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젖은 나무
4화. 쿵쿵 하지 마요 약속
이틀 동안 나는 6번 침대 앞을 지날 때마다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유안의 포화도는 아침에 아흔넷, 저녁에 아흔하나였다. 심박수는 백열 몇에서 백스물 몇 사이를 오갔다. 나는 그 숫자만 보고 지나갔고, 아이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지나갈 때 커튼 틈으로 스케치북 넘기는 소리가 들린 날도 있었다.
7번 침대 아이는 살아 있었다. 여섯 살, 그 새벽에 03시 41분으로 자발순환 회복이 적힌 아이였다. 이틀째 오후에 승압제 용량이 절반으로 줄었고, 소변량이 시간당 이십 밀리리터를 넘겼다. 나는 회진 때 아이의 흉골 위를 보지 않고 모니터만 봤다. 갈비뼈 부위에 압박 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고 인턴이 기록에 적어두었다.
“7번 오늘 노르에피네프린 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조하늘이 데스크에서 처방을 넣으며 말했다.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수치 보고 정해.”
조하늘이 마우스를 놓았다.
“그날 기록지 시행자 란요. 제 이름만 들어갔는데.”
“끝까지 한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게 맞아.”
“선생님이 먼저 하셨잖아요.”
“…적을 게 없어.”
조하늘이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더 묻지 않았다. 그 애는 3년 전 겨울에 이 병원에 없었다.
세 시쯤 인턴이 7번 침대 라인을 갈았다. 손등에 붙은 테이프를 떼는 소리가 짧게 세 번 났다. 아이는 진정 중이라 움직이지 않았고, 침대 프레임이 한 번 삐걱거렸다. 나는 그 소리에 손목이 반 박자 늦게 반응하는 걸 느꼈다.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정리를 마치고 손을 씻고 돌아왔을 때, 6번 침대 커튼이 반쯤 걷혀 있었다. 유안은 무릎 위에 종이 한 장을 이미 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스케치북에서 뜯어낸 자리가 톱니처럼 남아 있었다. 검정 크레파스로 눌러 쓴 글씨였고, 왁스 냄새가 소독약 사이에서 이상하게 또렷했다.
쿵쿵 하지 마요. 약속.
글씨 아래에 삐뚤한 네모 칸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여기, 선생님 이름 쓰는 칸이에요.”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건 선생님이 정하는 게 아니야.”
“엄마가 정하면 엄마가 나쁜 사람 되잖아요.”
아이는 또박또박 받았다. 마스크 때문에 말끝이 습하게 붙어 나왔다.
“엄마한테 물어봤어?”
“엄마는 못 써요. 엄마는 그런 거 쓰면 우니까.”
“유안아.”
“저기 애기요.” 아이가 7번 침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날 밤에 다 봤어요. 커튼이 이만큼 열려 있었어요.”
아이가 엄지와 검지를 벌려 보였다. 나는 그날 새벽 3시 14분에 6번 침대 커튼이 어디까지 닫혀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자는 줄 알았는데.”
“알람 소리 나면 깨요. 저는 다 깨요.”
아이가 손가락으로 제 가슴 가운데를 두 번 짚었다. 환자복 위에 크레파스 가루가 묻어 있었다.
“쿵쿵 했는데 소리가 났어요.”
“…무슨 소리.”
“비 오고 나서 나뭇가지 밟으면 나는 소리요.”
병실 안이 조용했다. 5번 침대 인공호흡기가 정해진 간격으로 숨을 밀어 넣는 소리만 났다. 아이는 그 소리를 흉내 내려는 것처럼 입을 조금 오물거렸다.
“애기는 살았어요. 아침에 간호사 선생님이 살았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소리가 났어요.”
나는 종이 위쪽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선생님 손이 흔들렸어요. 침대도 흔들렸고요. 그다음에 다른 선생님이 올라왔어요. 그때부터 소리가 커졌어요.”
“…봤네.”
“살아도 소리는 나요. 그러니까 저는 안 할래요.”
아이의 목소리는 겁먹은 소리가 아니었다. 계산을 끝낸 사람의 말투였다. 그게 여덟 살 입에서 나온다는 게 내 목덜미를 조였다.
종이에서 손을 뗐다. 아이가 제 손으로 내 손목을 끌어당겼다. 맥이 뛰는 자리를 정확히 눌러 잡았고, 그 힘이 그날따라 어른 같았다. 손등에 정맥 라인이 붙은 손이었다.
“약속은 종이에 써야 진짜예요.”
크레파스는 굵고 끝이 뭉툭했다. 종이 결에 두 번 걸렸다. 서지원, 세 글자를 칸 안에 썼다. 글씨가 칸을 넘어갔다.
“날짜도요.” 유안이 말했다. “진짜는 날짜가 있어요.”
날짜를 썼다. 아이는 종이를 들어 올려 한참 보다가 손바닥으로 글씨를 한 번 문질러 보고 내게 내밀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어야 돼요. 엄마가 보면 찢어요.”
3년 전 806호 병상 걸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는 남이 쓰고 남이 서명한 종이였다. 나는 그걸 뒷면까지 읽고 눌렀다. 이건 내 이름이 적힌 종이였다. 이번에는 멈출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기회가 여덟 살의 손에서 건네졌다고, 그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종이를 두 번 접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두께가 손가락 한 마디쯤 됐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접힌 선이 손끝에 걸렸다.
네 시 반쯤 한여순 선생이 약 카트를 밀고 지나가며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6번 어머니, 원무과 다녀왔어.”
“…네.”
“가운 그쪽, 뭐 들었어.”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필기구요.”
한여순 선생이 카트를 한 칸 밀었다.
“6번, 오늘 몇이야.”
“여든아홉까지 떨어졌습니다. 산소 올렸습니다.”
“올렸으면 지켜봐.”
“네.”
“올린 걸로 끝난 거 아니야.”
카트 바퀴 하나가 삐걱거렸다. 한여순 선생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후 회진 전에 임경아가 병동으로 들어왔다. 손에 클리어파일을 들고 있었고, 파일 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에는 접수증 사본이 스테이플러로 물려 있었다.
“선생님, 이거 원무과에 냈어요.”
임경아가 종이를 내 앞으로 반쯤 내밀었다가 도로 당겼다.
“직원이 그러는데 이렇게 내면 병원 기록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병동에만 두면 담당 선생님 바뀔 때 없어질 수도 있다고. 그래서 두 군데 다 냈어요. 선생님, 저 이상한 엄마 아니에요. 아는데,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요.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 살려주십시오. 손글씨 아래 임경아의 이름이 볼펜으로 두 번 덧그어져 있었다. 두 번째로 그은 선이 첫 번째 선을 조금 비껴가 있어서 이름이 두께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
“네.”
“유안이랑 이야기 나눠보신 적 있으세요. 그, 아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임경아가 나를 봤다. 그러고는 침대 걸이 쪽으로 몸을 돌려 클립을 손톱으로 벌리고, 그제 내가 밀어 넣은 손글씨 요구서 위에 새 사본을 겹쳐 끼웠다. 두 장이 한 번에 들어갔다.
“여덟 살이에요, 선생님. 여덟 살이 무슨 결정을 해요.”
임경아는 유안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겼다. 아이는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침대 옆 서랍 위에 스케치북이 덮여 있었고, 뜯긴 자리가 위쪽으로 조금 들려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클립에 끼워진 종이를 봤다. 한 침대 위에 명령이 두 장이었다. 둘이 만나는 자리는 서류함이 아니었다. 걸이의 종이가 위쪽으로 조금 들려 있어서, 회진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종이 끝이 바람에 떨렸다.
간호사 데스크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야간 근무 간호사가 수화기를 들고 병동 안쪽으로 목을 돌렸다.
“한 선생님, 법무팀요. 3년 전 거라고.”
한여순 선생이 약 카트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 데스크로 걸어갔다. 수화기를 귀에 대면서, 내 가운 주머니 쪽을 한 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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