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하지 마요, 약속7화 / 전 19화2

2부 두 장의 종이

7화. 접힌 종이와 벌어진 클립

서지원


신발을 벗지 않은 채로 당직실 침대에 앉았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다. 휴대폰을 열자 병동 단체방이 위로 스물세 번 넘게 밀려 있었다.

밀린 것들은 대부분 별게 없었다. 야간 인수인계 누락 확인, 6인실 링거 폴대 개수, 다음 주 회식 참석 여부를 묻는 투표. 사진은 그 아래에 있었다. 6번 침대 커튼 틈으로 찍힌 각도였다. 아이 손이 종이 아래쪽을 잡고 있어서 손가락 다섯 개가 그림자처럼 걸쳐 있었고, 네모 칸 안의 검정 크레파스 글씨만 유독 선명했다. 서지원. 세 글자. 그 옆의 날짜.

이거 진짜 사인이에요?

누군가 그렇게 썼다. 그 아래에 웃는 이모티콘 셋이 붙었다. 그 아래에서 대화가 끊겼다. 끊긴 자리를 나는 오래 봤다. 끊긴 뒤로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게 웃는 이모티콘보다 아래로 무거웠다. 사진을 확대했다. 크레파스 획이 종이 결에 걸려 끊긴 자리가 두 군데 보였다. 그중 하나는 내 이름 두 번째 자의 아래쪽이었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종이의 접힌 각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어야 하는 것이 내 몸에만 있었고, 3년 전 806호에서 동의서 뒷면까지 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와 손끝 온도가 같았다.

문이 열렸다. 조하늘이 들어와 사물함에서 갈아입을 스크럽을 꺼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선생님, 그거 누가 올렸는지 아세요?”

“아니.”

“밤번 누구겠죠. 커튼 안에서 찍은 건 아니니까.”

바지를 갈아입는 동안 사물함 문이 두 번 덜컹거렸다.

“저는 캡처 안 했어요.”

“어.”

지퍼를 올리고 나가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저 아까 인계 때 이름 물어보셨어요. 교육수련부에서요.”

“누구 이름.”

“6번 담당이요.”

문이 닫혔다. 나는 신발을 벗고 다시 신었다.

아홉 시 십 분에 전화가 왔다. 행정 주임 문선주였다.

“경위서 양식 메일로 보냈습니다. 오전 중에요.”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3층 끝 방 창가 자리에서 양식을 열었다. A4 두 장이었다. 사건 개요, 경위, 조치, 재발 방지 계획. 칸이 넓었다. 옆자리에서 다른 병동 직원이 전화기 어깨에 끼운 채 숫자를 읽어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한 번 봤다.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손으로 나는 먼저 이렇게 썼다.

3월 30일 03시경 6번 침대 환아가 심폐소생술 미시행을 요청하는 내용의 종이를 작성하여 본인에게 서명을 요구하였고.

그 문장을 지웠다. 커서를 처음으로 돌려놓고 다시 썼다.

환아가 놀이 삼아 그린 종이에 본인의 이름을 적어 주었음. 환아 정서 안정 목적.

‘놀이’라고 쓸 때 자음 하나가 흐려져서 나는 그 자리를 두 번 덧썼다. 아이가 종이를 내밀며 뭐라고 말했는지, 내가 크레파스를 어느 손으로 받았는지, 아이가 날짜란까지 그려두었다는 사실을 나는 쓰지 않았다. 재발 방지 계획 칸에는 환아 놀이 활동 시 보호자 동석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적었다.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계속 썼다. 3년 전에는 눈을 감고 종이 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들어갔다. 그것 말고는 다른 게 없었다.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그 옆에 날짜를 적었다. 아침 여덟 시 이전에 한여순 선생에게 내야 했던 진술서 초안 파일은 같은 폴더 안에서 아직 백지였다. 커서만 첫 줄에서 깜박였다. 나는 경위서를 다른 폴더에 옮겨 저장했다. 두 파일이 같은 화면에 뜨지 않도록 창을 닫고 출력 버튼을 눌렀다.

복사기가 두 장을 뱉어내는 동안 형광등 하나가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종이가 나오는 자리에 손을 대니 아직 뜨거웠다.

문선주는 출력물을 받아 손등으로 모서리를 맞춘 뒤 아래로 훑었다. 볼펜을 들고 있었다.

“원본 종이는 어디 있죠?”

“환아가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접힌 선이 손가락 밑으로 미끄러졌다. 크레파스의 기름 냄새가 손가락 마디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내 문장 밑에 줄을 두 개 그었다. 첫 줄은 ‘놀이’ 아래에, 두 번째 줄은 ‘정서 안정’ 아래에 그었다.

“서지원 선생님, 여기 두 단어는 판단이 들어간 표현이에요. 위에서 물으면 근거를 대셔야 합니다.”

“네.”

“사진에는 날짜란까지 그려져 있는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선주가 볼펜 뚜껑을 닫았다.

“원본 제출 요구가 정식으로 갈 겁니다. 문서로요.”

볼펜을 놓고 서류를 뒤집었다.

“담당 배제도 검토 대상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홉 시에 보호자 요청서 접수됐어요. 원무과에서 사본 올라왔고요.”

“확인하겠습니다.”

“선생님, 이거 제출로 처리할까요? 수정하실 거면 지금 말씀하세요. 접수되면 날짜가 박힙니다.”

책상 위 서류 결재함에 다른 병동 경위서들이 세 뭉치쯤 꽂혀 있었다. 그 옆에 스테이플러와 인수인계용 도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보다가 대답했다.

“제출하겠습니다.”

문선주가 왼쪽 위 모서리에 스테이플러를 눌렀다. 소리가 한 번 났다.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3층과 2층 사이 참에서 한여순 선생과 마주쳤다. 약 카트 없이 혼자였다. 내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냈어?”

“경위서만 냈습니다.”

한여순이 두 칸을 더 올라갔다가 멈췄다. 난간을 잡은 손이 마른 손이었다.

“진술서는.”

“오늘 안에 쓰겠습니다.”

“오늘은 지났어. 오전이었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체방 그거, 나도 봤다. 사진은 안 지워져.”

“네.”

“네가 뭘 지켰는지는 네가 알겠지.”

발소리가 위로 올라갔다. 3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계단 참에 잠깐 서 있었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카트를 밀고 지나갔고 바퀴 하나가 계속 걸리는 소리를 냈다.

중환자실 문을 열자 낮번 간호사가 나를 한 번 보고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6번 침대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임경아는 없었다. 접이 의자 등받이에 카디건이 걸려 있었고 무릎담요가 바닥에 반쯤 흘러 있었다.

침대 걸이 클립에 종이가 두 장 겹쳐 있었다. 위쪽이 원무과 접수증 사본이었고, 그 아래가 손글씨 요구서였다. 아래 종이의 위쪽 모서리가 밖으로 밀려 나와 접혀 있었다. 나는 그걸 손가락으로 펴서 위 종이 밑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클립의 쇠가 얇아서 두 장을 물고 있는 자리가 벌어져 있었다.

“선생님.”

유안이 눈을 뜨고 있었다. 포화도가 아흔둘에 걸려 있었고 심박수는 백열여덟이었다.

“그 종이 아직 있어요?”

캐뉼라 줄이 아이 귀 뒤에서 한 번 꼬여 있었다. 나는 그걸 풀면서 대답했다.

“있어.”

“보여주세요.”

“지금은 안 돼.”

아이는 잠깐 나를 봤다. 화를 내지 않았다. 베개 아래로 손을 넣어 뭔가를 확인하고 다시 빼는 동작만 했다.

“찢으면 안 돼요.”

“안 찢어.”

“약속은 종이에 써야 진짜예요.”

말끝이 조금 흔들렸다. 숨을 두 번 나눠 쉬었다.

“선생님 이름 썼으니까 이제 선생님 거예요. 엄마 종이는 엄마 거고.”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종이의 접힌 각을 엄지로 찾았다. 두 장을 무는 클립이 아이 침대 난간에서 아주 작게 흔들렸다. 커튼 밖에서 임경아의 슬리퍼 소리가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못한 채 아이 쪽으로 몸을 조금 더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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