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하지 마요, 약속18화 / 전 19화2

부록

18화. 해설 — 누르지 않기로 한 손 — 반사와 윤리 사이의 47초

서지원


제목은 여덟 살이 크레파스로 쓴 각서의 문장이다. 명령문이면서 애원이고, 마지막에 붙은 ‘약속’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계약서가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이 끝까지 묻는 것은 ‘지킬 것인가’가 아니다. 첫 장 세 번째 문단에서 서술자는 이미 답의 형식을 흘려놓는다. “손은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지킬지 말지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화자는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스스로 진술해버린 셈이다. 남는 질문은 그러므로 하나뿐이다. 먼저 움직여버린 그 손의 이유를 그가 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서지원의 모순은 떨림을 번역하는 방식에 있다. 압박 서른 번째에서 손목이 꺾여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선 뒤, 그는 라텍스 안에서 미끄러지는 손끝을 붙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양심이다. 아무 감각 없이 누르는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문장을 속으로 두 번 굴리는 동안” 세 번째 에피네프린이 들어간다. 자기 손을 인격의 증거로 소유하려는 시간과 환자의 시간이 같은 문단에서 나란히 흐르는 구조다. 이 번역은 두 번 반박당한다. 한 번은 임경아가 그날의 손과 소리를 기량 미달로 되돌려줄 때, 또 한 번은 신경과 접수창구에서 3년 치가 세 줄짜리 초진 기록지로 정리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설 때. 여섯 번 잡고 여섯 번 취소한 예약은 그가 진단을 두려워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떨림이 윤리가 아니라 증상일 가능성 자체를 견딜 수 없었다는 증거로 놓인다.

모티프는 종이와 소리 둘뿐이고, 둘은 계속 서로를 무효화한다. 병상 걸이에 끼워졌던 동의서, 크레파스 각서, 임경아의 요구서, 시행자 란이 비어 있는 기록지, 두 번 접힌 진술서 초안. 종이는 늘 두 장씩 겹쳐 같은 침대 위에 놓인다. 절정을 앞둔 밤, 그는 진술서를 아이의 종이 옆에 겹쳐 넣고 “두 장이 한 겹이 되면서 가슴께가 얇게 부풀었다”고 적는다. 같은 대목에서 재예약 링크에 파란 줄이 그어져 있고, 그는 “오늘은 누르지 않기로 했다”고 쓴다. 누른다는 동사가 화면과 흉골 사이에서 한 번 미끄러지는 자리다. 소리 쪽 반복구인 젖은 나무는 3년 전 겨울에 심겨 절정에서 되돌아오는데, 그때 각서는 음성이 아니라 압박의 반동으로 침대 위에 떨어진 글자로만 존재한다. 말해질 수 없게 된 약속이 사물이 되어 굴러떨어지는 순서다.

정보의 배치는 낙차 하나로 버틴다. 2장에서 독자는 그가 동의서를 뒷면까지 다 읽고도 눌렀음을 알지만, 병원도 조정 상대도 동료도 16장까지 모른다. 이후의 모든 면담과 대치가 취조처럼 읽히는 이유다. 11장에서 유안이 소문으로 ‘누른 사람’을 골랐다는 사실이 열리면 독자의 질문은 ‘누를까’에서 ‘왜 하필 이 손이 지목됐나’로 갈아타고, 12장에서 강인호가 아버지의 거부 동의서에 서명한 이유가 중환자실 하루 비용이었다고 자판기 옆에서 털어놓을 때, 고발자와 피고발자는 같은 종류의 사면 욕구를 마주 든 거울이 된다. 손떨림의 소멸만은 절정 안에서 자각되지 않는다. 화자는 그 직전 밤에 손등을 오래 보며 “지금은 떨리지 않았고,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여전히 몰랐다”고만 적어둔다.

마지막 장은 첫 장의 복도로 돌아오되 위치를 바꾼다. 물러선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이번에는 교대 요구를 한 사이클 미루고, 손을 뗀 뒤 벽에 등을 대고 “아무것도 떨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쓴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다시 센다. 하나, 둘, 셋. 조정실에서 자백은 했으나 각서는 끝내 제출하지 않았고, 차트에는 자발순환 회복 없음만 남았다. 유안이 마지막에 손목을 쥐었다 놓은 그 약한 힘이 비난이었는지 사면이었는지, 아이가 그린 문 없는 집에 왜 창문만 안에서 열리는지는 번역되지 않은 채 남는다. 떨림이 사라진 손을 들고 다음 방송으로 걸어 들어가는 등을, 독자는 성장의 뒷모습으로도 훼손의 뒷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그 판정은 소설 바깥, 이 페이지를 덮는 손에 넘어와 있다.

— 인디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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