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파도가 높아지는 밤
15화. 닫힌 문과 긋지 않은 금
걸레를 헹군 물이 하루가 다르게 잿빛으로 흐려졌다. 나는 그 사흘 동안 1층 세면장 앞에 양동이를 놓고 앉아, 이미 깨끗해진 걸레를 계속 빨았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짜고 다시 적셨다. 손이 필요한 곳은 언제나 있었다. 없으면 만들어냈다. 복도 걸레받이를 두 번씩 닦고, 다 마른 시트를 개어 다시 각을 잡았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옥상 계단 쪽으로 발을 놓지 않아도 되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뎠다. 문제는 밤이었다.
첫날 밤, 나는 302호 문을 안에서 잠갔다. 불을 끄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다. 잠긴 문이라는 게 이 낡은 집에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으면서도 걸쇠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 파도 소리가 창틀을 넘어 들어왔다가 빠졌다. 나는 그 리듬에 억지로 숨을 맞춰보려다 이내 포기했다.
복도 끝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걸음의 주인을 눈 감고도 알았다. 발뒤꿈치를 반쯤 들고, 앞코를 바닥에 끌면서 걷는 사람. 소리가 문 앞에서 멎었다.
똑. 똑.
두 번이었다.
“자?”
여름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낮게 들어왔다. 나는 이불 속에서 눈만 떴다. 어둠 속 천장에 물결 무늬가 어렸다. 마당 가로등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면 목이 붙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벽에 걸어둔 마른 수건이 바람에 한 번 스쳤다. 그 부스럭거림만이 방 안에 남았다.
문밖은 오래 조용했다. 그러다 슬리퍼 소리가 왔던 쪽으로 물러갔다. 문이 아니라 사람이 멀어지는 소리였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참았던 숨을 뱉었다. 가슴이 얕게 오르내렸다. 나는 무엇을 지키려고 저 문을 잠근 걸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리며 그 질문을 던졌지만, 어디에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 답이 없다는 것만이 답 같았다.
둘째 날 낮, 마당에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는 나무 도마에 갈치를 눕혀 놓고 칼등으로 비늘을 긁고 있었다. 은빛 조각이 햇빛에 튀어 아저씨의 손등에 붙었다. 나는 대걸레 자루를 고쳐 쥐고 마당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섰다.
“니 요즘 옥상 안 올라가나.”
칼은 멈추지 않았다. 비늘 긁는 소리가 서걱서걱 이어졌다.
“아니, 그게…… 일이 많아서요.”
말이 입 안에서 접혔다. 아저씨는 그 접힌 말을 굳이 펴려 하지 않았다. 대신 갈치의 배를 가르며 툭 던졌다.
“여름이가 니 방 앞에 두 번 왔다 갔다.”
나는 대걸레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저씨는 더 묻지 않았다. 남의 사정에 참견을 못 참는 양반이 그날은 딱 한 문장만 내려놓고 입을 닫았다. 그게 참견보다 무거웠다.
점심상에서 아저씨는 구운 갈치 한 토막을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살이 두툼한 가운데 토막이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그 흰 살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짭짤하고 뜨거운데, 목구멍에서 자꾸 걸렸다. 밥을 반도 넘기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아저씨는 내 그릇을 힐끔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주방 안쪽에서 소리가 넘어왔다. 재하의 목소리였다. 서울말은 이 집의 어떤 소리와도 결이 달라서, 부딪히지 않고 미끄러지듯 흘러왔다.
“우리 여름이가 여기서 고생이 많았네요.”
우리 여름이가.
나는 상 옆에 쌓아둔 접시를 하나 집어 행주로 닦던 중이었다. 손이 멎었다. 그 소유격은 부드러운 손으로 가슴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밀어내는데 아프지가 않아서, 그래서 반박할 자리도 없었다. 여름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들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끝까지 듣지 못했다. 접시를 조용히 개수대에 내려놓고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뒷마당의 볕은 앞마당보다 서늘했다. 나는 담벼락에 등을 대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여름이 재하에게 뭐라고 답했든, 그걸 듣지 않은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다독임이 도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셋째 날 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없었다.
나는 불을 끄지도 켜지도 못한 채 창가에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창틀 아래의 금들을 더듬었다. 볼펜으로 눌러 파낸 얕은 자국이 마디마다 걸렸다 풀렸다 했다. 며칠째 새 금을 긋지 못한 볼펜은 손안에서 미지근하게 데워지기만 했다. 나는 그 촉을 창틀에 대었다가, 다시 떼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슬리퍼 소리도, 두 번의 노크도, 낮은 목소리도 없었다. 그 조용함이 문 두드리는 소리보다 크게 나를 눌렀다. 두드릴 때는 대답만 참으면 됐는데, 두드리지 않으니 참을 것조차 없어서 오히려 견딜 수가 없었다.
너는 나한테 왜 아무것도 안 물어.
여름이 남기고 간 그 물음이 어둠 속에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나는 그 애가 왜 내 문을 더는 두드리지 않는지조차 묻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물러선다는 것. 나는 그게 어쩌다 벌어진 일이 아니라 내가 사흘 동안 매일 밤 새로 고른 선택이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창밖에서 파도가 자갈을 한 번 긁고 물러났다. 다시 긁고, 다시 물러났다. 그 소리는 밤새 문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나는 볼펜을 창틀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오늘도 금은 긋지 않았다.
201호에는 처음부터 불이 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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