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두 장의 종이
5화. 급수탑 그림자와 두 번 접은 종이
금요일 오후 네 시에 한여순 선생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부른 게 아니라 통보였다. 데스크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나를 보지도 않고 “옥상” 한마디만 했다. 나는 회진 카트를 벽에 붙여놓고 계단을 올라갔다. 8층에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뻑뻑해서 어깨로 밀어야 열렸다.
급수탑 그림자가 시멘트 바닥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실외기 여섯 대가 번갈아 돌면서 더운 바람을 발목에 뿌렸다. 선생은 그림자 쪽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 있었다. 갑에서 담배를 한 개 뽑아 손가락에 끼웠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법무팀에서 월요일 오전까지 진술서 초안 달래. 3년 전 건.”
“네.”
내 대답은 반 박자 늦게 나왔다. 선생은 그걸 알아채고도 지나갔다.
“조정 신청서에 기록지가 붙었더라고. 시행자 란이 비어 있으니까 그쪽에서 물어보는 순서가 나야. 당시 근무자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나뿐이니까.”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서 한 바퀴 돌았다. 필터 끝에 흙 같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날 내가 본 걸, 뭐라고 말하면 되겠냐.”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열린 채로 두었다. 실외기 한 대가 멈추고 다른 한 대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닫았다.
“내가 비워둔 칸 얘기부터 할 수도 있어. 806호 창가 자리, 포화도 78, 새벽 두 시 사십사 분, 그때 병상 걸이에 뭐가 끼워져 있었는지도 말할 수 있고. 아니면 나는 처치 준비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었고 누가 압박을 했는지 못 봤다고 할 수도 있어.”
“...”
“둘 다 거짓말은 아니야.”
선생은 난간에서 팔을 떼고 담배를 다시 갑에 꽂아 넣었다. 상표 쪽으로 필터가 거꾸로 들어갔다. 그걸 바로잡지 않았다.
“3년 동안 나는 네가 알아서 정할 거라고 생각했어. 정하는 데 3년이면 충분하고.”
“선생님.”
“말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 안쪽이 마르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실외기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선생은 계단 문 손잡이를 잡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네가 먼저 말하면 나는 뒤에 말하면 돼. 네가 안 하면 순서가 나부터야.”
문이 뻑뻑하게 닫혔다.
나는 그림자와 볕의 경계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펴 보았다. 손가락이 다섯 개씩 그대로 있었고, 떨리지 않았다. 손등에 오후 볕이 뜨겁게 얹혔다. 나는 손을 뒤집었다가 다시 펴 보았다. 그래도 떨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 번 접힌 종이가 손등에 닿았다. 크레파스가 접힌 자리에 뭉쳐 있어서 그 선이 손톱에 걸렸다. 아침에 만졌을 때보다 종이가 조금 두꺼운 것 같았다. 나는 접힌 자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다시 얇게 만들려고 했다.
3년 동안 그 밤에는 날짜가 없었다. 11월 28일이라는 숫자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숫자였다. 이제 월요일 오전이라는 마감이 붙었다.
밤 열한 시 회진에 6번 침대 커튼을 걷었을 때 유안은 아직 안 자고 있었다. 무릎을 세워 스케치북을 받쳐 두고, 침대 조명을 제 쪽으로만 꺾어놓고 있었다. 포화도 91, 심박수 118. 알람은 아직 울지 않았다.
산소 냄새보다 크레파스 냄새가 셌다. 갈색으로 칠한 집에 창문이 다섯 개 있었다. 문은 없었다.
“문은 왜 안 그렸어.”
“문 그리면 사람들이 들어와요.”
유안은 검정 크레파스를 집어 창문 하나에 작대기를 두 개 그었다. 힘을 줘서 종이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창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어요. 이건 규칙이에요.”
“안에는 누가 있어.”
“저요. 그리고 초대한 사람.”
아이는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바지에 닦았다. 검은 게 조금 묻었다.
“선생님, 그 종이 어디 뒀어요.”
나는 링거 조절기를 확인했다. 분당 방울 수를 세는 척했다. 세지 않았다.
“가지고 있어.”
“접었어요?”
“두 번 접었어.”
“접으면 두꺼워져요.”
유안은 스케치북을 덮고 그걸 두 손으로 눌렀다. 눌린 데서 종이 소리가 났다.
“그러면 잃어버리지 않아요.”
“안 잃어버려.”
“오늘 밤에 알람 몇 번 울릴 것 같아요?”
나는 조절기에서 손을 뗐다.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 아래가 어두웠고 입술이 말라서 흰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몰라.”
“저는 여섯 번 같아요.”
침대 걸이 클립에는 두 장이 여전히 겹쳐 있었다. 위쪽 장 모서리에 내 손가락 자국이 번진 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국 위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새벽 두 시 십 분, 6번 침대의 보호자 의자가 비어 있었다. 담요가 등받이에 걸쳐져 있고 슬리퍼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 임경아가 서 있었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배출구에서 아직 김이 올라오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소 카트를 밀고 지나가던 여사님이 걸레를 짜다가 우리를 한 번 보고 갔다. 임경아는 나를 보고 반쯤 웃었다.
“선생님도 하나 뽑아 드려요? 이 시간엔 이게 제일 뜨거워요.”
“괜찮습니다.”
“두 시쯤 되면 애가 한 번 깨요. 깨기 전에 뽑아놔야 해서요. 깨고 나면 못 나오니까.”
컵을 입에 대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내 손을 오래 보았다. 나는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선생님, 손은 괜찮으세요.”
질문이 아니었다. 끝이 내려가 있었다.
“그날 흔들리시던 거 제가 봤어요. 7번 침대 아이 누르실 때요. 다들 밤이라 정신없었다고 하는데, 저는 봤어요.”
“...”
“우리 애 누를 때는 안 흔들리셔야 해요. 부탁드려요.”
부탁이라는 말이 요구서처럼 들렸다.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임경아는 종이컵을 든 채로 병실 쪽으로 걸어갔다. 컵의 김이 걸음마다 뒤로 흩어졌다. 6번 침대 커튼이 걷히는 소리가 났고, 낮은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판기가 다시 웅웅 돌기 시작했다.
나는 주머니 속 종이를 손바닥으로 눌러 접힌 자리를 더 깊게 만들었다. 월요일 오전까지 이틀 반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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