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돌아온 사람
2화. 스무 해 뒤의 302호
“방 있습니까.”
내 목소리가 나 스스로도 낯설게 들렸다. 스무 해 전 이 카운터 앞에 섰을 때는 이렇게 낮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지금은 그 시절이 살아온 세월만큼을 더 얹은 사람이었다.
생선 굽는 냄새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름이 자글자글 튀는 소리가 주방 쪽에서 끊이지 않았고, 그 냄새는 코로 들어와 아래로, 명치께로 가라앉았다. 카운터 뒤에는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등이 굽어 어깨가 앞으로 말렸고, 장부를 넘기는 손등에는 검버섯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눈에 알았다. 생선을 뒤집던 그 무뚝뚝한 옆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고래 아저씨는 나를 한 번 올려다봤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이었다. 그 눈에 아무런 기미도 스치지 않았다. 아저씨는 나를 그냥 손님으로만 봤다. 장부를 펴고, 볼펜을 집어 들었다.
“며칠 잘 낀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 사실이 서운하기보다 이상하게 몸을 풀어놓았다. 스무 살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 앞에서라면, 나는 다시 그때의 얼굴로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걸레를 받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애송이로, 마당 빨랫줄 너머를 자꾸 훔쳐보던 그 얼굴로.
“글쎄요, 아직.”
아니, 그게. 나는 말끝을 삼켰다. 며칠을 묵을지 나도 몰랐다. 사표를 낸 것도 어제였고, 첫차를 탄 것도 얼떨결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여기까지 왔다.
“방부터 하나 주세요.”
아저씨가 열쇠걸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이 아무 열쇠나 집으려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혹시, 3층 구석방 비었습니까.”
아저씨가 그제야 나를 빤히 봤다. 처음으로 눈에 무언가가 걸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알아본 눈빛이 아니라, 구석방을 콕 집어 달라는 손님을 이상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그 방은 볕도 안 들고 좁은데.”
“괜찮습니다.”
늙은 손이 열쇠걸이에서 302호를 내려 카운터에 툭 놓았다. 나무 손잡이가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스무 해 전, 아침마다 이 열쇠를 쥐고 3층 복도를 오르내렸다. 손바닥에 그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나는 열쇠를 얼른 집지 못하고 오래 내려다봤다. 가방 안주머니에 든 것이 어깨끈을 타고 아래로 조금 옮겨 앉는 듯했다. 스무 해 동안 이사를 열 번 다니면서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밥은 묵었나.”
아저씨가 등을 돌리며 던진 말이었다. 나를 향한 물음이라기보다, 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건네는 말투였다. 그 무심함이 어쩐지 목을 조여왔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열쇠만 꼭 쥐었다. 손잡이의 닳은 결이 손금에 파고들었다.
계단은 예전보다 삐걱거렸다.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나무가 낮게 울었다. 2층 복도를 지나고 3층으로 꺾어 드는데, 복도 끝에 옥상으로 오르는 철문이 그대로 있었다. 문틈으로 저녁 빛이 새어 들었다. 파랗게 물든 빛이었다. 새로 칠한 난간에 부딪혀 그 색을 얻어 온 빛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쪽으로 발이 향하려는 것을 억지로 붙들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302호 앞에 섰다. 문짝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벗겨진 자리마다 아래에 깔린 다른 색이 드러났다. 하늘색 위에 흰색, 그 위에 다시 지금의 미색. 스무 해 사이에 두 번은 덧칠을 한 셈이었다. 열쇠를 구멍에 꽂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은 기억하던 대로 좁고 어두웠다. 볕이 안 든다던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문을 열자 오래 닫혀 있던 방 특유의, 눅눅하고 미지근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낮은 침대 하나, 벽에 붙은 작은 옷장, 창가에 놓인 낡은 나무 의자. 의자는 스무 해 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등받이 한쪽이 갈라져 나무 결이 일어난 것까지 그대로였다. 스무 살의 내가 밤마다 저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썼다. 다 쓰고 나면 창가 서랍에 넣어두던 것들. 나는 그 서랍 쪽으로 눈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가방끈을 어깨에서 내렸다. 침대에 눕히지 않고 문 옆 바닥에 세워 두었다. 그러고도 손은 안주머니 쪽으로 갔다. 지퍼를 반쯤 열고, 그 안에 든 물건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졌다. 종이의 얇은 결이 손톱에 걸렸다. 열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모서리가 닳아 부드러워진 종이였다. 나는 지퍼를 도로 채우지도, 꺼내지도 못한 채 손을 뺐다.
창가로 갔다. 창틀은 나무였고, 페인트가 부풀어 손가락으로 누르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아래쪽 창틀에는 스무 해 전 내가 새겨 넣은 자국이 있었다. 볼펜 끝으로 꾹꾹 눌러 판 짧은 금 몇 개. 그때 무엇을 세려고 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손톱으로 그 홈을 따라가 봤다. 홈은 그대로였는데, 그것이 무엇을 세던 자국이었는지만 사라지고 없었다.
창을 밀어 올렸다. 뻑뻑하게 걸리다가 절반쯤에서 멈췄다. 그 절반의 틈으로 바다 소리가 밀려들었다. 낮게, 규칙적으로, 어둠 속에서 뭍을 향해 오는 소리. 창밖은 이미 어두워 물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방파제 끝의 붉은 등만 깜빡였고, 그 아래 어딘가에서 파도가 몸을 부수고 있었다. 스무 해 전에도 이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아니, 잠들지 못하고 그 소리에 귀를 대고 있었던 밤이 더 많았다.
나는 창턱에 팔을 얹고 오래 서 있었다. 방 안에는 아무 불도 켜지 않았다. 어둠에 눈이 익자 옷장 문의 손잡이며 의자 등받이의 갈라진 결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바다의 소금기가 밴 바람이 얼굴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파도가 한 번 부서지고, 다음 파도가 오기까지의 그 짧은 정적이 방을 채웠다가 다시 소리로 덮였다.
밥은 먹었냐는 물음에,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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