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유리의 도시
6화. 0이 나를 건너다보는 밤
발신자 이름부터 낯설었다. ‘메가마트 이커머스 본부’. 제목 칸에 ‘계약 해지 통보’가 박혀 있었다. 나는 커피를 세 모금도 마시기 전이었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그 여섯 글자를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매출의 40퍼센트가 화면 밖으로 흘러나가는 감각이 있었다.
“잘못 온 메일이겠지.”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는데, 옆자리에서 유리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의 모니터에도 같은 창이 떠 있었다.
“대표님, 이거 진짜예요. 상무님한테 방금 확인 전화 왔어요.”
나는 곧장 담당 상무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다섯 번 울리는 동안 나는 재계약 시나리오를 세 개쯤 만들었다. 마진을 얼마까지 내릴 수 있는지, 어떤 지표를 먼저 꺼낼지. 상무가 받았을 때 내 목소리는 이미 웃고 있었다.
“상무님, 저희 지표 아시잖아요. 조건 다시 맞춰 드릴게요. 마진 더 내려도 됩니다.”
상무는 사무적이었다.
“서 대표님, 저희도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라. 시장이 어려워서 벤더 정리를 좀 했습니다. 다음 분기부터 정산 없습니다.”
“가격이 문제면 얼마든지.”
“가격 문제가 아니에요.”
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
“그쪽 회사가 오래갈지가 문제죠.”
나는 웃던 얼굴 그대로 굳었다. 오래갈지가 문제. 그 말은 숫자가 아니었다. 숫자는 협상이 됐다. 나는 통장 화면을 떠올렸다. 아직 0은 아니었다. 그러나 0이 저쪽 어딘가에서 나를 조용히 건너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알겠다고, 살펴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유리 팀장이 뭔가 물으려는 걸 손을 들어 막았다. 나는 정 이사를 회의실로 불렀다.
정 이사는 노트북을 열자마자 대차대조표부터 띄웠다. 그는 파티 낮에도 이런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의 얼굴.
“메가마트 빠지면 다음 달 매출이 반토막입니다.”
그가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지난 분기까지 우상향이던 선이 이번 달에서 아래로 꺾여 있었다. 나는 그 선을 아는 것 같았다. 여의도 심사역이 파티 낮 미팅에서 내 앞에 밀어 넣었던 그래프. 커머스 시장 성장률이 꺾여 있던 그 곡선. 파티가 한창일 때 인사도 없이 자리를 뜨던 심사역의 뒷모습까지 한꺼번에 딸려 나왔다.
“런웨이가 넉 달에서 두 달로 줄어요.”
“브리지 미팅 세 개 남았어요.”
내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하나만 성사되면 이거 다 메꿔집니다. 정 이사님, 두 달이면 충분해요.”
정 이사는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닫는 게 예의일 텐데, 그는 화면을 켜둔 채로 나를 오래 바라봤다.
“대표님. 메가마트 나갔다는 소문 돌면, 그 세 곳도 다 발 뺍니다. 하나만 성사되는 게 아니라, 셋이 같이 빠져요. 이게 시장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었다. 민혁이 두고 간 종이가 그 안에 있었다. 여섯 사람의 이름이 적힌 구조조정 명단. 종이 귀퉁이가 손때로 눅눅해져 있었다. 나는 그걸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름 여섯 개가 형광등 아래에서 나를 마주 봤다. 나는 그 위에 손을 얹었다가, 다시 서랍에 밀어 넣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정 이사는 그제야 노트북을 닫았다. 딸깍, 하는 소리가 회의실에 오래 남았다.
그날 저녁,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을 때 나는 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주째 서로 문자도 없던 사이였다. 그는 신호가 두 번 울리자마자 받았다. 벌써 회사에서 마음이 반쯤 떠난 사람의 목소리, 멀고 담담했다.
“메가마트 소식 들었어.”
그가 먼저 말했다.
“네가 예산 두 배로 태울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지금 그 얘기 하려고 받았어?”
“아니.”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화낼수록 낮아지는 목소리로,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기록을 남기려고 받았어. 나중에 네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찾을 때, 이 통화가 있었다는 걸 알라고.”
창밖으로 성수동의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유리벽에 그 불빛과 함께 내 얼굴이 떠 있었다. 낮에 상무의 전화를 받으며 웃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창틀 쪽으로 비켰다.
“민혁아. 나 지금 무너지면 안 돼.”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갈라졌다. 그 갈라짐을 그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무너지는 게 무서운 거야, 실패가 무서운 거야?”
그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두 개가 같은 말인 줄 알았는데, 그가 굳이 나눠서 물으니 두 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무너지는 것. 실패하는 것. 나는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몰랐고, 모른다는 걸 그에게 들키는 것이 그중 제일 무서웠다.
“밥은 먹었어?”
한참 만에 그가 물었다. 그건 그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건 순천 사투리를 쓰던 사람의 물음이었는데, 민혁의 입에서 나오니 낯설었다. 나는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유리벽 너머 도시의 불빛만 촘촘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첫 사무실 열쇠를 꺼냈다. 지하실 문을 열던 그 쇠붙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감쌌다. 낮 동안 내 체온이 얼마나 오르내렸는데, 열쇠는 아침에 쥐었을 때와 똑같은 온도였다. 나는 그것을 원망하듯 더 세게 쥐었다. 쇠는 사람을 닮지 않았다. 쥔다고 답을 주지 않았다.
서랍 속 여섯 개의 이름이 자꾸 생각났다. 나는 두 달이라는 숫자를, 세 개 남은 미팅을, 하나만 성사되면 된다는 계산을 다시 세워 봤다. 세우면 세울수록 정 이사의 말이 계산 위로 겹쳤다. 셋이 같이 빠집니다. 나는 열쇠를 도로 주머니에 넣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유리벽에 비친 내 얼굴이 사라졌다. 그게 조금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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