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두 장의 종이
9화. 안에서만 열리는 창문
가습기에서 올라온 물 냄새가 6번 침대 커튼 안쪽에만 고여 있었다.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커튼을 반만 열었을 때 유안은 자고 있지 않았다. 모니터의 포화도는 아흔과 아흔하나 사이를 오갔고 심박수는 백열아홉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침대 머리 쪽 조명만 켜져 있어서 아이 얼굴의 절반이 어두웠다.
“안 자?”
“엄마 자니까요.”
임경아는 보조 의자를 침대 쪽으로 붙이고 팔에 얼굴을 묻은 채 앉아 있었다. 어깨가 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유안이 사이드테이블에 뒤집어 놓았던 종이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폈다. 갈색 집이었다. 지붕이 창문보다 크게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 창문 다 세어 봤어요?”
“……세어 봤어.”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몇 개예요?”
“다섯.”
“맞아요.”
아이가 검지로 창문을 하나씩 짚었다. 크레파스가 뭉친 자리에서 손톱이 걸렸다.
“이 집은 문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도 못 들어와요. 창문은 안에서만 열려요. 내가 열어야 열려요.”
“밖에서 열면?”
“안 열려요. 규칙이에요.”
나는 침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왜 창문만 그렸느냐고 물으려다 다른 걸 물었다.
“유안아. 그 종이, 왜 나한테 줬어.”
아이는 그림을 접지 않고 손바닥으로 눌러 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되니까요.”
숨소리 사이에서 나온 말이었는데도 또박또박했다.
“그만해주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나쁜 사람이 돼요. 그 말 한 사람만 다 기억해요.”
“누가 그래.”
“저번에 저기 할아버지요.”
아이가 턱으로 커튼 쪽을 가리켰다. 5번 침대는 이틀 전에 비워졌고 지금은 시트가 새로 깔려 있었다.
“할아버지 아들이 계속 소리 질렀어요. 아빠, 아빠, 하고. 그러다가 그만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벽 보고 서 있었어요. 오래요.”
“……”
“엄마도 그렇게 될 거예요. 벽 보고 서 있어요. 평생.”
나는 모니터를 봤다. 심박수가 백스물둘로 올라갔다가 다시 백열아홉으로 내려왔다.
“아픈 건 안 무서워?”
“아픈 건 눈 감으면 돼요.”
유안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시범을 보이는 얼굴이었다.
“눈 감으면 반은 없어져요. 근데 엄마는 평생 눈 못 감아요. 그러니까 엄마 말고 선생님이 하는 거예요. 엄마는 안 돼요. 엄마는 나쁜 사람 되면 안 되니까.”
“선생님은 나쁜 사람 돼도 돼?”
아이가 나를 봤다. 대답하기 전에 아주 조금 웃었다.
“선생님은 의사잖아요.”
여덟 살이 서른여섯 달치 명세서보다 정확하게 항목을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 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근데 왜 나야. 여기 선생님 많아.”
유안은 그림을 무릎에서 들어 사이드테이블에 다시 뒤집어 놓았다.
“그건 나중에 말할게요.”
“지금 말해.”
“안 돼요. 지금 말하면 선생님이 도망갈 수도 있어요.”
임경아가 팔에 묻은 얼굴을 조금 움직였다. 유안이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이 떨렸다. 자는 척이었다.
나는 커튼을 원래 폭으로 당겼다. 침대 걸이 클립은 종이 두 장 두께로 벌어져 있었다. 아래 장 귀퉁이에 내 엄지가 눌러 남긴 자국이 아직 있었다. 그 위에 원무과 접수증 사본이 겹쳐 있었고, 사본 쪽 모서리는 아무도 손대지 않아 각이 살아 있었다.
데스크에는 야간 간호사 한 명만 앉아 투약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프린터 옆 함에서 A4 한 장을 뽑았다. 유안의 문구를 옮겨 적으려고 볼펜을 댔다가 멈췄다. 그 문장은 아이가 이미 썼다. 두 번 접혀서 내 주머니에 있었다.
대신 오늘 들은 걸 적었다.
6번 침대 백유안. 통증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보호자가 남을 시간에 관한 것. 소생 중단 요청의 이유를 본인이 진술함. 보호자 대신 담당의가 결정해 달라고 요구함. 상기 내용은 환아 본인의 진술을 그대로 옮긴 것임.
문장이 짧아서 종이의 위쪽만 찼다. 아래 여백에 이름 칸을 그었다. 3년 전 806호 병상 걸이에서 뽑아 뒷면까지 읽고 다시 접어 밀어 넣은 종이도 이만한 두께였다. 그 종이의 보호자 란에는 강인호의 이름이 있었고 시행자 란은 비어 있었다.
나는 볼펜으로 이름을 쓰고 날짜를 적었다. 서지원. 3월 12일. 볼펜이 종이를 눌러 뒷면에 글자 모양이 도드라졌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크레파스로 쓴 종이 옆이었다. 두 장이 붙어서 한 장보다 조금 더 두꺼워졌다.
새벽 한 시 십 분에 약품장 앞에서 한여순 선생이 나를 세웠다. 카트 위에 빈 앰풀 트레이가 놓여 있었다.
“주머니 또 두꺼워졌네.”
나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않았다.
“이번엔 필기구라고 할 거야?”
“아니요. 종이입니다. 두 장입니다.”
선생이 트레이를 카트 아래 칸으로 옮겼다. 유리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교육수련부에서 원본 달라고 문서 왔다는데.”
“압니다.”
“그래서 뭘 낼 건데.”
“목요일 오전에 남 과장님께 6번 침대 연명의료 논의를 정식으로 올리겠습니다. 아이 진술 내용 포함해서요. 진술서는 그 전에 쓰겠습니다.”
“3년 전 것도?”
“3년 전 것도요.”
한여순 선생이 나를 오래 봤다. 데스크 조명이 옆얼굴에만 닿아서 눈 아래 주름이 깊게 파여 보였다.
“서 선생. 이번엔 누구 사면하려고 쓰는 건데?”
아무도, 라고 말하려다 삼켰다. 삼킨 자리가 목구멍에서 마르게 걸렸다.
“모르겠습니다.”
“그게 제일 정직한 대답이네.”
선생이 카트를 밀었다. 두어 걸음 가다가 멈추고 뒤도 안 돌린 채 말했다.
“목요일까지 그 애가 안 기다려주면 어쩔 건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트 바퀴 소리가 병동 끝까지 갔다.
휴대폰이 한 번 짧게 울렸다. 신경과 외래 예약 안내. 오후 세 시 반. 화면이 이 초쯤 켜져 있다가 꺼졌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두 장의 접힌 각을 엄지로 눌렀다. 걸을 때마다 종이가 허벅지에 부딪혔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사람 둘이 서 있었다. 임경아였다. 옆에는 8번 침대 보호자가 캔을 들고 있었고, 둘이 한 화면을 같이 보고 있었다. 화면을 든 쪽은 8번 침대 보호자였다. 손가락으로 두 번 벌려 무언가를 확대했다.
임경아가 고개를 들었다. 화면 빛이 아래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선생님.”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자판기 안에서 냉각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