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매년 온다4화 / 전 32화2

1부 돌아온 사람

4화. 소금기 얹힌 유리창 너머의 여름

강선우


그해 유월, 언덕을 오르는 내내 손바닥이 축축했다. 바지에 몇 번을 문질러도 그때뿐이었다. 주머니에는 신문 귀퉁이에서 오려낸 종이가 접혀 있었다. 고래게스트하우스 스태프 구함. 볼펜으로 밑줄까지 그어둔 그 여덟 글자가, 입대까지 남은 두 달을 어디로든 밀어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나는 그 종이를 몇 번이나 펴봤다가 다시 접었다. 접힌 자리가 하얗게 닳아 글씨가 흐려질 지경이었다.

문을 밀자 경첩이 짧게 울었다. 나를 먼저 맞은 건 사람이 아니라 냄새였다. 부엌 쪽에서 흘러나온 생선 굽는 냄새가 좁은 현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그 냄새를 밀치고 나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인사를 하려고 입을 벌리는데, 아저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인 줄 알고 나도 손을 마주 내밀었더니, 그 손에 걸레가 쥐여졌다.

“일할라꼬 왔제? 그라믄 저 창부터 닦아라.”

“아니, 그게, 저는 오늘 도착해서.”

말이 입 안에서 뭉개졌다. 아저씨는 이미 등을 보이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름도 대지 못했다. 나는 걸레를 든 채로 현관에 한참 서 있다가, 시키는 대로 창가로 갔다.

유리창에는 소금기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걸레로 문지르자 뽀득거리는 대신 손끝이 미끄러졌다. 닦아도 뿌옇고, 다시 닦으면 자국만 자리를 옮겨 다녔다. 처음 온 집의 창을 왜 내가 닦고 있나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두 달만 버티면 됐다. 창이 깨끗해지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유리가 어느 정도 트이자, 창 너머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빨랫줄에 흰 시트가 널려 있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시트가 배처럼 부풀었다 꺼졌다. 그 천과 천 사이로 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목에 필름 카메라를 걸고, 마당 구석의 얼룩 고양이를 향해 렌즈를 겨눈 채였다. 셔터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유리창까지 건너왔다. 찰칵, 그리고 필름이 한 칸 감기는 톱니 소리. 고양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까지 찍나 싶으면서도, 나는 걸레를 쥔 손을 멈추고 오래 봤다.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게 스스로도 좀 이상했다.

“쟈가 여름이다. 니캉 같이 일할 애.”

등 뒤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돌아보니 아저씨가 밥그릇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밥 위에 구운 고등어 한 토막이 얹혀 있었다. 껍질이 노릇하게 그을린, 살이 도톰한 토막이었다.

“밥은 묵고 일해라.”

“아,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말이 반 박자 늦게 나왔다. 아저씨는 벌써 저만치 가 있었다. 나는 창틀에 걸레를 걸쳐두고 밥그릇을 받아 들었다. 고등어는 아직 따뜻했다.

해가 기울 무렵, 아저씨는 나를 다시 마당으로 내보냈다. 마른 빨래를 걷으라고 했다. 나는 시트를 하나씩 줄에서 떼어냈다. 낮의 볕을 머금은 천이 따뜻하고 빳빳했다. 반으로 접는데 접힌 폭이 자꾸 어긋났다.

시트 하나를 걷자 그 뒤에 여름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몰랐다. 여름은 제 몫의 시트를 접다 말고 나를 봤다.

“너는 왜 아까부터 창문에 붙어서 남 찍는 거 훔쳐보고 있었어?”

시트 끝을 놓칠 뻔했다.

“아니, 그게, 훔쳐본 건 아니고.”

“근데 있잖아, 여기 처음이지?”

여름은 접던 시트를 턱으로 한 번 고쳐 잡았다.

“얼굴에 다 써 있어. 도망 온 사람 얼굴.”

도망 온 게 아니라고 말하려다 삼켰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입대 전에 갈 데가 없어서 온 거라고, 그건 도망이 아니라고, 그렇게 정리하려던 문장이 목에서 엉켰다.

여름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렌즈가 내 쪽을 향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폈다. 초점을 맞추는 소리가 짧게 났다. 그런데 셔터는 눌리지 않았다. 여름은 카메라를 그냥 내렸다.

“아직은 아니야.”

“뭐가요.”

“너 아직 여기 사람 아니잖아.”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접다 만 시트를 어색하게 마저 접었다. 폭이 또 어긋나서 결국 두 번을 다시 접었다. 여름은 제 몫을 다 걷어 팔에 안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가 그 등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빨랫줄이 비었다. 나는 마지막 시트를 안은 채 마당에 남았다. 두 달이었다. 여기서 두 달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는 어디론가 실려 갈 것이었다. 그 두 달이 셔터 한 번 눌리지 않은 채로 지나갈 거라고, 그날의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마당 구석에서 얼룩 고양이가, 여름이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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