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하지 마요, 약속17화 / 전 19화2

4부 마흔일곱 초

17화. 꺾이지 않는 소리

서지원


징계위 회부 통보서를 세 번째로 읽었다.

문장은 짧았다. 회부 사유 항목에 세 줄, 출석 요구 일자에 한 줄. 나는 그 종이를 스테이션 뒤 좁은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펴놓고 있었다. 복도 창틀에는 낮에 튼 에어컨 물이 말라 흰 테를 남겼고, 그 테가 창틀 끝에서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문선주 주임이 보낸 서식은 다 채워 냈다. 각서 원본 제출 거부 사유서를 썼고, 정정 답변서를 썼고, 경위서 수정본을 다시 냈다. 마감을 하루도 넘기지 않았고, 그중 어느 종이도 내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았다.

조정중재원에서 잠정 조정안이 왔다고 들었다. 강인호의 명세서는 다섯 항목으로 줄어 있었다. 하루치 87만 원은 빠졌다. 병원은 이제 나와 다른 방향으로 답변서를 쓴다고 했고, 그 초안을 나는 읽지 못했다. 임경아가 낸 캡처본은 민원 접수번호를 받았다. 마흔일곱 개였다. 초안에 내 이름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과장이 혀 안쪽에 넣어주려던 그 문장보다는 훨씬 길게 적혀 있었을 것이다.

휴대폰이 무릎 옆에서 밝아졌다. 신경과 재예약 안내였다. 여덟 번째였다. 나는 링크를 눌렀다. 달력이 열렸고 다음 주 목요일 오전에 빈칸이 두 개 있었다. 앞쪽 칸을 눌렀다. 확인 화면이 뜨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예약이 잡혔다는 문자가 곧 들어왔고, 나는 그것을 지우지 않고 화면을 껐다. 취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누른 것은 아니었다. 떨림이 없어진 손도 초진 기록지 세 줄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간 간호사가 카트를 밀고 오다 스테이션 앞에서 멈췄다.

“선생님, 6번 보호자분이 아까 전화로 물어보셨는데요.”

“네.”

“만약에 상태 나빠지면 어디까지 하는 거냐고요. 심장 마사지 같은 거요.” 간호사가 카트 손잡이를 한 번 고쳐 잡았다. “그것 말고도, 애가 지금 뭘 아는지 자기는 모른다고 하셨어요. 어제 통화할 때 애가 괜찮다고만 했다고요.”

“보호자분은 지금 어디십니까.”

“김천이요. 첫차로 올라오신다고요.” 간호사가 잠깐 멈췄다. “김 선생님께 여쭤볼까요?”

나는 통보서를 접어 무릎에서 내렸다. 반 박자가 지나갔다.

“제가 갈게요.”

6번 침대는 커튼을 반만 쳐두고 있었다. 환자는 스물세 살이었고 심근염으로 입원한 지 나흘째였다. 고유량 산소 줄이 코 아래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고 모니터 심박수는 백사에서 백육 사이를 오갔다. 침대 걸이 클립에는 종이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검사 일정 안내였다. 클립의 쇠는 새것이었고, 한 장을 물고도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환자는 자고 있지 않았다. 눈만 천장으로 두고 있다가 내 쪽으로 돌렸다.

“엄마 전화받으셨어요?”

“들었습니다.”

“엄마는 첫차로 온다고 했어요.” 환자가 잠깐 숨을 골랐다. “저 그냥 감기 같은 거였는데요. 축구하고 나서 좀 쉬면 되는 줄 알았어요.”

“바이러스가 심장 근육에 들어가면 그렇게 시작합니다.”

“어제 초음파 하고 나서 선생님들이 수치를 얘기했는데, 제가 검색을 해봤어요.” 환자가 링거 줄이 걸린 팔을 조금 들었다가 내렸다. “펌프 기능이 삼십 몇이면, 그거 반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모니터를 봤다가 다시 얼굴을 봤다. 예전에는 여기서 문장을 짧게 잘랐다. 짧게 자를수록 나중에 종이에 옮겨 적히는 말이 적었다.

“어제는 서른셋이었습니다.”

“오늘은요?”

“오늘은 안 쟀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봅니다.”

“저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에요?”

“나빠질 수 있는 병입니다. 지금은 약이 듣고 있습니다.”

환자가 천장을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봤다. 손등에 붙은 테이프가 반쯤 들려 있었다.

“엄마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오는 동안 계속 그것만 생각할 거예요.”

“보호자분이 물으면 제가 있는 대로 말씀드립니다. 대신 지금 하고 있는 것도 같이 말씀드립니다.”

“나빠지면 선생님이 눌러요?”

“누릅니다.”

환자가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감은 채로 한마디를 더 했다.

“엄마 오면 깨워주세요.”

나는 들린 테이프를 눌러 붙이고, 산소 줄이 귀에 걸린 자리만 확인하고 커튼을 원래대로 두었다.

열 시 사십 분에 한여순 선생이 약 카트 없이 지나갔다. 내 앞에서 멈춰 서더니 손이 아니라 얼굴을 봤다.

“징계 나오면 어디로 가려고.”

“아직 생각 안 했습니다.”

“3년차 중간에 나가면 다시 붙기 어려워.” 낮고 마른 목소리였다. “그 종이들, 아직 갖고 있지?”

오른쪽 주머니 안에서 두 장이 함께 밀렸다. 프린터 열은 오래전에 다 빠졌고, 갈색 글씨에서 나던 왁스 냄새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제출 안 했습니다.”

“네가 뭘 지켰는지는 네가 알겠지.”

그 말이 이번에는 시험처럼 들리지 않았다. 한여순 선생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걸어갔다. 슬리퍼가 리놀륨에서 두 번 끌리고 문 쪽에서 소리가 끊겼다.

열한 시 사분에 천장 스피커가 켜졌다. 코드블루, 8병동. 같은 목소리가 같은 문장을 두 번 반복했다.

나는 일어났다. 통보서를 의자에 두고 문을 밀고 나갔다. 복도는 3월과 같았다. 같은 리놀륨, 형광등 두 번째 줄만 켜진 천장, 벽에 붙은 알코올 젤 통. 나는 젤을 손바닥에 짜고 걸으면서 문질렀다. 오른손이 주머니에서 나올 때 종이가 딸려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 달랐다.

8병동 병실 문 앞에서 조하늘이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었다. 나를 보고 반 발짝 물러섰다. 3월에는 내가 물러났고 그가 들어갔다. 나는 비켜준 자리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쪽이 이미 내려가 있었다. 간호사가 등 아래로 보드를 밀어 넣다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어느 과세요?”

이름표 줄이 목덜미 뒤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줄을 당겨 앞으로 돌렸다.

“내과 3년차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아니시죠. 이 환자 혈액내과예요.” 간호사가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항암 4일째고 오늘 아침부터 열이 있었어요.”

“주치의 오면 인수하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겠습니다.”

간호사가 반쯤만 끄덕이고 보드를 끝까지 밀었다. 침대 위 얼굴은 아까 커튼 반쪽 뒤에서 이야기한 얼굴이 아니었다. 다만 나이가 같았다. 스물세 살이라고 조하늘이 옆에서 말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없었고 입술 안쪽이 회색이었다.

“모니터 붙었습니다.” 조하늘이 말했다. “무맥입니다. 파형은 있는데 맥이 안 잡혀요.”

나는 손등을 한 번 봤다. 손가락 사이가 벌어지지도 않고 접히지도 않았다.

흉골 아래쪽에 손꿈치를 얹었다. 손은 판단보다 먼저 움직였다. 이번에도 먼저였고, 이번에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내 등 뒤에서 말해주지 않았다.

첫 압박에서 가슴이 내려갔다. 두 번째에서 산소 줄이 베개 아래로 딸려 들어갔다. 젖은 나무가 꺾이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지 않았다는 것이 나를 사면하지도 않았다.

뒤에서 문이 닫혔다. 도어클로저가 마지막을 붙잡았다가 놓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스물세 살의 갈비뼈 밑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팔꿈치를 펴고 어깨로 체중을 실었다. 흉곽이 다섯 센티 내려갔다가 손바닥을 밀어 올렸다. 열 번째에서 침대 바퀴가 조금 굴렀고 간호사가 발로 잠금을 밟았다. 스물다섯 번째에서 앰부백 소리가 두 번 들어왔다.

“에피 준비됐습니다.”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어 보였다.

“1밀리그램 주고, 세 분마다 반복합니다.”

“들어갑니다.”

숫자를 세는 동안 아까 커튼 안에서 오간 문장이 손과 함께 내려갔다. 나빠지면 선생님이 눌러요. 누릅니다. 그 대답은 6번 침대에서 한 것이었고 지금 내가 누르고 있는 가슴은 8병동에 있었다. 두 문장 사이에 아무 연결도 없었다. 손은 그것과 상관없이 같은 깊이로 내려갔다.

“2분 됐습니다. 리듬 확인.” 조하늘이 말했다.

나는 손을 떼고 물러섰다. 모니터에 잔 파형이 그대로 있었다.

“맥 없습니다.” 간호사가 목 옆에 댄 손가락을 뗐다.

“압박 재개하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하겠습니다.” 조하늘이 보드를 침대 발치에 내려놓았다. “2분씩 교대하는 게 맞습니다.”

내 오른손이 이미 흉골 위로 돌아가 있었다. 손등에는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3월에는 이 자리에서 손가락이 떨렸고, 나는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물러났고, 물러난 자리로 이 사람이 들어갔다. 지금 그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한 사이클만 더 하고 넘기겠습니다.”

“깊이 떨어집니다.”

“안 떨어집니다.”

조하늘이 잠깐 나를 보고,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가 손을 내 손 옆에 두었다. 대기 자세였다. 간호사가 시계를 소리 내어 읽었다. 열한 시 팔 분이었다.

압박이 열 번을 넘어갈 때 팔이 아니라 등이 먼저 울렸다. 손목뼈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는 손을 그대로 두고 리듬만 유지했다. 문밖 복도에서 뛰는 소리가 들리고 혈액내과 당직이 이름을 불렀다. 인수 인계를 시작해야 했다.

“내과 3년차 정지원입니다.” 나는 압박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발견 시각 열한 시 이분, 무맥 리듬, 에피 1밀리그램 한 번 들어갔습니다.”

“교대하시죠, 선생님.”

이번에는 반 박자를 두지 않았다. 나는 세 번을 더 누르고 손을 뗐다. 손을 뗄 때 손꿈치에 남은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하늘의 손이 내가 눌렀던 자리에 정확히 얹혔고, 침대는 계속 흔들렸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나 벽에 등을 대고 손등을 봤다. 아무것도 떨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조하늘이 어깨로 체중을 옮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소리 내지 않고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이 화의 별점·후기

아직 후기가 없어요. 첫 후기를 남겨 보세요.