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매년 온다10화 / 전 32화7

2부 옥상의 계절

10화. 스무 해 동안 현상하지 않은 첫 컷

강선우


여름이 남긴 물음은 조식이 끝나고 점심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도 손끝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했고, 여름도 그날 아침에는 나를 따로 부르지 않았다. 어색한 거리가 마당 빨랫줄만큼 팽팽하게 걸려 있던 정오 무렵, 고래 아저씨가 우리 둘을 한꺼번에 불렀다.

“장 좀 봐 온나.”

종이 귀퉁이에 삐뚤삐뚤 적은 목록을 여름의 손에 밀어 넣으며 아저씨는 지폐 몇 장을 그 위에 얹었다. 갈치, 미역, 두부, 콩나물,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글자 두어 개.

“남는 건 알아서 하고. 치아라 마, 인사는.”

손사래를 치며 아저씨는 우리를 부엌 밖으로 내몰았다. 여름은 목록을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고, 목에 건 카메라 끈을 한 번 고쳐 걸었다. 어젯밤 옥상의 팽팽함이 아직 어깨에 남아 있는지, 그는 앞장서 걸으면서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일장은 소읍 삼거리에 서 있었다. 좌판에 널린 갈치가 볕을 받아 은빛으로 번들거렸고, 젖은 미역의 비린 냄새와 어디선가 부치는 기름 냄새가 코끝에 한꺼번에 앉았다. 나는 장바구니를 가슴께에 안고 여름의 반 박자 뒤를 따라갔다.

좌판과 좌판 사이를 여름은 물속을 지나듯 미끄러져 걸었다. 목록을 꺼내 보지도 않았는데 발이 알아서 방향을 찾았다. 갈치 좌판 앞에서 그는 쪼그려 앉아 값을 물었다.

“이거 두 마리에 얼마예요.”

“싱싱한 놈으로 골라 줄게. 학생들이가?”

“네. 아저씨 심부름요.”

주인은 갈치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건네면서 덤으로 한 토막을 더 얹었다. 여름은 그 신문지 뭉치를 내 장바구니에 넣으라고 턱짓하고는, 좌판 위에 나란히 누운 갈치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은빛 위로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 날았다.

두부 좌판에서는 한 모를 손끝으로 눌러 보고 나서 골랐다. 물통에 담긴 두부가 손가락 자국을 따라 잠깐 우묵해졌다가 되돌아왔다. 미역은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두고 한참 망설이다 마른 것으로 집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한 번도 목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생선 대가리를 치는 칼자국, 함지에 쌓인 마늘, 볕에 앉아 조는 노인. 여름의 눈은 사려는 물건보다 찍을 것을 먼저 골라내는 눈이었다.

“너는 왜 그렇게 뒤에서 눈치를 봐.”

여름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어젯밤 이후 처음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여기 아무도 너 안 봐. 장바구니 안고 그러고 있으니까 더 티 나.”

나는 아니, 그게, 하다가 말을 접었다. 접는 버릇은 이럴 때 제일 빨랐다. 여름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콩나물 좌판 앞에서였다. 할머니 두엇이 값을 깎느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목록에 콩나물이 있었던 걸 떠올리며 그 틈으로 끼어들 참이었다. 그때 여름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빨리, 저거 놓치면 안 돼.”

손목에 닿은 손이 서늘하고 단단했다. 여름 볕에 데워진 시장 한복판에서 그 손만 물속에 담갔다 뺀 것처럼 차가웠다. 나는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 되묻지도 못한 채 끌려갔다. 되물을 겨를이 없었다. 그 온도를 재느라 다른 걸 생각할 자리가 없었다.

여름이 나를 끌고 간 곳에는 대야에 담긴 늙은 호박 몇 덩이가 있었고, 그 옆에 개 한 마리가 쪼그려 앉아 졸고 있었다. 털이 군데군데 빠진 늙은 개였다. 여름은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췄다.

“저 얼굴 봐. 저건 찍어야 돼.”

찰칵. 개는 눈도 뜨지 않았다. 여름은 각도를 바꿔 한 컷을 더 찍었다. 대야 뒤에 앉아 있던 주인 할머니가 무슨 구경거리냐는 얼굴로 개와 우리를 번갈아 봤다.

“그 늙은 거 뭐 찍을 게 있다고.”

“할머니, 얘 잘생겼어요.”

여름이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가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다. 여름은 그 웃음도 놓치지 않고 한 컷을 담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손목은 이미 놓여 있었는데, 나는 그 자리가 아직 서늘한 것 같아 반대쪽 손으로 문지를 뻔했다.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 겸 사진관 앞을 지났다. 여름의 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진열대 유리 너머로 필름들이 색색으로 쌓여 있었다. 초록, 노랑, 빨강 상자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었고, 여름은 보지 않는 척하며 그것을 보고 있었다.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 뒤로 필름을 세고 있는 눈이었다.

나는 세 번째, 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반쯤 열린 방문 너머로 봤던 낙선 통지서와, 사치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남은 심부름 돈을 세어 봤다. 두부값과 콩나물값을 빼고 나면, 필름 두 통이 아슬아슬하게 되었다.

“저기요, 이거 두 개요.”

내가 먼저 말해 버리고 나서야 여름이 돌아봤다. 여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야, 너 지금 뭐 해. 그거 아저씨 돈이잖아.”

“남는 건 알아서 하라고 했어.”

“그걸 나한테 쓰라고 한 게 아니잖아.”

목소리가 처음으로 장난기 없이 날카로웠다. 나는 아니, 그게, 하고 또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접지 못했다. 접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아까워서 셔터 못 누르는 거. 그거 필름 아까워서 그런 거잖아. 나는 그거 보기 싫어서.”

말해 놓고 나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시장 소음이 잠깐 멀어졌다. 여름은 나를 한참 바라봤다. 콩나물 봉지를 든 손이 옆구리에서 살짝 흔들렸다.

여름은 필름 두 통을 받아 들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만 했다. 무게를 재는 것처럼, 아니면 그게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너 진짜 이상한 애다.”

그러고는 그중 한 통을 뜯어 카메라에 넣었다. 뒷면 뚜껑을 닫고 필름을 감는 소리가 톱니처럼 짧게 돌았다. 여름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나를 향해 올렸다가 아직, 이라며 내렸던 렌즈였다. 이번에는 내리지 않았다.

찰칵.

시장 소음 사이에서 그 소리는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눈을 감지도, 웃지도 못한 채 그대로 찍혔다. 여름은 카메라를 내리며 말했다.

“이제 너도 여기 사람이야. 아까워도 찍는다.”

나는 그 말을 되물으려다 말았다. 필름 얘기인지, 다른 얘기인지 물으면 여름이 다시 아까 그 날카로운 목소리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 필름 한 통은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내 가방 안주머니에 들어 있다. 이사를 열 번 다니는 동안 상자를 몇 번이나 갈아엎었어도 그것만은 빼놓지 않았다. 한 번도 현상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돌아온 저녁,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밥상 앞으로 우리를 불렀다. 구운 갈치 한 토막이 각자의 밥그릇 위에 얹혀 있었다. 여름은 밥을 먹으면서도 카메라를 무릎에 올려두었고, 그 안에 들어간 필름의 첫 컷이 나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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