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파도가 높아지는 밤
17화. 반쪽짜리 테이프와 두 개의 촛불
전등이 두 번 깜빡였다. 세 번째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가 통째로 어둠에 잠기자 파도 소리가 갑자기 방 안으로 밀려든 것처럼 커졌다. 나는 계산대 아래를 손으로 더듬었다. 손끝에 먼저 닿은 것은 물먹은 걸레의 눅진한 결이었다. 그 옆으로 뻣뻣하게 말린 노끈 뭉치, 테이프가 반쯤 떨어져 모서리가 벌어진 종이상자가 잡혔다. 상자 안에는 굳은 청테이프와 녹슨 병따개 같은 것들이 서로 부딪치며 굴러다녔다. 손전등은 없었다. 등 뒤에서 성냥 긋는 소리가 났다. 여름이 벌써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성냥불이 여름의 손끝을 잠깐 노랗게 물들였다가, 심지로 옮겨 앉았다.
“손전등, 그거 지난주에 건전지 나갔어.”
여름이 초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접시에 촛농을 몇 방울 떨어뜨려 초를 세웠다. 그렇게 세운 것을 하나씩 들고 방으로 돌렸다.
복도 끝에서 205호 손님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여기 아무도 없어요?”
“괜찮습니다. 태풍 지나가면 곧 들어올 거예요.”
나는 손님 손에 초 하나를 쥐여주었다. 촛불을 받아 든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 그 손님은 초를 창틀에 올려놓으려다 말고, 바람이 새는 창을 흘끗 보고는 협탁 위에 도로 세웠다.
옆방 202호에서는 두 여자가 휴대폰 손전등을 켜놓고 앉아 있었다. 하나가 “배터리 아껴야 하는데” 하며 화면을 껐고, 나는 초 두 개를 세워 침대 사이 탁자에 놓아주었다. 불빛이 벽지의 물 얼룩을 노랗게 끌어냈다.
203호 손님은 문을 반쯤 열고 초를 받으면서 물었다.
“이거 밤새 켜놔도 돼요?”
“주무실 때는 꺼주세요. 저희가 한 번씩 돌아볼게요.”
“곧 들어온다면서요.”
“네, 곧 들어올 거예요.”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도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 했다. 방마다 문을 두드리고, 초를 세워주고, 곧 들어올 거라고 말했다. 어떤 문 앞에서는 두 번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서, 문틈 아래로 촛불 빛이 새는지 확인하고 초 하나를 문고리에 걸린 봉투에 얹어두고 왔다.
주방 쪽에서 아저씨가 두꺼비집을 몇 번 올렸다 내렸다. 딸깍, 딸깍, 소리만 났다.
“치아라 마. 마을 전체가 나갔다.”
아저씨는 그러고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파란 불꽃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색이었다. 손님들이 촛불을 든 채 하나둘 방으로 잦아들었다. 문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하나씩 줄어들었다. 마지막 문이 닫히고 나서야 복도는 촛농 냄새와 파도 소리만 남았다.
다 돌리고 나니 초 하나가 남았다. 나는 그것을 무릎 사이에 놓고 1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앉았다. 계단의 시멘트가 엉덩이에 서늘하게 배어들었다. 방마다 세워둔 초들 때문에 손가락 끝이 촛농으로 미끈거렸다. 나는 무릎 위 촛불에 손바닥을 가까이 대고 잠깐 녹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파라핀 냄새가 목구멍까지 들어왔다. 바깥에서 파도가 방파제를 넘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왔다. 규칙 없이, 한 번씩 크게. 나는 눈앞의 유리창을 보고 있었다. 여름이 마저 붙이지 않고 간 반쪽짜리 X자 테이프가 어둠 속에서 희게 떠 있었다. 절반만 그어진 표식 같았다.
계단 위쪽에서 초 하나가 내려왔다. 불빛보다 발소리가 먼저였다. 여름이 내 옆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촛불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두 불꽃이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흔들렸다.
“저거, 네가 마저 안 붙였더라.”
여름이 유리창 쪽으로 턱을 살짝 들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접었다.
“아니, 그게…”
여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며칠 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나를 몰아붙였을 텐데, 오늘은 그냥 촛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불꽃 속 심지가 까맣게 휘어지는 것을, 여름은 셔터를 누를 때처럼 오래 봤다. 카메라는 없었다.
“근데 있잖아.”
여름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없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오일장에서도, 옥상에서도, 핵심에 다다르면 여름은 늘 이렇게 목소리를 낮췄다.
“재하 선배는, 내가 못 가겠다고 한 길이야.”
파도가 한 번 벽을 쳤다. 나는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사흘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은 내가 이제 와 묻는 게 염치없어서 입술만 움직였다.
“선배가 다니는 데, 나 붙여줄 수 있었어. 사진 접고 그쪽으로 오면. 집에서 사치라고 부르는 거, 그거 안 하면.”
여름이 촛불 위로 손을 잠깐 가져갔다가 뗐다. 불꽃이 손바닥 그림자에 눌렸다가 다시 섰다.
“근데 나 거기 가면 딱 그 자리에 멈출 것 같더라. 사람들이 좋다고, 안정적이라고 하는 자리에. 그래서 못 간다고 했어.”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여름이 왜 재하에게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는지. 왜 그날 카메라도 담배도 없이 빈손으로 마당 담벼락에 서 있었는지. 렌즈를 든다는 건 여름에게 아직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었고, 재하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름은 붙잡히는 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너는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이번엔 원망이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하는 소리였다. 문을 두드렸다 돌아가던 발소리, 마저 붙이지 못한 테이프, 긋지 못한 창틀의 금이 그 물음 하나에 다 걸려 있었다.
“물어봐도 되는지, 몰라서.”
나는 겨우 뱉었다. 그게 사흘 동안 내가 준비한 유일한 대답이었다. 여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촛불 두 개가 흔들리는 것을 같이 봤다.
바람이 계단이 흔들릴 만큼 세게 벽에 부딪쳤다. 두 촛불이 동시에 옆으로 누웠다. 심지가 꺼질 듯 가늘어졌다가, 바람이 물러나자 다시 곧게 섰다. 그 짧은 사이에 여름의 손이 내 손등 위로 왔다. 밀어내는 것도, 잡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얹힌 손이었다. 손끝이 조금 차가웠고, 손바닥 안쪽은 따뜻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여름도 손을 떼지 않았다. 무릎 위의 초가 여름의 손등을 노랗게 비췄다. 나는 이 손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여름의 마음을, 이번에는 여름이 카메라 대신 손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셔터 소리가 없었다. 뷰파인더도 없었다. 촛불 너머로 여름이 나를 보고 있었고, 이번엔 그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았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지금 여기서, 불이 돌아오기 전에. 물속에서 삼킨 말도, 서랍에 넣어둔 세 장의 문장도, 지금이라면 소리로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두려운 건 그게 아니었다. 전기가 돌아오면 이 어둠이 걷힐 거라는 것, 복도에 불이 들어오고 두꺼비집이 딸깍 올라가는 순간 여름이 손을 거둘 거라는 것, 그게 더 두려웠다.
나는 아무 말도 미루지 않기로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등에 얹힌 온도만 그대로 두었다. 파도가 벽을 넘어왔다가 물러갔다. 주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그때 복도 끝에서 냉장고가 웅, 하고 낮게 떨며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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