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매년 온다1화 / 전 32화21

1부 돌아온 사람

1화. 고래 정류장과 파란 난간

강선우


버스가 마지막 승객을 부리듯 나를 종점에 내려놓았다. 문이 접히고 엔진 소리가 언덕 아래로 사라지자, 남은 건 소금기 밴 바람과 발밑에 짧게 눌린 그림자뿐이었다.

정류장 표지판은 페인트가 벗겨져 절반쯤 지워져 있었다. ‘고래’라는 두 글자만 겨우 형체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참 그 글자를 봤다. 스무 살에도 이 자리에 내렸다. 그때는 등에 배낭이 있었다. 지금은 서류 몇 장이 든 가방 하나가 손에 있다. 어제 아침 사표를 내밀 때 부장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잡았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캐리어를 꺼내려다 말고, 나는 현관에 세워둔 이 낡은 가방을 들었다. 왜 이걸 들었는지, 왜 남쪽으로 가는 첫차에 올랐는지, 나는 지금도 대답하지 못한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이유는 뒤따라오지 않았다.

담배 가게 앞 평상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부채질을 하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고쳐 쥐고 다가갔다.

“아저씨, 여기 게스트하우스 아직 있어요?”

노인이 부채질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고래 말이가? 아직 있제. 저 언덕 넘어가마 나온다.”

손가락이 바다 쪽을 가리켰다. 아직 있다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명치를 눌렀다. 없어졌기를 바라고 온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대로이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없어졌다면 나는 이 표지판 앞에서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순간에 나는 다행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노인은 다시 부채를 흔들며 라디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길은 기억보다 좁았다. 시멘트가 갈라진 틈마다 잡초가 무릎 높이로 솟아 있었다. 매미 소리가 열기처럼 귀를 채웠다. 스무 살의 나는 이 길을 뛰어 올라갔다. 첫 아르바이트, 첫 여름, 입대까지 남은 두 달을 어떻게든 채워야 했던 초조함이 발을 재촉했다. 지금은 그때의 절반 속도로도 숨이 찼다. 셔츠 등판이 금세 젖었다. 열아홉 걸음쯤 오르다 한 번 멈춰 숨을 골랐고, 그 자리에서 바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였다. 물비늘이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눈이 부셔 잠깐 감았다 떴다.

모퉁이를 돌자 그 건물이 나타났다.

낡은 3층. 시멘트 외벽에 세로로 갈라진 금은 스무 해 동안 조금 더 길어졌을 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딱 한 군데만 달라져 있었다. 옥상 난간에 칠해진 파란 페인트. 그것만 새것이었다. 나머지는 2004년의 여름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마당 앞에서 멈췄다.

문을 미는 일이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나는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다가 접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씨가 나를 알아본다면 뭐라고 인사할 것이며, 알아보지 못한다면 또 뭐라고 방을 청할 것인가. 아니, 그게, 애초에 나는 여기 무엇을 하러 왔는가. 그 물음 앞에서 손이 자꾸 허공에서 멈췄다.

그때 안에서 냄새가 흘러나왔다.

생선 굽는 냄새였다. 기름이 살에 스미고 껍질이 타기 직전에 나는, 짭짤하고 고소한 그 냄새. 스무 살의 여름 내내 저녁마다 맡던 것과 똑같았다. 냄새는 시간을 접는다. 나는 아직 문도 밀지 않았는데, 벌써 그 여름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손에 걸레를 쥐고 마당을 가로지르던 스무 살의 내가, 빨랫줄 너머 어디쯤에서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옥상을 올려다봤다.

새로 칠한 파란 난간 위로 하늘만 걸려 있었다. 누군가 방금 자리를 뜬 것처럼, 딱 사람 하나 설 만큼의 공간이 비어 있었다. 그해 여름, 매일 밤 그 자리에 누가 서 있었다. 맥주 두 캔을 든 채로, 수평선을 보며 이런 말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고래는 숨을 쉬려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거야. 그 말이 지금 파도 소리에 섞여 들리는 것 같았다.

가방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작게 옮겨 앉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스무 해 동안 이사를 열 번 다니면서도 버리지 못한 것. 나는 그것을 지금 꺼내지 않았다. 대신 가방끈을 어깨에 다시 걸고, 손잡이를 쥐었다. 안에서 생선 굽는 소리가 자글자글 이어지고 있었다.

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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