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옥상의 계절
8화. 아직 누르지 않은 셔터
“오늘 다 찼다.”
아저씨는 카운터에 열쇠를 세다 말고 그렇게 말했다. 오후 세 시였다. 손에 든 놋쇠 열쇠고리가 절반쯤 나뉜 채로 멈춰 있었다. 그 말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마당으로 승합차 두 대가 연달아 들어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담을 따라 길게 늘어졌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졌다.
낮술을 걸친 남자 넷이 먼저였다. 그들은 신발을 벗지도 않고 2층 복도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름이 걸레를 쥔 채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선우야, 너 저기 좀 막아봐. 나는 이불 세러 간다.”
“아니, 그게…”
나는 그 뒤를 잇지 못했다. 뭘 어떻게 막으라는 건지 물으려던 참인데 여름은 이미 창고 쪽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노래는 더 컸다.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팔을 내 어깨에 둘렀다.
“어, 총각! 이리 와봐. 우리 형이랑 한잔해.”
나는 형이 아니었고 그의 동생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의 팔은 내 목덜미에 걸린 채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나는 그 무게에 반쯤 눌린 자세로 서서 신발 좀 벗어달라는 말만 세 번쯤 되풀이했다. 복도 끝에서 여름이 여분 이불을 한 아름 끌어안고 나오다가 그 광경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1층 화장실에서 시커먼 물이 타일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배수구가 역류한 것이었다. 물은 문턱을 넘어 복도 쪽으로 천천히 밀려 나왔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저씨는 읍내로 장을 보러 나가고 없었다. 여름이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듯 카운터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지만, 신호음만 길게 이어지다 끊겼다.
“안 받아.”
여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매를 걷었다. 주방 싱크대 밑에서 고무장갑을 꺼내더니 한 짝만 끼고, 나머지 한 짝을 내게 던졌다.
“야, 하나씩 나눠 끼자. 우리 지금 손이 네 개밖에 없어.”
나는 왼손에 장갑을 꼈다. 여름은 오른손에 꼈다. 우리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여름이 턱으로 바닥의 대야를 가리키면 내가 그것을 배수구 아래로 밀어 받쳤고, 내가 맨손으로 배수구 뚜껑을 들어 올리면 여름이 철사 옷걸이를 곧게 편 것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여름의 얼굴이 배수구 바로 위까지 내려왔다. 앞머리가 물기에 젖어 이마에 붙었다.
“조금만 더.”
여름이 옷걸이 끝을 비틀었다. 무언가 걸리는 감각이 내 장갑 낀 손에도 전해졌다. 우리는 동시에 당겼다. 머리카락과 낙엽이 검게 엉킨 덩어리가 쑥 빠져나왔고, 그 순간 막혀 있던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타일 위의 검은 물이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다. 여름은 젖은 앞머리를 손등으로 넘기며 딱 한마디만 했다.
“빠졌다.”
이불은 두 채가 모자랐다. 손님은 예약보다 늘었고 방마다 사람이 겹쳤다. 나는 내 방 이불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럼 넌 뭐 덮고 자.”
여름은 그렇게 묻고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얇은 여름 담요를 하나 들고 나와 302호 의자 등받이에 툭 걸쳐 두었다. 등받이 한쪽이 갈라진 그 나무 의자였다. 담요는 얇아서 접힌 자리마다 빛이 비쳤다.
“이거 덮어. 여름이니까 안 추워.”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손님들이 다 곯아떨어졌다. 노래도 멎었고 배수구도 조용했다. 나와 여름은 1층 주방 바닥에 젖은 발로 마주 앉았다. 슬리퍼를 벗은 발바닥에 타일의 찬 기운이 그대로 올라왔다. 여름의 팔뚝에는 배수구 물이 튀어 마른 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었고, 내 티셔츠 앞섶도 물을 먹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왜 웃는지도 모르고 웃었다. 여름은 배를 잡고 웃다가 겨우 숨을 골랐다.
“너 아까 그 아저씨한테 형 소리 들을 때 표정 봤어야 되는데.”
“내가 뭘.”
“완전 도살장 끌려가는 소 눈이었어. 음메, 하는 줄.”
여름은 다시 웃었고, 웃다가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렌즈가 나를 향했다. 나는 젖은 앞섶을 손으로 대충 눌러 폈다. 그런데 이번에도 셔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여름은 카메라를 든 채 잠깐 나를 보다가 그냥 무릎 위로 내렸다.
“왜 안 찍어.”
“아직.”
여름은 짧게 그렇게 말하고 남은 웃음을 삼켰다. 나는 그 ‘아직’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다. 마당에서 처음 렌즈를 거두던 날에도, 시트를 널던 낮에도 여름은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가 아깝다며 내려놓았다. 아까운 게 필름인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아직 찍을 만한 얼굴이 아니라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물음은 목까지 올라왔다가 언제나처럼 다시 안으로 가라앉았다.
여름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젖은 발이 타일에 닿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먼저 잔다. 조식은 네 담당이니까 알아서 일어나고.”
주방 불이 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여름이 걸쳐둔 담요는 302호 의자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얇은 담요를 어떻게 덮고 잘지가 아니라, 여름이 왜 자기 방에서 그걸 꺼내 하필 내 방 의자에 걸어두고 갔는지를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래 뒤척였고, 창밖의 파도는 여전히 왔다가 돌아갔다. 그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오는 동안, 여름이 아직 누르지 않은 셔터가 어딘가에서 나를 겨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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