 밤 라꾸라꾸를 펴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 개발자들.
이번엔 숫자가 뜨지 않았다. 유리의 이름 옆에 자동으로 연봉이 떠올라야 하는데, 대신 그가 예산 감축을 먼저 제안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펜을 들었다. 첫 이름 위에서 펜촉이 종이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민혁이 새벽에 보낸 문자가 아직 열지 않은 채 휴대폰 안에 있었다. 언젠가 그가 이 명단을 두고 말할 것 같았다. 이건 회사를 살리려는 게 아니라 성공한 너를 지키려는 계산이었다고. 나는 그 문장을 미리 들은 사람처럼 펜을 내려놓았다.
명단을 두 번 접어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고 주머니의 열쇠를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밤새 사무실 온도가 내려갔다가 아침 햇빛에 다시 올라오는 동안에도, 그 쇠붙이는 어제 쥐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유리벽 너머에서 세훈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키보드를 손바닥으로 밀어 각을 맞추고,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모아 한쪽에 세웠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더니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무언가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다섯 개의 이름을 언제, 어떤 문장으로 불러야 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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