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매년 온다5화 / 전 32화2

1부 돌아온 사람

5화. 볕 냄새 뒤에 남겨진 두 달

강선우


뒷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갔던 여름이 카메라만 목에 건 채 도로 나왔다. 나는 마지막 시트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마당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다 접었다 다시 접었다 하다가 결국 뭉치째 가슴에 안은 꼴이었다. 여름은 그런 나를 몇 걸음 앞에서 바라보더니, 아까 내렸던 카메라를 아무 예고 없이 다시 들었다.

이번엔 초점 맞추는 소리도 길게 나지 않았다. 찰칵.

소리가 유난히 컸다. 조용한 마당에 그 한 번의 기계음이 담을 넘을 것처럼 울렸다. 나는 셔터가 눌린 뒤에야 눈을 깜빡였다.

“잘 나왔네, 신입.”

여름이 엄지로 필름을 감으며 웃었다. 필름 감기는 소리가 자잘하게 이어졌다. 나는 시트를 안은 채 항의라고 할 것도 못 되는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아니, 그게. 아까는 아직 아니라면서요.”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지.”

여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무슨 설명이 되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여름은 벌써 다음 말을 얹고 있었다.

“빨래 안고 있으니까 훨씬 사람 같잖아. 아까 담 넘어온 얼굴은 도망 온 사람이었는데, 그게 조금 지워졌어.”

도망. 그 말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려다가 또 멈췄다. 그건 이 마당에 들어서기 전날 밤에 내가 나 자신한테도 겨우 인정한 말이었다. 휴학계에 도장을 찍고, 입대까지 남은 두 달을 어디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데서 뭉개고 싶었던 것. 강의실도 과 사람들도 다 지겨워서, 신문 귀퉁이의 여덟 글자를 보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 그 마음을 처음 보는 사람이 렌즈 하나로 읽어냈다는 게, 무례했다.

함부로 찍고, 함부로 읽고, 함부로 지워졌다고 말하는 것. 다 무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트를 안은 팔에 힘을 풀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서울을 떠나온 뒤로 계속 목덜미가 뻣뻣했는데, 여름이 지워졌다고 말한 순간 그 근육이 한 번 툭 풀리는 게 느껴졌다.

“제 얼굴이 그렇게 보였어요?”

물어놓고 나도 놀랐다. 항의를 할 자리에서 확인을 하고 있었다.

“응. 눈에 힘 잔뜩 주고 있더라. 안 무섭게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딱 그렇게 서 있어.”

여름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말이 오히려 정확해서 나는 아무 대꾸도 못 했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내 얼굴을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도, 같은 방을 쓰던 형도, 심지어 나조차 거울 앞에 그만큼 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말이 남긴 자리를 들키기 싫어서 괜히 시트를 고쳐 안았다. 마른 천에서 볕 냄새가 훅 올라왔다.

“그거 어디 두면 돼요.”

“몰라. 그건 네 일이지, 신입은.”

여름이 카메라를 다시 목에 걸었다. 렌즈 뚜껑을 딸깍 덮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위아래로 훑었다. 값을 매기는 눈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디에 세워두면 그림이 될까 가늠하는 눈에 가까웠다.

“너 이름 선우 맞지. 아까 아저씨가 부르던데.”

“강선우요.”

“여기 오래 있을 거야?”

“두 달요.”

내 대답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짧고, 한 박자 늦고, 물음표를 붙일 자리에 마침표를 찍는. 여름은 두 달, 하고 내 말을 혼자 한 번 더 발음했다.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두 달이면 딱이네.”

무엇에 딱이라는 건지 여름은 말하지 않았다. 나도 이번엔 묻지 못했다. 물음이 또 목 안 어디에서 걸렸다. 여름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카메라가 등에서 가볍게 흔들렸고, 뒷문 안쪽 어둠으로 그 등이 반쯤 들어가다 멈췄다.

“참, 그 사진. 두 달 뒤에 보여줄게.”

“현상 안 해요, 지금?”

“필름 한 통 다 채워야 맡기지. 아깝잖아.”

문이 닫혔다. 이번엔 정말로 닫혔다. 마당에 다시 나 혼자였다.

빨랫줄은 비어 있고, 손에는 시트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하루 종일 볕을 받은 천에서 마른 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여름이 방금 한 말이 그 냄새에 섞여 코 안쪽에 오래 남았다. 두 달이면 딱이라던 말. 두 달 뒤에 보여주겠다던 말. 오기 전까지 두 달은 그냥 눈 감고 흘려보낼 빈 칸이었는데, 이제 그 안에 뭐가 들어갈지 궁금해진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마당 구석에서 얼룩 고양이가 여전히 뒷문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시트를 안은 채로 조금 더 서 있었다. 저 필름 한 통이 다 채워지는 데 얼마나 걸릴지, 그 안에 내 얼굴이 몇 번이나 들어가게 될지, 그때의 나는 짐작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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